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요리

저번에 쇼츠에 올렸던 파로호 캠핑 때 만났던 주민 부부가 주신 고추를 이리저리 잘 해먹었다.

중국 품종의 고추인데 이름은 청초라고 한다. 크기가 크다보니 맛은 오이고추와 같은 시원상큼한 향이 나면서도 맵기는 청양고추 보다 약간 덜 매운 정도로 생으로 먹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가장 쉬운 활용은 역시 파스타에 넣는거다. 특별한 건 없지만 맛있다.

공들여 키우신 작물을 나눠주셨는데 좀 더 성실하게 즐겨야겠다. 청초에 대한 정보를 한글로 구글에 검색하니 별로 말해주는게 없어 제미나이에게 물어보니 이런 저런 요리를 추천해준다.

제미나이가 양고추(酿辣椒)라는 요리를 추천해준다. 저 한자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설명만 들어도 쉽다.

'고추 속을 채웠다'는 의미로, 큼지막한 고추의 특성을 살리기 좋은 요리입니다. 훌륭한 밥반찬이자 일품요리입니다.

- 만드는 법:
    1. 고추를 반으로 갈라 씨를 파냅니다.
    2. 다진 돼지고기에 생강, 파, 간장, 전분 등을 넣어 양념한 소를 고추 안쪽에 채워 넣습니다.
    3. 기름 두른 팬에 고기 쪽부터 노릇하게 지진 후, 뒤집어서 고추 쪽도 익힙니다.  
    4. 물을 살짝 붓고 간장, 설탕 등으로 만든 소스를 넣어 졸이듯이 익혀냅니다.

집에 푸드프로세서가 있어서 다지는 것만 쉬운게 없다,,, (사실 대용량으로 다질 일이 없어서 제일 안 쓰는 요리가전이 푸드프로세서다)

열심히 고추 안에 채워넣고 굽자

소스를 만들어 같이 졸이면 끝! 아에 채워진 고기가 간장, 두반장, 굴소스 등의 조미향이 강한 만두속과 같은 맛이라고 상상하면 된다. 돼지고기의 냄새와 자극적인 조미향이 맛있다면 맛있고 평범하다면 평범한데 여기에 약간 흐물해졌지만 여전히 아삭하고 시원한 고추가 함께 씹힐 때 오는 향이 상큼하게 다가온다.

다시 고추 속 채우기 귀찮아서, 남은 고기를 고추와 같이 볶아 밥 위에 얹어 먹었다. 덮밥에 맞게 간도 맞추고 다 했으나 뭔가 부족하다,,,

그래! 달걀! 그래! 태국! 그래 팟 크라파오!

먹으면서 태국식 덮밥이 생각이 난다. 남은 고기를 다시 볶을 때는 동남아 피시 소스를 조금 넣고 달걀도 부쳐서 얹는다. 이제야 맛있다.

남은 청초는 제육과 야식으로 잘 활용되었다. 참고로 밖에서 파는 걸 본 적은 없는데 제육 우동이 술 안주로 진짜 좋다. 한번들 해먹어보라.

올리는 김에 최근에 먹었던 것들도 쭉 올리자면 먼저 구미 싱글벙글 본점의 복어 매운탕과 복어튀김. 내륙 한복판에 있는 구미에 뭔 복어집이냐 하겠지만 나름 전국 여러 지역에도 체인이 있는 복집이다. 새콤달콤한 매운탕이라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맛인데 어릴 적부터 먹어온 나는 이게 똑바로 된 매운탕이며, 복 매운탕이라고 생각한다. 복튀김도 맛있는데 예전 맛이 아니다. 어릴 적 구미 촌구석에 살던 내가 고급 일식 튀김 요리를 먹어볼 일이 없었는데 이 곳에서 처음 복튀김을 먹었을 때 깜짝 놀랐었다. 오로지 본점에서만 그 맛이 나는데 주인 할머니가 어마어마한 요리 실력자라는 것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참고로 내 비-구미 주변 친구 대략 10명 정도한테 싱글벙글 매운탕을 먹여봤는데 모두가 극찬을 하니 나중에 기회되면 먹어보자.

청정 칼국수라고 구미 본가 바로 앞에 있는 칼국수 집이다. 이 집도 벌써 영업한 지 15년이 다 되었을거다. 학창 시절에 자구 가서 먹었던 곳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맛이 변함 없다. 바지락 칼국수와 들깨 칼국수를 파는데 둘 다 맛있다.

최강 해장의 동대문 할머니 냉면이다. 다들 평양 계열의 냉면을 주로 말하는데 이 할머니 계열의 냉면들도 나름 역사가 깊다. 이제는 사라진,,, 내 영원한 사랑,,,, 혜화의 할매 냉면,,,,과 여기, 그리고 여러 불냉면 계열들 말이다. 매운 음식을 잘 먹지만 매운 음식을 맛있다고 느끼진 않는데 이 집의 매움은 뜨겁다! 맛있다!

