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법정등산로를 다니지맙시다

새로 이사한 동네 뒷산이 인왕산이라 1주일에 두번 이상은 올라간다. 매번 같은 등산 경로를 따르기보다는 다양한 등산로 입구와 출구를 조합해가며 새로운 경로로 다녀보는 중인데 오늘은 지도 상으로 샛길처럼 보이는 길로 하산해보았다.

그러고,,, 어두운 밤에 길을 헤매기 시작하고 발견한 건,,,,

,,, 멀리서 이게 보일 때 기도했다. ‘저 통제선이 제발,,, 위험한 등산로로 다니지말라는 뜻이길,,,’

하지만 가까이 가보니 경찰 마크와 함께 ‘수사중’이 적혀있다,,,,

내가 야밤에 산에 올라 캠핑을 한다고 할 때 사람들이 무섭지 않냐고 묻는데 그럴 때마다 난 이렇게 대답한다.

‘사람이 무섭지 동물이나 자연 속의 밤은 무섭지 않아요. 근데 한밤 중에 야산에서 사람을 만나지 않아요’

물론 사람을 마주치게 되면 장르가 달라지게 되지만 딱히 그런 경험이 없는지라 별 겁없이 다녔는데 이 수사 통제선을 보니 정신이 번뜩든다.

어쩌겠나,, 벌벌 떨면서 내려갔다.

이후 야산을 헤치며 가는데 뭔 나무가 덩굴에 걸려있다,,, 아까 수사 통제선을 본 이후라 이런 것들조차 무서워 보인다.

겨우 발견한 사람 발자취가 남은 길을 따라가는데 나뭇가지로 만든 이상한 문이 있다,,,, 밤에 봐서 그런가 더 무섭다,,, 기가 약해졌나보다,,,

문제는 이 길도 잠시 따라가다가 길이 끊겨서 고생했다.

뭐 어찌저찌 수풀을 헤치고 야산의 명물인 가시풀을 헤치며 겨우겨우 복귀함.

비법정등산로로 다니지맙시다,,,

집에 밥해놨지만 돌아가는 길에 외식함. 너무 힘이 빠지기도 했고 입구를 지나칠 때 홀린 듯 멈추고 갈까말까 고민하게 만든 김치찜&닭불고기 집. 저게 7500원이다!

단촐하지만 맛이 직접 만든 반찬들이 매우 정성스럽다. 메뉴 구성과 단가 설정에 대한 많은 고민이 느껴지는 동시에 그 고민에서 식당 주인의 따스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1주일 전에 인왕산에 멀쩡한 등산로를 다니다가 멧돼지 만남,,, 당연 사진은 없음,,,

그리고 아래는 인왕산 사진들

오늘 인왕산 정산에서 만난 냥이들. 산냥이들이라 날쎄더라.

뭐 달라고 다가오는데 줄게 없다. 다음에는 츄르 들고 다닐게

여러 시간대에 인왕산에서 바라보는 북한산. 북한산 암반 봉우리가 흰색에 가깝다보니 하늘의 색을 잘 담는다.

야경이 화려하긴하다. 마지막 사진의 위치에 서면 공각기동대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고 아래의 시드 미드 작품이 떠오르기도 한다.

탕춘대성 코스로 내려오면 아름다운 탕춘대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월 1일 일출 때 올라가서 찍은 타임랩스.

사람 많더라. 추운데 삼각대 들고 가느라 개고생함.

통화주의 취향

경제학과 졸업한 지 오래됐고,,,, 전혀 관계 없는 삶을 살지만,,, 요즘의 경제 정책들을 보면 말이지,,, 통화주의자들이 옳았던게 아닐까?

