2024_05 플레이리스트

딱히 음악을 찾아듣지도 않고 음악을 들으면서 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생각할 정신이 없고 글 쓸 정신은 더더욱 없다. 그렇게 작년에 꽤나 꾸준히 써온 플레이리스트 글을 더이상 쓰지 않는다. 그래도 오랜만에 약간만 옮긴다.

The Rip - Portishead

요즘 가장 자주 듣는 곡이다. 친구가 나한테 했던 말이 기억난다. ‘넌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나는 말한다. ‘뭐 내가 고도라도 기다리고 있는가? 내가 뭘 기다리는데?‘. 그 다음이 대답이 뭐 있었는데 딱히 기억할 필요가 없어서 떠올릴려고 해도 머리 속에 쌓인 먼지가 나풀거릴 뿐이다. 무엇을 기다리냐고? ‘무언가’를 기다릴 뿐이다.

이 곡을 들으면서 한번도 가사에 집중해본 적이 없고 이 글을 쓰면서도 가사를 유심히 듣거나 찾아보지 않는다. 굳이 가사를 들을 필요가 없다.

이 곡을 듣다보면 심장이 벅차면서도 경직되고 눈물이 흐른다. 서정적인 기타소리가 숲 한가운데 공터에서 밤하늘을 바라보고 울려퍼진다. 높지만 무거운 베스 깁슨의 목소리는 우주를 향하지만 전달되지 않는다. 기타로 시작한 배스라인은 묵직한 신스사운드로 바뀐다. 기타 소리가 담는 에너지의 양은 너무나 작고 사람의 힘보다 클 수 없다. 그렇기에 기계의 힘을 빌린다. 쉼없이, 쉼없이, 쉼없이 배스라인은 반복한다. 지상을 기계의 힘으로 꾹꾹 누르며 날아오르려한다. 그 배스라인 위를 베스 깁슨의 목소리가 올라타고 이번에는 조금 더 힘찬 목소리로 부른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어디로 향하는걸까? 정말 머나먼 우주를 향하는걸까? 모르겠다. 그런건 정말 모르는 것이다. 그냥 하염없이 부를 뿐이다. 그냥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다.

베스 깁슨이 후지에 온다는데 가고 싶긴한데 이번 후지 라인업이 구미에 당기지 않는다. 내한이나 오기를 바랄 뿐이다.

Being Boring - Pet Shop Boys

Confusion - Electric Light Orchestra

보통 운전을 할 때 스포티파이로 음악을 듣지만 새벽에 달리기를 하러 호수에 차를 끌고 나갈 때는 핸드폰을 안 챙기기에 라디오를 듣거나 그냥 음악 없이 운전을 한다. 해가 이제 뜰 것 같은 어둠 속을 미끄러져 가면서 라디오를 틀었더니 이 노래들이 나왔다. 펫샾보이즈의 저 곡은 들어본 적은 없지만 누가 들어도 펫샾보이즈였기에 곡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라디오 주파수가 약간 틀어져있는지 원래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음질이 정말 별로였다. 많은 악기 소리가 클리핑이 일어난 것마냥 부서졌고 곡이 흐르는 내내 노이즈가 섞여나온다. 그 시절의 음악이 그 시절의 사운드 시스템으로 그대로 재현됐다. 아마 새벽 4시 50분에 이 곡을 신청한 사람도 그 시절 사람일 것이다. 왜인지 완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곡들은 더이상 사람들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가득한 공간에서 자신의 존재를 외칠 필요도 없다. 그냥 지금처럼 거칠게 흘러나오면 되는 것이다.

요즘 음악들을 듣다보면 모든게 매끈하고 쌔끈하다. 당장 스포티파이 Top 100의 곡들을 하나하나 들어보면 무슨 말인지 바로 알 수 있을까 싶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품질의 녹음과 믹싱, 감정 마저도 원하는 방향으로 틀어버릴 수 있는 오토튠과 멜로다인의 보컬들은 현미경으로 확대해도 그 흠집을 찾을 수 없는 하얀 대리석 같다. 말이 그렇지 대리석을 현미경으로 보면 구멍 투성이다. 그런데 이 음악들은 그 틈을 정말 말끔하게 메워놓으려고 갖은 애를 쓴다. 모두가 얼마나 흠집을 잘 메우는지 경쟁하는 것 같다. 흠집이 하나의 메트릭이 되고 흠집은 차트 순위를 대변하는 하나의 변수가 된다. 그렇게 모든 곡들은 무한히 펼쳐진 하얀 엑셀 시트 위의 하나의 셀이 되어 자신의 가치를 숫자로 증명하게 된다. 검은 테두리에 갇혀 옴싹달싹할 수 없는 채로 말이다.

Has It Come to This? - The Streets

Let’s Push Things Forward - The Streets

The Irony of It All - The Streets

The Streets의 이 앨범을 들어보면 영국 문화의 많은 요소가 담긴 것을 알 수 있다. 요즘 자주 한국 대중문화에서 자주 보이는 UK Garage부터 Ska, 그라임 같은 음악적 언어도 풍부하고 가사도 들어보면 그 시대의 언어로 가득차있다. 심지어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와 발음을 들어보면 그들의 출신 지역까지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의 음악들이 떠오를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음악은 무슨 언어로 이루어져있지? 뭐 우리는 코스모폴리탄 같은건가? 국제주의 양식의 건물들이 떠오르고는 한다.

Opening - Philip Glass

예전에 이 곡의 유튜브 댓글들을 보는데 누가 이런 식으로 남긴 댓글을 발견했다. ‘만약에 이 곡이 바흐나 모짜르트 시대에 작곡되어 연주되었다면 그 시절 사람들은 어떻게 이 노래를 감상했을까?’ 꽤나 어려운 질문이다. 미니멀리즘의 간결함은 시대에 영향을 받을 것 같지 않지만 바로크와 그 사이의 수많은 음악들이 부재한 미니멀리즘은 미니멀리즘으로 인식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다른 식으로 해보자. 우리가 타임슬립을 해서 200년 후의 미래로 갔을 때 그 시대의 음악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들릴까? 혹은 반대로 200년 후의 사람들이 타임슬립을 해서 우리 시대에 왔을 때 우리 시대의 음악이 그들에게는 어떻게 들릴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gull - maedasalt

이 노래를 들어보면 꽤 많은 음악 요소들이 들른다. Experimental Hiphop,,,부터 K-Pop에 뭐시깽이-Core류의 짬뽕이다. 다 대중적인 취향과는 거리가 먼 장르들이 진화해서 이런 노래들이 튀어나온다. 이 곡이 어쩌면 대중적인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있어서 200년 후의 노래를 듣는거랑 비슷한 감정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물어보지 않았지만 이 노래를 사람들이 싫어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