예전에 친구가 밤새 술 먹은 다음날 불냉면 돈까스 집에 날 데려가서는 무지하게 매운 냉면을 먹으며 아~~ 해장된다라고 할 때 이해를 못 했는데 맛있는 할머니 냉면과는 가능하다!

후식으로 커피. 신당에 있어 자주는 못 가지만,,, 언제나 맛있는 오버나잇,,, 신당에 살던 예전 여친 덕에 가게 된 곳인데 내가 여친 집 갈 때마다 오버나잇 가야한다고 지랄해대서 여친이 내가 자기 보러 오는게 아니라 아니라 오버나잇 가려고 신당에 온다고 진심으로 생각했었다,,,,

갑작스럽게 친구들이랑 만나서 먹게된 도다리, 도미, 전어다. 종로에 도연회포차라는 곳인데 맛있으니 다들 애용하시길. 사실 친구의 친구도 술자리 꼈는데,,, 친구분이 너무 예쁘셔서,,, 미모에 눈 멀어,,,, 회 맛이 기억 안 남,,, 맛있었던 것 같음,,,

할머니 냉면이 청량리와 그리 멀지 않은 답십리에 위치한 성천막국수. 같이 간 친구가 자긴 초등학교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먹었다며 재작년에 처음 먹어본 나같은 녀석이 뭘 알겠냐며 주름을 잡는 곳이다. 동치미 국물로 낸 막국수인데 먹기 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맛이다. 많이 안 먹는 친구가 남긴 면과 육수까지 뺏어서 다 비웠다.

옆에 보이는 짠지는 원래 다대기랑 섞어먹기로 유명한데 친구가 그렇게 먹으면 안 된다고 잔소리한다. 믿고 그대로 먹어봤는데 안 넣는게 훨씬 맛있다. 혹시 성천막국수에 가게 되면 참고하시길,,,

여담으로 여기 동치미 육수로 유명한 곳인데 이번에 찬찬히 먹어보니 묘하게 고기 육수 향이 난다. 양지 쯤으로 추측되는데 내가 고기 육수의 종류를 구분할 줄 몰라서 확실하지는 않다. 약간의 양지 육수를 동치미 육수와 배합하는거 아닐까 생각되는데 인터넷에 찾아도 아무 정보가 없다,,, 남들이 다 동치미라고 말하니 자신감이 좀 사라진다,,, 막국수를 먹은지도 시간이 지나서 확신도 없다,,, 다음에 먹을 때 분명하게 판단해봐야겠다.

성천막국수 근처에 있는 팡드시라는 베이커리 카페. 그냥 친구랑 배 두드리며 산책하다가 동시에 멈춰서서는 저기 가자 하고 방문한 곳인데 역시 먹보들은 맛있는 걸 찾는 재능이 남다르다. 커피는 평범하지만 흠잡을 것 없는 맛이어서 좋았고 빵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맛이었다. 비름나물이 들어간 발효빵인데 맛이 심상치 않다. 주인 아주머니도 귀여우시고 인테리어도 귀엽다.

개기월식

늦은 밤에 개기월식이 있다길래 봤다. 01시 26분에 시작해서 05시 56분에 끝난다니 끝까지 안 보더라도 3시까지는 볼 수 있겠거니 했다. 어디 용인 사람 없는 호수에라도 갈까 잠시 고민했으나 차 끌고 가면 술도 못 먹겠다 싶어서 말았다.

일식이 시작될 때쯤 집에서 창문 너머로 하늘을 보니 달이 약간 가려져있다. 월식이라고 생각하면 신기하기는 한데 그냥 보름 가까운 달이라고 생각하니 아무 감정이 안 든다. 그냥 코딩이나 더 한다.

코딩하는 중간중간 계속 창 밖을 확인했는데 볼 때마다 달이 줄어들고 있다. 각 순간순간 달의 모습은 크게 인상적이지 않으나 짧은 시간에 달이 변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두근거린다.

결국 달이 완전히 가려지고 나서 더이상 참을 수 없어 집 옥상에 올라가버린다.

왜 달이 완전히 가려졌는데 옥상에 올라가느냐? 위에 나무위키에서 가져온 영상에서처럼 달이 지구 그림자에 의해 완전히 가려지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게 아니라 지구의 노을 빛을 반사해서 붉은 빛을 띄게된다. 자세한 이유는 제미나이에게 물어보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자.

옥상에 올라가니 붉은 달이 잘 보인다.

아무래도 태양의 직사광을 반사하는게 아니니 빛이 약해서 옅은 구름에도 달빛이 가려지기는 하지만 구름이 잠시 걷혔을 때 색이 매혹적이다.