아니 사실 옳다말다는 내가 판단할 수 없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통화주의자의 정책이 내 취향이다.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행정부, 정치권의 말도 안 되는 부두경제학에 시달리고 있고 대화가 아닌 힘으로 부두경제학 정책들이 관철되고 있다. 무서운 건,,,, 부두경제학을 관철시키는 사람들조차도 자신들의 정책이 국가 경제에 도움될거라고 생각 안 하는 듯하다,,,

모두가 지들 좋을대로 떠들고 있고 내가 언제나 마주하는건 광신적인 믿음과 거짓이 엮여있는 헛소리들이다. (사실 광신적인 믿음과 거짓은 동의어,,,,)

내가 중앙은행이니 시카고 학파의 합리적 시장 같은 걸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헛소리들이 싫다는거다. 헛소리로만 끝나면 다행이지만 정부 정책의 문제는 시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변덕스러운 헛소리 정책보다는 준칙에 기반한 장기적 정책을 바란다.

...
Riot shields, voodoo economics  
It's just business, cattle prods and the IMF
...

원래 부두경제학이라는 단어는,,,, 신자유주의,,, 좀 더 구체적으로는 레이건 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판할 때 나온 말이다. 래퍼 곡선이라는게 있는데,,, 뭔 궁금하면 찾아보길,,,

이 영상에 나오는 필립스 머신 혹은 MONIAC이라는 기계는 복잡한 국가 경제 시스템을 물의 흐름을 가지고 시뮬레이션 하는 기계다. 물로 계산을 하고 시뮬레이션을 하는 동시에 돈의 흐름을 눈으로 볼 수 있다니! 아름답다. 멋진 레고를 보는 기분이다.

난 공대생이라서 그런지 세상을 이렇게 시스템적으로 그리는게 좋다.

요 근래 요리

거의 매일 요리를 하는 편이지만 혼자 먹는 요리이다보니 대충 알리오 올리오나 규동 같은 간단한 걸 만들고는 했는데 최근에는 친구와 같이 먹는 요리를 좀 했다.

시나몬롤

수원을 떠나게 되어 수원에 사는 친구들, 단골 식당과 카페 사장님들께 드릴 시나몬롤을 구움.

식당 사장님이 답례로 주신 귤. 카페 사장님은 당연 커피 주심.

친구는 대만에서 사온 누가랑 찹쌀떡?을 줌. 킬링 포인트는 본인 집에 있는 3D 프린터로 직접 뽑은 용기,,,인데 심지어 용기 뚜껑과 밑바닥을 결착할 수 있어서 여러개의 용기를 쌓을 수 있,,, 중얼중얼 하면서 우리끼리는 즐거운 이야기를 나눈다.

수비드 목살

수비드로 하는 요리 중 가장 좋아하는 목살 수비드. 목살 질겨서 싫어하는데 이건 정말 부드럽다.

수비드는 시간이 오래 걸릴 뿐 공수가 많이 들지 않아서 좋다.

레몬 버터 로티세리 치킨

크리스마스 이브에 친구를 수원집 불러다가 먹여줌. 매우 맛있음,,,

페루비안 로티세리 치킨

바로 다음날 크리스마스에는 다른 친구를 불러다가 또 로티세리를 해줌. 이번에는 어제와 다른 페루식 치킨인데 매콤 짭짤 달콤하니 맛있더라. 전날 페루식 양념에 닭을 재워두었는지라 염지가 매우 잘 되어 살을 씹을 때 향이 훌륭하게 퍼진다.

전날에 만든 레몬 버터 치킨보다 맛있다! 전날 닭은 겉이 좀 덜 바삭하길래 오븐 온도 10도 정도 올리니 완벽하다! 약간 더 바삭함을 위해 오븐 시간을 10분 정도 더 올리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페루식 치킨에 항상 곁들이는 마요 + 고수 + 레몬 조합의 아히 베르데를 먹자마자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파마산 오레가노를 구움. 닭 + 양상추 + 아히 베르데 소스 + 양상추 조합은 매우 훌륭했음. 당연하게도 파마산 오레가노도 맛있음^^

시금치 롤 라자냐

어쩌다가 저질러버린,,, 생면 파스타. 흑백요리사가 모든 문제의 원흉이었다,,,

예전부터 위에 사진에 있는 파스타 롤러 부속품을 사고 싶었으나 너무 실속 없는 지랄 가오라서,,, 참았으나,,, 이렇게 됐다.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고 싶어서 요리를 하는건데 파스타 건면에 대해서는 전혀 불만이 없었다. 이건 순수하게 지랄 가오다,,,

뭐,,, 일단 샀으니 파스타를 뽑아봤는데 오,,, 생각보다 매우 쉽다,,, 별 다른 어려움 없이 파스타 면 완성!