옆 동에 보니 다른 아파트 주민도 개기월식을 보러 옥상에 올라와서 담배를 피고 있다. 보기가 참 좋다.

잠시 보고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이어폰으로 Dark Side of the Moon을 들으며 달을 보다보니 한시간이 지나있다. 그리고 붉은 달이 어두워지더니 다시 손톱달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선명하게 빛나는 달빛을 보니 참을 수 없다. 집에서 맥주와 의자, 그리고 좌상을 챙겨서 다시 올라온다.

멍하니 Andy Stott의 Luxury Problems를 들으며 달을 바로 본다.

아쉽게도 이 시점에는 달이 구름에 가려질 때가 많아서 달이 차오르는 모습을 쭉 관찰하기 힘들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시원한 가을 밤에 맥주까면서 하늘을 보니 그냥 좋다.

태양 보다 달이 좋다. 태양은 너무 강렬하고 자극적이라서 햇빛을 맞다보면 정신이 흐려지는데 달빛은 고요하고 차분해서 정신을 안정시킨다. 바다 보다는 호수가 좋고, 도시 보다는 자연이 좋은 것도 다 같은 이유다.

멍하니 술을 마시다보니 해가 떠버렸다. 자야지

MBTI

MBTI 이야기는 언제 그만 나올까? 싶지만 계속 나온다. 타이레놀에 내성이 생기듯 이제 MBTI에 대한 내성도 생겼다. 예전에는 MBTI 이야기가 나오면 열심히 ‘어? 저는 뭐에요!’, ‘누구씨는 뭐에요? 아뇨 제가 맞춰볼게요! 저 그런거 잘 맞춰요’ 라고 했었는데 요즘은 ‘MBTI요? INTP던가’, ‘아,,, 예,,, 예,,,,‘하고 만다. 혹자는 그 전의 내 대답이 더 내성이 생긴 반응이 아니냐고 물을 지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다. 나 같은 찐따는 난처한 상황에 처해있을 때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정신 없이 하고, 편안한 상황에서 그다지 말을 하지 않는다.

MBTI를 기피하는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가. 먼저 MBTI의 성격 유형 구분이 나에게 크게 와닫지 않는다. 사람의 가치관이나 삶의 태도에 따라 사람들의 읽어내는 방식이 천차만별이고 나 또한 나만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사는데 내 기준과 MBTI는 썩 맞지 않다. 이를테면 이런거다. 가정적인 남성을 선호하는 여성은 남성을 볼 때 가정적인가 아닌가 여부를 중점적으로 볼테고, 리더십을 중시하는 인간은 리더십 여부를 중심으로 사람을 판단할 것이다. 이때 그 사람이 타인의 성격을 이해할 때 사용하는 언어가 MBTI와 다르다면 ENFJ니 ISTP니 하는 말들은 단순한 알파벳의 나열일 뿐이다.

또다른 이유를 하나 더 대자면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듯 MBTI는 자기 암시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느끼기에 MBTI를 말하는 것이 꺼려진다. 과학적 분석 방법이 아니다보니 MBTI는 비교적 객관적인 심리학의 다른 성격 유형 검사법과 달리 자신이 생각하는, 아니 자신이 지향하는 자신의 성격 특성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이 성격 특성을 세상에 말하는 것은 자신이 세상에 표방할 수 있거나 하고 싶은 자신의 성격 지향을 말하는 것이다. 이게 문제다. 사람이라는게 원래 약아빠져서 귀신 같이 자기가 피하거나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하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외부에 표방하는 자기 성격이라는게 그렇게 진실될 지 잘 모르겠다.

MBTI가 자신이 표방하는 성격 지향이라고 했을 때 MBTI는 상품 시장의 브랜딩과도 유사한 행위다. 상품이 자신이 시장에 표장하고 싶은 이미지를 표방하고 소비자에게 인식시키는 브랜딩이랑 사람들에게 자신의 표방하는 성격 이미지를 알리고 인식시키는 MBTI는 지극히 닮았다고 느낀다. 그게 잘못됐냐하면 그건 아닌데 일상적인 만남에서도 자신을 시장에 표준화된 기준으로 브랜딩하는게 내 지향이 아니라서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MBTI를 기피하는 마지막 이유는 MBTI가 내가 상대방의 성격을 이해하는데에는 유효한 정보를 거의 담지 않아서인데 이는 아래에서 MBTI의 각 성격 기준들을 살펴보며 이야기해보자.

(MBTI를 기피하는 이유를 길게 나열하다보니 내가 MBTI를 많이 싫어한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는데 그건 아니다. 은연 중에 저런 생각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MBTI에 대해 관심이 없다. 글을 쓰다보니 조금 자세히 쓴거다.)

E와 I - 모르는 사람과 즐겁게 대화한다고 외향이 아니야!

외향과 내향에 대한 E/I는 꽤나 합당한 구분법이라고 생각하나 사람들의 외향/내향을 해석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내 MBTI를 맞춰볼 때 다들 E로 추측하고는 한다. 아마 낯선 사람들이 많은 환경에서 왁자지껄 잘 놀아서 그렇게 여기는 것 같은데 내가 생각하기에 모르는 사람과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인다고 외향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첫 문단에 적었듯 난 낯선 사람들이랑 있으면 일단 마음이 불편하다. 모르는 사람 한명이랑 대화하면 그래도 눈을 쳐다보고 대화할 수 있고 단 한 사람과의 대화에만 집중하면 되니 마음이 편한데 모르는 사람 여럿과 있으면 머리가 온통 어지러워서 무슨 말을 할 지 잘 모르겠다. 무슨 말을 할 지 모를 때는 두가지의 행동을 할 수 있는데 하나는 그냥 아무 말이나 던지며 헛소리를 하는거고, 하나는 입을 닥치는거다. 보통은 쾌활하게 웃으며 떠드는 편이긴한데 그럴 때마다 정말 피곤하고 진이 빠진다,,

진이 빠진다는 부분이 핵심이다. 제미나이한테 MBTI에 E/F 파트에 대해서 물으니 아래와 같이 대답한다.

E (Extraversion, 외향): 주로 외부 세계에 관심을 가지며,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에너지를 얻습니다. 사교적이고 활동적이며,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외부로 표현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폭넓은 대인 관계를 맺는 경향이 있습니다.

I (Introversion, 내향): 주로 자신의 내면 세계에 집중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합니다. 조용하고 신중하며, 생각과 감정을 내면에서 깊이 탐구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소수의 사람들과 깊이 있는 관계를 맺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통 ‘사교적이고 활동적이며’, ‘조용하고 신중하며’에 초점을 맞추고는 하는데 나는 외향형에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에너지를 얻습니다’에 초점을 맞춘다. 난 다른 사람들이랑 있으면 에너지가 빠진단 말이다. 단지 분위기에 맞춰 대화하는 능력을 살면서 갖추게 됐고, 말 재주가 있는 편이라서 떠드는 것 뿐이다,,,

분위기에 맞춰 대화하는 능력을 가지는 과정도 정말 험난했다. 어릴 적부터 남들이 관심 없는 것들만 파고드는 힙스터 정신이 가득했다보니 머릿 속에는 항상 사람들이 즐겨 듣지 않는 음악이나 영화, 책, 게임 같은 것들 뿐이었다. 그 상태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건 쉽지 않다. 그 유명한 표현을 알 지 않는가? ‘찐따 특, 지만 아는 이야기 신나게 떠듬’. 내가 항상 그래왔다,,, 지금도 참고 있을 뿐이지,,, 떠들려고 마음 먹으면,,,, 달이 뜨고 지는 내내 떠들 수 있다. 지금은 상황에 맞춰서 말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그렇다고 해서 그런 대화를 즐거워 한다는 뜻은 아니다. 앞에 예쁜 여자가 앉아있는게 아닌 한 일상의 대화는 재미없다. 그러니 에너지가 빠지는거다.

짧게 덧붙이자면 위의 제미나이 설명 중에 ‘외부 세계에 관심을 가지며’, ‘자신의 내면 세계에 집중하며’ 라는 구분이 외향/내향 구분에 적합한 지 모르겠다. 내가 느끼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알게 모르게) 적절한 균형을 가지고 외부 세계와 내면 세계 탐구하다보니 이 구분이 유효한 지 의문이고, 한쪽에 치우친 관심을 가졌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내향/외향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S와 N - 직관과 감각은 같이 간다

MBTI의 S/N 구분법은 제미나이가 이렇게 설명한다.

S (Sensing, 감각): 오감을 통해 직접 경험하고 관찰할 수 있는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정보에 초점을 맞춥니다. 현재에 충실하며,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나무를 보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N (iNtuition, 직관): 사실 너머의 의미, 관계, 가능성을 파악하는 데 더 큰 관심을 둡니다. 미래 지향적이며, 상상력과 영감을 중시합니다. 숲을 보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S와 N은 말 자체는 이해가지만 내가 사람을 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부분이다. 별로 생각하지 않는 부분이니 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지 이유조차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억지로 적자면 대부분 사람들이 감각과 직관이 두드러진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그렇게 유효한 판단 조건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보통 감각에 예민한 사람들이 직관이 좋고, 또 직관이 좋은 사람들이 감각이 예민하다. 직관이라는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살아오면서 감각하는 것들을 예민하게 느끼고 생각해야 직관이 날카로워지는거고 또 반대로 타고나게 직관이 좋은 사람은 일상의 감각을 허투로 보내지 않기에 감각이 예민해진다.