시금치 리코타 롤 파스타를 해봤는데 엉망이었다. 일단 먹어본 적 없는 요리라서 그냥 레시피 대로 했는데 도대체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보통 안 먹어본 요리라고 할지라도 대충 레시피 대로 만들고 보면 맛의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레시피가 지향하는 맛의 의도의 편린 같은게 느껴지고는 한다. 그 편린을 집중해서 느끼고 다음 요리에서 그걸 토대로 재료와 조리법을 보완하면 맛이 훨씬 좋아진다.

근데 이 시금치 파스타는 전혀 모르겠다. 그 어떤 맛의 의도도 안 느껴지고 그냥 개판이다,,, 그냥 라구나 만들어 먹어야겠다. 나중에,,, 시금치 라자냐를 먹어보거나,,,

아 그리고 생면 파스타를 삶지 않고 넣었는데 엉망이었다. 이것도 이런 저런 테스트를 해보고 결정했어야하는데 뭐 생면은 처음이니까,,,

토마토 생면 파스타

페투치네,,, 엇비슷하게 자른 파스타를 냉장고에 있는 시판 토마토 소스로 버무려 먹었다.

이건 진짜 맛있다,,, 오,,, 생면 재미있다. 파스타의 겉면이 좀 거칠다보니 파스타가 소스를 더 잘 머금어서 파스타를 씹을 때 소스와 면의 밸런스가 매우 좋다.

면의 식감 또한 흥미롭다. 알 덴테스러운 오독오독,,,?한 식감은 어렵지만 건면에 비해 훨씬 쫄깃하며 탱글탱글하다. 묘하게 칼국수스럽지만 칼국수에 비해서는 가볍게 면이 끊긴다. 내가 면을 잘못 보관해서 면의 두께가 불균일해졌는데 그것 또한 수제비스러운 재미가 있었다.

앞으로 여러 두께, 여러 재료(듀럼밀 등), 여러 종류의 파스타를 해봐야겠다. 예를 들어 라비올리, 아뇰로띠, 탈라이텔레, 파파르델레, 카넬로니, 비트 파스타 등등등,,,에 칼국수, 소바, 우동,,,,

소프라노스 맛기행도 해야한다. 까놀리,,, 베이크드 지티, 선데이 그레이브, 마니코티, 가바굴,,, 맛 따라~ 토니 따라~

사실 리코타 라자냐는 소프라노스에서도 나온다. 카멜라 소프라노스가 리코타 치즈에 바질을 넣어 라자냐를 만든다. 물론 여기에 치즈, 라구, 잘게 다진 달콤한 소세지가 들어간다.

That’s Carmela’s lasagna!

바게트

구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바게트를 만드는 법이 워낙 많고 손도 많이 가는 편이다. 밑반죽의 종류만 해도 풀리쉬, 비가, 파트 페르망테, 르방, 스트레이트 등등,,, 많고 가장 단순한 스트레이트라고 해도 접기라고 해서 30분에서 1시간 간격으로 반죽을 만져주는 과정이 필요하고 숙성 기간도 꽤 긴 편이다.

유튜브에 이 레시피가 추천이 뜨길래 뭔가 싶어서 봤더니 댓글에 간증이 쏟아진다. 레시피도 매우 간단하다. 그냥 밀가루, 이스트, 소금, 물을 대충 섞고 방치한 다음 굽는게 전부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접기를 많이한 그 맛까지는 안 나지만 이 정도면 진짜 훌륭하다.

사실 36시간 염장/12시간 건조/12시간 수비드/4시간 칠링해서 만든 잠봉도 있었으나 맛이 없다. 염지액 수정이 필요하다.

간단한 영화평

후기를 길게 남길 의욕이 들지 않는 영화들에 대해 무성의하게 쓴다,,,

28년 후

‘28주 후’가 나오고 23년 만에 후속작이 나왔다. (왜 28주 후 다음에 28개월이 아니라 28년 후일까 궁금하다면,,, 궁금해하지 말길)

영화는 모르겠다,,,, 진짜,,, 뭐라고 말할 길이 없다,,,, 썩 재미있지도 않고 재미없지도 않고,,,, 좀 아스트랄하긴 한데 그렇게 이상한가 하면 그건 모르겠고,,,,

페라리

마이클 만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영화는 재미없다.

마이클 만의 매력은 충실하게 장르의 형식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주제 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히트’를 보면 충실하다 못 해 터져나오는 액션씬, 긴 플레이타임에도 지루하지 않은 시나리오, 그냥 잘생긴 로버트 드 니로와 알파치노를 보면 완성도 높은 헐리우드 액션 영화 연상시키지만 마이클 만이 죽을 때까지 우려먹을 주제의식인 ‘가부장 남성의 가정과 일의 충돌’이 헐리우드 액션 요소에 우아하게 녹아있다.

페라리의 경우,,, 주제의식만 강하게 표출하려고 노력한다. 시원한 레이스의 재미를 보여주지 않고, 긴장감 넘치는 가정 내 서스펜스를 보여주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냥 지랄맞은 이탈리아 남자가 자신의 책임 짓눌리는 이야기다. 대중이 좋아하는 스펙타클 영화도 아니고, 예술충이 좋아할 예술 영화도 아닌 무언가,,,

그냥 이 영화를 볼 바에 히트를 한번 더 보시길

노바디

친구 추천으로 봤는데 시원시원하게 볼만하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진짜 끔찍했다. 맨슨 이야기이길래 이게 뭔가 하면서 지루한 거 끝까지 참고 봤는데 무슨 대체 역사 망상물,,, 샤론 테이트를,,,, 추모하는,,,건,,,,직접,,,,묘에,,,찾아서,,,

구글링 해보니 캘리포니아에 Holy Cross Cemetery & Mortuary에 묘가 있으니 여기서 참배를 하자,,,,

예언자

이런 대단한 영화의 아름다움을 애써서 평론가처럼 글로 쓸 필요가 없을 때 내 직업이 영화 평론가가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하고는 한다. (평생 단 한번도 영화 평론가를 꿈꿔본 적이 없다)

뭐라 적으려고 하니 적기가 어렵다,,,

시카리오 1, 2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보고 생각나서 다시 봤더니 역시 재미있다. 주제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정의롭지만 질서를 유지할 힘이 없는 주인공의 성별을 여자로 설정한게 묘하게 킹받지만,,, 불법 임무에 도움 안 된다고 여주인공에게 대뜸 총을 갈겨버리는 요원을 남자로 설정한 걸 보면,,, 그 덕에 주제는 확실히 전달됐으니 까다롭게 굴지말아야지,,,

그리고 시카리오 2편도 있길래 보는데 어,,, 같은 배우와 같은 재료,,,,인데 엉성하고 재미없길래 엔딩 크레딧을 기다려보니 감독이 드니 빌뇌브가 아니다,,, 낚였다,,,

맨 프롬 엉클

글을 적으면서 자동으로 오른팔이 가슴 높이로 올라간다. 그리고 손을 흔들며,,, 말하게 된다. 꼼시꼼사

소련 스파이 역할의 남자 배우의 압도적 외모와 피지컬,,,이 인상적이긴 하다. 핸리 카빌도 그렇고.

F1 더 무비

재미있다! 반칙 원 툴 전개가 좀 꼴받기는 하지만 슈퍼듀퍼한 스펙타클 제공해주셨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첫 실버스톤 레이스 스타트 장면의 POV 샷과 편집은 레이스 시작 전의 그 긴장감을 그대로 전해줬다.

주변에서 OST가 좋았지 않냐고 말하는데 나는 그냥 그랬다.

로스트 인 더스트

시카리오 2를 보고 아쉬운 마음에 검색해보니 시카리오 1의 각본을 쓴 테일러 셰리던의 다른 작품들이 좋다길래 찾아봄.

현대판 서부극을 만들었는데,,,, 뜨겁기 보다는 매우 차갑다. 텍사스의 강한 태양 아래 허허벌판 사막이 차갑게 느껴진다. 돈을 뜨겁게 벌면 몸이 차가워지는건가보다,,,

윈드 리버

이번에는 테일러 셰리던이 직접 감독까지 한 작품이다.