T와 F - T형 인간, F형 인간 둘 다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좋아해

T와 F는 꽤나 납득가능한 분류법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신당에 사랑하는 카페에 갔을 때 주인장과 직원의 대화가 생각난다.

주인장(주): 아,,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네. 집에 갈 때 비 다 맞으면서 오토바이 타야겠네.
직원(직): 오토바이 옆에 달린 가방에 뭐 안 들었나? 꺼내야하는거 아냐?
주: 방수라서 괜찮아
직: 그럼 괜찮네

난 이 대화를 들으면서 ‘둘이 역시 친하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옆에서 듣던 친구는 저 둘이 정말 극단적인 T라며 놀라더라. 흔히 T적 대화, F적 대화라고 말하는 T/F는 확실히 사람을 이해하는데 유효한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같이 있는 상대방이 T이냐 F 따라 내 말이나 행동이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 F형 인간이라고 완전한 공감을 가진 대화를 원하지 않고 T형 인간이라고 완전 이성적인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 T와 F 둘 사이에 적당히 밸런스 있는 대화는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건 진심을 담은 말이다.

J와 P - 이건 오케이

J와 P는 그나마 사람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J 혹은 P의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으며 두개의 성향을 동시에 가지는 사람이 꽤나 드물다고 생각한다. 특히 P형의 경우 후천적으로(돈을 벌어야하니) J형 특질을 갖추는 경우가 많으나(일은 J, 여행은 P 같은거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후천적으로 J 특질을 지닌 사람이 J형 인간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J와 P 구분은 일단 실용적이다. 같이 주말 약속을 보내는 사소한 일 조차도 상대의 유형에 따라 스타일이 많이 달라지기에 상대의 성향을 고려하지 않으면 곤란해지기 쉽다. 이건 모두가 경험했고 공감할테니 굳이 부연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J와 P 구분은 또 상대에 대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P를 기준으로 설명해보자면 P형 인간이라면 아래의 항목들 중 하나, 혹은 여러 개의 성격적 특성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위에 성격적 특성들은 사람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정보라고 생각하며 J와 P 구분을 기준으로 생각을 확장해나가는게 유효한 접근법이라고 생각하기에 MBTI에서는 가장 쓸만하다고 생각되는 성격 분류이다. 하지만 P와 J로 사람을 성격을 나누기 보다는 위에 적은 P가 지닐 수 있는 여러 성격적 특징에 관심을 가지는 편이다.

그래서 니가 가지고 있는 성격 모델은 뭔데?

이쯤 읽었으면 내 MBTI를 추측할 수 있었을거라고 생각한다. 내 MBTI는 INTP다.

제미나이가 말하는 INTP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INTP의 핵심은 '끝없는 지적 탐구와 논리적 분석'입니다.

1. 지적 호기심: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야가 생기면 누구보다 깊이 파고들어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쌓습니다.
   
2. 뛰어난 분석력과 논리: 복잡한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 보고, 비합리적이거나 모순되는 부분을 기가 막히게 찾아냅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상황을 분석합니다.

3. 독창성과 창의력: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이들의 머릿속은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이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4. 자율성 중시: 규칙이나 위계질서에 얽매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며, 자신의 방식대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을 선호합니다.
   
5. 내면 세계: 겉으로는 조용하고 무심해 보일 수 있지만,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생각과 아이디어가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어째 내 성격을 잘 대변하는 듯해서 주절주절 MBTI 욕한게 부끄러워진다만,,, 나는 내 성격을 이런 방식으로 표방하지 않는다. 내키지 않고 부끄럽지만,,, 내가 상대방의 성격을 읽어내는 방법을 위에 쓴 글을 토대로 밝혀보고자 한다.

내가 타인의 글을 읽을 때 가장 눈여겨 보는 건 상대가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이다. 이 글에서 난 ‘유효한’, ‘실용적’, ‘중요한’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MBTI가 쓸모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독자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성격을 유형을 분류하기 ‘유효한/실용적 기준’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나는 ‘나만의’ 성격 기준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전혀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남들 다 쓰는 MBTI라는 통용되는 언어를 안 쓰고 ‘자신만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성격을 이해하는 기준을 말하면서 그걸 어따 써먹는지는 전혀 밝히지 않으니 독자들은 이 인간이 뭔 소리를 하나 생각이 드는게 당연하다. 다르게 말하자면 타인의 성격을 이해하는 기준들을 이야기하면서 묘하게 타인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있다. 내가 타인이랑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을 지향하는지, 나만의 성격 판단 기준을 가지고 타인과 소통을 하겠다는 건지 무슨 분류학 데이터라도 쌓고 싶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앞서 글 초반 부에 말했듯 인간은 약아빠져서 자기가 피하거나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하지 않으려고 애쓴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내가 뭔가를 말하기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을 말하기 두려워할까? 힌트는 E와 I에 대한 이야기에 있다.