영화가 꽤 좋았는데 뭘 딱히 쓰자니 쓸 말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설경이 멋있다!

맨 온 파이어

간만에 토니 스콧 영화가 땡겨서 봤는데 상영 시간이 2시간 반,,,, 심지어 재미없다,,,

시나리오/편집이 정말 쓸데없이 루즈하고 괴상한 모션 블러 시퀀스들은 보기만 해도 멀미난다. 댄젤 워싱턴이 간지나기는 함,,,

도쿄!

미셸 공드리, 레오 까락스, 봉준호 셋의 단편 모음인데,,, 이런거 이제는 별로 재미없다. 특히 레오 까락스,,,, 단편이 지겹더라.

퍼블릭 에너미

항상 경고하는데 영화는 1시간 반 상영 시간을 지켜야한다. 그런 법칙 어딨냐고 묻지마라. 이 법칙을 어겨도 되는 사람이 많지 않다. 2시간 20분의 플레이타임,,, 근데 감독이 마이클 만이라서 1시간 반의 상영 시간을 넘을 자격이 없는건 아닌데,,,, 자격 박탈!

더 폴

시각적으로 매우 인상적임. 친구가 극장에 끌고가서 본 영화라 사전 정보가 거의 없었는데 VFX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매우 당황,,,, 필름으로 촬영했을거고,,, 지금처럼 고도화된 디지털 포스트 프로덕션이 있는 것도 아닌데,,,, VFX를 쓴 게 아니라면 바다, 사막, 사원, 실내, 숲, 황무지,,, 모든 환경에서 그 일관적인 색감이 어떻게,,,,

우리가 본 게 리마스터 버전인데 친구 말로는 원래 필름 버전도 화질만 떨어지지 색감은 같다고 한다. 내 눈으로 확인 못 했으니 안 믿으련다^^

제작비만 3천만 달러가 들었다고 적혀있던데,,, 영화 보는 내내 이걸 어떻게 투자 받았나 의문이 계속 든다,,,

영화의 초반부는 사실 견디기 힘들었다. 영화 속 주인공이 지어내는 모험기를 멋진 이미지로 그려내는데 이야기가 중심과 의도가 느껴지지 않으니 따라가기 따분했다. 별 중심도 없는 내용에 비쥬얼만 화려하게 때려박고 호도로프스키와 파라자노프에 대한 오마쥬가 가득하니,,, 또 자신의 영화 사랑을 알리기 위해 중얼중얼거리고 있구나 하며 관람했다.

중-후반부에서는 영화의 주제가 전면으로 드러나기는 해서 좀 나아지기는 하나, 주제가 크게 마음에 와닿지는 않아서,,, 비주얼에만 감탄하면서 영화를 봤다.

그렇게 끝나나 했는데,,, 가장 마지막에 갑자기! 버스터 키튼이 나오면서 그 전까지의 모든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감독의 좀,,, 변태적인 자기만족적 이미지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버스터 키튼, 그리고 이름이 남겨지지 않은 그 시절 스턴트 배우들, 그리고 떨어지고 다시 오르는 모든 인류를 위한 헌사가 됐다.

사실 영화 중반부에서부터 주제 의식은 명확했는데 리 페이스 캐릭터에 꼴받았는지 공감이 안 가서,,,, 주제가 마음 깊히 전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정말 간만에 하루키 소설을 읽었다. 스포가 있으니 주의하시길

소설 전개

학창시절에 나고야에 살던 다자키 쓰쿠루는 고등학교 때 4명의 친구들과 함께 뜨거운 우정을 나누었으나, 20살에 쓰쿠루 혼자만 나고야를 떠나 도쿄에 대학에 진학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이 어떤 이유도 설명해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절연을 선고한다. 쓰쿠루는 이의를 제기하지도 못한 채 절연 선고를 받아들이고 가슴의 상처를 안고서 16년을 살게 된다.