E와 I 대한 이야기에서 난 타인과 대화에 대한 피로감을 말하고 있다. 성장해가며 편안하게 대화하는 스킬이 생겼다고 강조하지만 진실된 소통 능력이 올랐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부담스러운 상황을 쉽게 모면할 수 있는 대화 능력이 향상됐다고 자랑하고 있다.

그렇다 난 타인을 두려워하고 있는거다. 그리고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타인과의 대화 능력이 성장했다고 강조하지만 그 강조 뒤에는 타인에게 헛소리를 내뱉으며 광대짓을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다. 그러니 ‘앞에 예쁜 여자가 앉아있는게 아닌 한 일상의 대화는 재미없다’ 같이 자기가 플레이보이인 양 허세나 부리며 헛소리나 하고 있는거다.

글을 통한 나에 대한 분석은 여기까지만 하자,,,, 너무 부끄럽다,,,,

나는 이런 식으로 타인이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들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의 흐름, 기제들을 읽고 상대를 이해한다. 개인의 고유한 감정과 두려움들이 전해질 때 난 더이상 상대가 두렵지 않고 상대에 대한 진지한 소통을 나눌 수 있다.

난 사실 낚시에 관심 없나

낚시를 하기 위해 강원도로 원정을 떠났다.

같이 가는 친구를 삼성역에서 픽업하기로 했기에 그 전에 양재에 사는 두리안이랑 밀란 콩국수를 먹는다. 원래 서리태 콩국수만 있었는데 백태 콩국수가 추가됐다. 서리태 향이 빠지는 대신이 간이 약간 쌔고 좀 친숙하지 않은 조미료 맛이 강해진게 특징이다. 맛있는데 앞으로는 원래 먹던 서리태 콩국수를 먹을 듯하다. (사진은 없지만 내 사랑 카페올에서 커피도 테까웃 함)

삼성역에서 친구를 픽업하고 출발! 오후 3시에 출발해서 그런지 서울 양양 고속도로가 그렇게 막히지 않는다. 대략 한시간 반만에 춘천 이마트에 도착해서 장을 보고 다시 목적지인 파로호로 출발!

중간에 딴산에 잠시 들렀으나 그냥 담배만 피고 도망친다. 딴산 자체는 엄청 멋진데 사람이 너무 많다,,, 저 현수막이며, 절벽 위 전망대들을 보라,,,

파로호 도착하니 6시 40분 쯤이었다. 해지는거 보면서 술 먹는게 도착하기 전에 해가 질까봐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제시간에 도착했다.

저번에 차 타고 정처없이 다니다가 발견한 포인트인데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어르신들이 바로 옆에서 술을 드시고 계셨다. 일단 동네 분들인 것 같으니 최대한 무해하게 웃으며 인사를 드린다 안녕하십니까!

이런 시골 동네에서는 무조건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 주민들의 눈 밖에 나면 나 같은 뜨내기들은 편하게 있기 힘들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주민들의 삶의 터전에 들어온 이방인이자 손님이기에 지역 주민 의사가 우선시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어르신께서 편안하게 말을 건네주신다. ‘뭐하러 왔어?’. 0.5초 정도 시간 동안 고민한다. 어떻게 말하는게 최선일까? 어떻게 말하는게 가장 불청객스럽지 않을까? 해맑게 웃으면서 말을 한다. ‘술 마시러 왔습니다!’

다행히도 어르신이 ‘어 그래? 이리와. 술 한잔 줄게’라고 말해주신다.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아싸! 문제없다!’. 공손하게 ‘저희 짐만 다 풀고 감사히 받겠습니다!’하고 신나게 짐을 푼다.

짐을 다 풀고 잠시 땀을 식힌 후에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드리며 술을 받으러 간다. 그렇게 4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술자리가 시작된다.

상상 이상으로 유쾌한 술자리였다. 일단 자리에 앉자마자 가장 큰 어르신이 ‘잔 들어봐~ 술 줄게~’ 하며 말해주신다. 그렇게 술을 먹으니 거기서 굽게 계시던 고기도 건네면서 ‘얼른 먹어~‘라고 해주신다. 잠시 인사만 드리고 노을을 구경할 생각이었으나, ‘이럴 때 어른들이 챙겨주는 음식 먹으면서 부모님 생각하는거지’라며 권하시는데 안 먹을 수가 없다. 그리고 두루치기를 한점 집어먹는 순간 ‘아!’하고 속으로 외쳤다.