16년의 시간은 가슴의 상처에 먼지가 쌓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고 36세의 쓰쿠루는 겉으로 보기에 건실한 직장인의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친구라고 부를 존재도 없고 고독을 느끼지만 친구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몇 번의 연애를 했지만 결혼을 하지는 않았다. 기회가 되면 결혼을 하겠다고 생각하지만 이성과의 만남은 결혼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쓰쿠루는 최근에 만난 사라와 관계가 깊어지는 와중에 그는 16년 간 남에게 한번도 말하지 않았던 16년 전의 일방적 절연의 상처를 사라에게 말한다. 이야기를 들은 사라는 자신도 쓰쿠루에게서 묘하게 느껴지는 공허함, 거리감을 말하며 관계를 지속성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와 동시에 자신과 만나고 싶으면 이제 묻어뒀던 상처를 직접 들추기 위해 그때 4명의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해보라고 한다.

쓰쿠루는 진실을 알기 위해,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사라와의 관계를 위해 순례의 길을 떠난다.

상처냐 기질이냐

인연이 끊긴 학창시절 4명의 친구는 이름에 적(아카), 청(아오), 흑(구로), 백(시로)의 색깔 한자가 있었고 그들의 개성도 이름과 걸맞는 색이 있었다. 하지만 ‘만들다’라는 뜻을 가진 쓰쿠루의 이름에는 색깔이 없었고 쓰쿠루는 이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개성에도 색이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색이 없는 무미건조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학창시절에 친구들과 교우를 할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다.

쓰쿠루는 관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람에게 다가가지도 자신을 표현하지도 않는 자신의 무색의 성격은 학창시절의 상처 때문이라고 생긴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옛 친구들을 만나는 순례의 과정에서 만난 옛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자신의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소리를 듣는다.

아오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너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어. 너는 그 당시 우리 다섯 명 중에서 가장 어른스럽고 침착했어. (...) 나나 아카보다 훨씬 심지가 굳고 남자답다고 생각했지.

너는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튼튼하고 냉철하게 땅에 발을 붙이고 산다는 인상을 주었거든. 감정에 휩쓸리지도 않고

만약 내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나는 상대를 철저하게 때려눕혔을 거야. (...) 그런데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변명도 하지 않고 화도 내지 않았지. 그저 조용히 우리 앞에서 모습을 감췄어. 그게 나에게는 꽤 쇼크였어. 너의 그 깊은 침묵이.

아카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너는 잘 몰랐겠지만, 우리 그룹은 아슬아슬한 균형 위에 성립되어 있었어. (...) 너는 말하자면 배의 닻 같은 존재였어. 네가 없었다면 우리 네 사람은 뿔뿔이 흩어졌을지도 몰라.

너에게는 사람을 안심시키는 무언가가 있었어. 너는 남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었고, 적절한 말을 골라 썼어. 그건 아주 중요한 재능이야.

구로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거 알아? 난 다자키 쓰쿠루, 너를 좋아했어. (...) 시로도 아오도 아카도 좋아했지만, 이성으로서 마음이 끌린 건 너뿐이었어.

너는 텅 비지 않았어. 절대로. 너에게는 너만의 색이 있어. (...) 훌륭한 역을 만들어, 쓰쿠루.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너만의 역을.

너는 멋진 색채가 가득한 다자키 쓰쿠루야. 멋진 역을 만드는 다자키 쓰쿠루야. 지금은 아무것도 없어도 좋아. 힘껏 몸을 웅크리고, 때가 오기를 기다리면 돼.

아오는 쓰쿠루의 침묵을 침착하고 강인한 정신으로 읽었고, 아카는 쓰쿠루의 소극적 자기표현과 인간관계를 안정감으로 읽었고, 구로는 쓰쿠루의 무색무취한 성향을 투명한 아름다움으로 느꼈으며 심지어 그를 사랑했다고 말한다.

심지어 독자들도 쓰쿠루의 매력을 잘 알고 있다. 437 페이지의 꽤나 긴 장편 소설을 단숨에 읽는데에는 소설의 흥미로운 플롯 뿐만 아니라, 쓰쿠루의 다정하고 섬세한 세계관과 그 세계관에서 나오는 아름답고 서정적인 표현들이 큰 역할을 했다.