문화는 지혜의 저장고이다. 수없이 많은 한국인들이 희석식 소주 역사 100여년 간 얼마나 많은 소주를 먹었으며, 소주를 마시면서 소주의 친구를 찾아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매치 메이킹을 했을까? 그 과정에서 호! 불호!가 문화에 쌓이고 쌓이다가 남은 녀석들은 진짜들이다. 다시 말해 두루치기는 소주의 영원한 연인이며, 특히 맛있는 두루치기는 말이 불필요하다.

먹으면서 알게된 사실! 낚시 하신다고 사진에 안 나온 한 분까지 포함해서 두 부부가 술을 드시고 계셨던거고 60대의 부부는 동네에서 농사를 지으시며 사시는 분들이었고, 80대의 부부는 파주에서 해장국 집을 하시는데 이곳에 낚시하고 술 먹으러 놀러오신거였다. 두 부부는 약 25년 전 식당에서 만난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었으며, 파주의 80대 부부가 종종 파로호에 놀러오실 때마다 함께 술을 마시며 호수와 인생을 즐기신다고 하신다.

두루치기는 식당하시는 80대 부부께서 챙겨오신거였고, 두루치기 뿐만 아니라 1년 묵힌 김장 김치, 파김치를 잔뜩 들고 오셔서 술과 함께 먹으라고 계속 권해주신다. 사랑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최대한 방어적으로 어르신들이 권하시는 것들을 사양하고 있었으나, 어느 순간 ‘제가 술 한 잔 올리겠습니다’라고 먼저 말하고 있고, ‘술 마시러 온 저희가 술이 많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며 우리가 가져온 술을 계속 술자리에 가져오고 있다.

그렇게 마음이 열리는데에는 어르신들의 따스한 마음이 큰 역할을 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어르신들 모두 나와 친구보다 훨씬 연장자셨지만 아주 사소한 말과 동작 하나하나에서 깊은 배려심이 느껴졌다. 예를 들어 이렇게 술을 권하고 술을 한잔 따라달라고 부탁하시는 어르신들과 술 먹을 때 느껴지는 아주 사소한 거친 제스쳐나 말툰 같은 것들이 하나도 없고, 오히려 그 부탁 하나하나에서 즐거운 인생을 함께하는 동료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그러니 술을 안 먹을 수 있겠는가.

술을 마시다보니 해가 지는 호수의 모습을 보는 건 놓쳤지만 그런 건 이미 안중에도 없다. 신나게 떠들다보니 11시가 됐다.

다음날 돌아갈 때 동네 주민 부부네 집에 방문드리기로 약속하면서 자리를 끝마친다.

이마트에서 사온 밀키트 부대찌개를 끓이며 술을 마신다. 잘 모를까봐 말하는데 캠핑갈 때 이것만 사면 된다. 그냥 최고다.

빛이 거의 없는 호수를 보며 술 마시고 담배피고,,, 그러다가 호수에 들어가서 수영하고,,,

호수물은 적당히 미지근하다. 아무것도 안 보이기는 하지만 물살이나 조류가 없으니 그렇게 무서워할 건 없다. 물에 둥둥 떠다니면서 몽롱하게 밤하늘을 즐기며 술을 깬다. 담수라서 편안하게 떠있지는 못하는데 팔뚝에 끼는 튜브 정도 있으면 더 좋을 듯하다.

(빛이 거의 없어 사진을 찍기 힘든데, 바로 위 사진은 억지로 조명이라도 놔두고 찍은거다)

그러다 술이 약한 친구가 먼저 잠들고 난 혼자서 새벽 5시까지 술 먹고 수영하고 술 먹고 수영하고를 반복한다. 술을 엄청 많이 마셨지만,,,

8시에 자고 일어나니 옆에 텐트에서 주무시던 80대 부부는 이미 떠나고 안 계신다. 먼저 일어난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새벽 6시에 짐을 챙기고 떠나셨다고 한다.

아침에도 하는 짓은 비슷하다. 운전을 해야하니 술은 못 마시지만 담배피고 수영하고 담배피고 수영하고,,, 친구는 책 읽다가 자고, 뭐하다가 자고,,, 똑같다.

낚시를 30분 가량 시도하기는 했지만 잡은 물고기는 없다. 어제 어르신들도 12시간이 넘도록 한 마리도 못 잡았다고 하셨으니 억울할 건 없다. 낚시를 하러 왔지만 이 시점에 오니 낚시는 아무 상관이 없다.

놀다가 느지막히 11시 쯤에 자리를 정리하고 돌아가기 시작한다. 어제 약속한대로 동네에 사시는 부부의 댁에 방문한다. 우리 얼굴을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늦길래 안 오는 줄 알았어’라고 말씀하신다. 아,,, 좋다.

짧은 대화를 나누고 헤어지려고 하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시며 텃밭에서 고추와 오이를 잔뜩 따주신다. 아무리 사양해도 소용없다. ‘고추가 너무 맛있어서 나중에 아쉬우면 어떡하냐’고 말씀하시며 고추를 정말 잔뜩 따주신다. 우리 할머니도 고추를 이렇게 많이 따주시지는 않는다.