소설은 3인칭 전지적 시점이지만 아래는 쓰쿠루 만의 표현들이다.

분노는 진득한 액이 되어 골수에서 빠져나와 끈적하게 흘렀다. 폐는 미쳐 버린 한 쌍의 풀무가 되었고, 심장은 액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밟은 엔진처럼 회전수를 올렸다. 그러고는 들끊는 검은 피를 몸 구석구석까지 흘려보냈다.

따스한 피가 흐르고 아직도 조용히 맥박 치는 인연의 끈을 날카롭고 소리 없는 손도끼로 싹둑 잘라 버리는 것처럼.

질투란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감옥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죄인이 스스로 옥문을 잠그고 열쇠를 철창 밖으로 던져버린 감옥이기 때문이다.

(절연 후 몸과 마음이 망가진 쓰쿠루를 걱정하는 엄마에게) "이런 건 내 나이 때에 자연스러운 변화일 뿐이고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변한 몸에 맞는 새 옷 몇 벌이야"

(구로의 도자기 작품을 보며) 전체적으로 두툼하니 육감적이고 테두리의 선이 미묘하게 뒤틀렸으며 세련되고 예리한 아름다움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에는 사람의 마음을 신비롭고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맛이 있었다. 살짝 깨어진 균형이, 거칠거칠한 감촉이, 자연 소재의 천을 만지듯, 마루에 앉아 하늘에 흐르는구름을 바라볼 떄처럼 조용한 안정감을 가져다 주었다. (...) 쓰쿠루는 그 문양이 하나하나 무엇을 나타내는지 확인하기 위해 눈을 가까이 대 보았지만 형상의 의미는 알아낼 수 없었다. 이상한 도형이었다. 그러나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보니 숲 바닥에 이리저리 흩어진 나뭇잎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름 모를 동물들이 사람 눈에 띄지 않게 은밀히 소리도 없이 살며시 밟고 가는 나뭇잎이다.

쓰쿠루는 상처를 안고 고독하게 혼자 살아왔지만 그는 그의 내면을 외면하지 않았다. 자신이 느끼는 고통을 마주했고 그는 자신의 몸에 흐르는 피의 뜨거움을 느껴왔다.

질투에 대한 표현에서는 그의 사색의 깊이가 느껴진다.

20살 몸과 마음이 망가진 절박한 상황에서 어머니의 걱정에 방어적 감정을 가지고 대응하기 보다는 의연하게 자신의 상황을 전달하는 모습에서는 강인함이 느껴진다.

그의 표현들은 섬세하고 서정적이지만 한편으로 공대남스러운 비유들이 눈에 띄는데 그는 그 자신이 딱딱하고 재미없는 공대남이라고 여기지만 옆에서 보기에 그의 비유는 참신하고 매력적이다.

또한 도자기의 미를 감상하는 모습에서는 보통 사람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심미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재미있는 사실은 쓰쿠루의 감각적 표현들이 대부분 전지적 작가의 입을 빌린 내면 서술로 나타나지 입 밖으로 발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쓰쿠루는 자신의 차분하지만 매력적인 색을 꽁꽁 숨겨놓으면서 자신이 무색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거다. 주변인들은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쓰쿠루의 매력을 느껴왔지만 쓰쿠루 자신만이 자신의 매력을 알지 못했다.

이쯤오니 헷갈린다. 그가 고독하게 세상과 거리감을 두고 살아갔던 건 단지 상처 때문이었을까? 상처 받기 이전 학창 시절에도 자신이 친구들 그룹에서 색이 없이 동떨어졌다고 느꼈던 것을 생각하면 그의 고독이 어쩌면 그의 타고난 기질에서 온 자발적 고독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연약했던 사춘기에 안정적 교유관계를 통해 자아가 성숙되기 전에 받는 큰 상처가 지금의 쓰쿠루를 만들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서도 말이다.