고추와 오이를 받고 떠나려고 하니 집에서 밥을 먹고 가라고 하신다. 같이 시간을 더 보내고 싶기도 했지만 갈 길이 멀어서 정중하게 사양을 표하며 작별 인사를 나눈다.

시골의 인심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따스한 사람의 마음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돌아가는 길은 역시 국도다. 운전하는 동안 숙취에 고통 받는다. 산 속 깊은 곳을 운전하면서 보이는 아무 식당에 들어간다.

입구부터 범상치 않다,,, 공작이 있다,,,

내부도 장난없다,,, 어마어마한 컬렉션,,,

질경이 비빔밥을 시켰는데 가격은 쌨지만 구성도 괜찮고 맛이 참 좋다. 종업원께서 메뉴 하나하나 내주실 때마다 재료 설명을 해주시는 모습에 요리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돌아가는 길에 멋진 계곡도 발견하고

(아이폰 카메라가 점점 맛이 가는지 점점 요즘 따라 과노출을 많이 잡는다,,,)

커피를 사며 오토바이 부대를 만나서 대화하다 ‘빨리 오토바이 사세요’하고 조언도 듣고

친구네 집에 내려주며 고대생들이 그렇게 자랑하던 이수영 피자도 드디어 먹어보고 여행을 마무리한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니 여독이 심하다. 해 뜰 때 집 앞 호수를 뛰러 나갔다가 5키로 뛰고 사망했다. 몸은 원래 굴리면서 단련해야한다는 생각에 달린건데 뛰는 내내 심장이 찌르듯 아파서 버틸 수가 없다,,, 그리고 오늘 오전 오후 내내,,, 몸이 시름시름하다,,,,

잘 이해하지 못한 타나토스에 대해서

프로이트의 타나토스

어릴 적 프로이트의 글들을 읽을 때 잘 이해가지 않던 개념이 있다. 바로 타나토스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불쾌감을 피하고 쾌락을 주구하는 ‘쾌락 원칙’ 지배된다고 봤으나, 세계 1차 대전을 겪고 인간이 죽음에 대한 근원적 충동이 있다고 말하며 타나토스라는 이야기를 했다. 예를들어 세계대전 이후 참전 군인들이 피하고 싶은 끔찍한 전쟁의 꿈을 반복해서 꾸거나 아니면 거대한 살육이 발생한 세계대전 그 자체, 알콜/마약 중독과 같은 자기 파괴적 행위를 죽음에 대한 충동으로 해석했다.

프로이트의 이드, 에고, 무의식, 리비도 같은 것들에 대해 읽을 때는 개념들이 되게 도발적이고 과격하다고 느끼면서도 묘한 본능적인 끌림이 있었다. 분명 이 사람 뭔가 제정신 아닌 상태도 자기 철학과 인생관을 (당시) 학술의 형태를 빌려 떠드는 것 같은데, 책을 읽다보면 그의 개념들이 나의 몸에 스며들고 이름 없던 몸에 일부분에 이름이 생긴다.

반면 타나토스에 대한 내용을 읽다보면 ‘뭐 인간에게 그런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 정도로 빈약한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나에게 죽음에 대한 충동이 있던가,,,? 잘 모르겠다. 저 아저씨 세계대전 겪고는 좀 어두웠구나 생각하고 말았다.

논외의 이야기지만 라캉 말하는 타나토스를 읽자마자 옳거니 외쳤다. 주이상스다!

나의 타나토스

항상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누구나 그렇듯 이런 저런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는데 그런 생각들 중에 고문을 받는 상상도 있다. 대충 이런거다. 내가 72시간 잠도 못자면서 아주 끔찍한 고문을 받고 있을 때 ‘아 그냥 눈 감고 이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육체적 고문에 의해 마비된 정신은 프로이트가 말한 쾌락 원칙에 따라 죽음으로 평안을 얻고 싶을거라고 생각한다.

고문을 받는다는 상상은 매우 비현실적이지만 왜인지 ‘눈을 감고 편안해지고 싶다는 생각’은 너무나도 친숙하게 다가온다. 사실 난 일상에서 너무 많은 순간 눈을 감아버린다.

내 뜻으로 눈을 감는 순간,,,은 매일 매일 존재한다. 바라보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눈 감아버리는 순간들. 쾌락 원칙에 입각해 평안을 찾으며 나는 눈을 감는다. 아니 죽는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강한 죽음에 대한 충동 같은건 잘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기에 편안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육체가 죽음에 대한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타나토스다.

언제나 ‘아주 먼나라’ 시제로 표현하던 죽음은 사실 현재 시제에서 일어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