힘 빠지는 후반부, 이해될 필요 없는 이야기

순례 중에 만난 옛 친구 아오, 아카, 구로 세 명의 말을 옮겼지만 왜 시로의 말을 옮기지 않았냐 궁금할 지 모르겠다. 시로를 이미 6년 전에 죽어 더이상 말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쓰쿠루는 아오, 아카, 구로 각자를 만나며 그때 절연의 진상을 듣게 된다. 황당하게도 그때 시로는 자신이 쓰쿠루에게 강간 당했다고 말하며 심적 고통을 호소했고, 고통스러워하는 시로를 외면할 수 없는 세 친구들은 시로를 위해 쓰쿠루를 잘라낼 수 밖에 없었다. 평소의 쓰쿠루가 강간 같은 행동을 할 리가 없다는 것을 친구들은 알고 있었기에 시로의 말을 믿었던 건 아니지만 시로가 매우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에 친구들은 어떤 행동이든 취할 수 밖에 없었고 혼자 도쿄로 가버린 쓰쿠루를 잘라버리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쉽게도 시로는 20대 내내 악령처럼 달라붙은 마음에 병을 못이겨 시들어가다가 혼자 나고야에서 떨어진 하마마치에서 목이 졸려 살해 당한 채 발견된다.

소설은 설명되지 않은 절연의 진실을 찾기 위한 쓰쿠루의 순례를 따라가며 긴장감을 높이지만 소설에 끝에 가서도 시로가 왜 쓰쿠루가 강간을 했다는 누명을 씌었는데, 어떤 경위로 살해 당했는지 전혀 밝히지 않는다. 사실관계에 대해 암시 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 어떠한 설명 없이 끝나버리는 전개에 맥이 빠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한편으로 영원히 알 수 없는 진실이 마음 깊게 남기도 한다.

추리 소설에서의 살인는 범행의 동기와 방법이 무조건 밝혀져야 하지만 현실에서의 살인 꼭 그렇게 진실이 밝혀지지는 않는다. ‘아니 그래도 소설인데 찝찝하게 끝낼 수는 없지’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사실 시로가 죽은 이유를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다.

순례 과정에서 밝혀지길 시로는 쓰쿠루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실제로 강간을 당했으며 강간 과정에서 임신을 했다. 이전부터 낙태를 반대했던 시로는 강간 당해 생긴 아이라도 낳으려고 했으나 유산을 했다. 시로의 정신은 강간 이후 오래도록 위태로웠으며 연주를 즐겼던 피아노도 전공, 그리고 업으로 삼으니 자신의 재능의 한계를 느끼고 고통 받는다. 그녀는 시름시름 앓다가 시들어버렸고 그녀의 생명력이 다해버렸던 것이다.

여전히 그녀의 거짓말과 살해의 진실은 알 수 없지만 그녀가 거짓말에서 그녀의 불안정한 정신으로 이해할 수 있고, 그녀가 살해 당하지 않았더라도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였다고 이해할 수 있다.

죽음이라는게 그렇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는 그 영원한 침묵의 강 너머에 다가설 수 없다. 산 자들이 스틱스 강 앞에서 느끼는 막막함이 전해지는 소설의 결말이 슬프지만 공감이 가기도 한다.

오히려 아쉬웠던 부분은 소설 마지막 장에서 길게 이어지는 쓰쿠루의 내적 독백이다. 쓰쿠루는 자신이 ‘가야할 장소가 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기차)역’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이런 저런 내적 독백을 하는데 이 부분이 조금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입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 쓰쿠루 성향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쓰쿠루가 순례를 거치고 마음의 상처를 회복했다고 느끼기는 어려웠다. 그는 여전히 자신을 의심하며 자신을 삼켰고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마지막 장에서 그에게 필요했던건 말과 행동이었다. 독자들은 쓰쿠루가 원래 남들과 거리를 느끼는 고독한 기질을 가지고 있는 걸 알고 있다. 단지 어릴 적 친구들과의 절연에서 온 상처가 성장의 시간을 멈추었을 뿐 츠쿠루가 조금만 마음을 열어도 세상이 그를 반겨줄 것을 알고 있다. 그가 새벽 4시에 사랑하는 사라에게 전화해 자신을 감정을 토로하는 모습을 보며 그의 마음이 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지만 쓰쿠루가 조금 더 극적인 행동을 하는 모습을 난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