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영화를 봤다.
친구랑 같이 갔는데 어쩌다보니 커플 신발이다,,, 내 신발 편해보인다고 친구도 사서 신더라.
F1 영화 소문을 들어서 다들 알겠지만 팝콘 먹으며 신나게 볼 수 있는 영화다. 보는 내내 즐거웠다.
밈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요즘 가장 꽂힌 밈이 있다.
‘지루하고 현학적임’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나서 친구한테 주절주절 영화에 대해 평가한다. 단지 선수 중심이 아니라 F1 팀 내 구성원이 다 나오는건 좋았으나 이런 부분이 아쉽고 저런 부분이 아쉽고, 실제 F1에서는 저런 전략을 쓸 수 없고 과거에 비슷한 사례들이 뭐가 있었고 중얼중얼,,,
지루하고 현학적이다.
어떻게 변명하려고 해도 변명할 수가 없다. 난 정말로 지루하고 현학적이다.
이게 진짜 문제다,,,, 뭔 이야기만 해도,,, 예를 들어 옛날 마리오 64 이야기가 나오면 당시 N64의 아키텍쳐가 어쩌구 저쩌구,,, 오르막 올라가는 애니메이션 코딩할 때 이렇구 저렇구, 저 텍스쳐가 어쩌구 저쩌구,,,
최근에 블랙핑크의 신곡 ‘뛰어!’를 시작부터 2000년대 유치한 팝 같다느니, 갑자기 뭔 테크노 럼블이라느니, 비트는 왜 갑자기 이걸로 바뀌었냐느니, 훅에 sawtooth 브라스는 억지로 넣으려고 믹스한게 후져보인다느니 말이 많다. 그냥 촌스럽다고 하면 끝나는데,,,
문제는,,, 블랙핑크 뮤비 보면서 얼굴 아는 사람이 제니 뿐이라는 사실에도 충격 먹는다,,,
나이 먹고 눈치는 생겨서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지만 내 머릿 속에는 이런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러니 할 말이 없다. 뭔가를 피해서 말하려고 하면 일단 피해야할 것들을 생각해야하다보니 썩 그럴 듯한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이게 참 피곤하다,,,
모든 것들의 해상도가 높아지고 있다. Full HD 타령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유튜브는 4k가 아니라 8k 스트리밍을 지원하고 애플 뮤직은 고해상도 클래식 스트리밍을 하고 있다.
해상도가 뭐냐? TV화면을 기준으로 설명하면 빛을 쏘는 점의 갯수가 많다는 뜻이다. 갯수가 많으면 더 섬세하게 많은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해상도가 높아지는건 영상과 음악만이 아니다. 당장 인터넷에 어향가지 만드는 법을 검색해보라. 오조오억개의 어향가지을 만드는 방법이 담긴 글과 영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보들이 미친듯이 자가 증식하고 사라지지 않으니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성벽이 되어버렸다.
모든 것들이 너무 빽빽해서 피로하다. 고해상도 모든 것들의 성벽이 숨 막힌다.
요즘 음악을 들어보라. 디스코, DnB, RnB, 신스팝, 하우스 등등등,,, 향수, 헌정, 오마쥬니 뭐니 하지만 다들 거대한 성벽에 갇혀서 비집고 들어갈 틈을 못 찾고 있다.
청년문화의 선두자들을 자청하는 힙스터들은 새로운 음악, 새로운 문화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아카이빙된 과거의 문화를 물고빨기 바쁘다. 이게 청년문화,,,?
AI는 여기에 한술 더 뜬다. 과거의 모든 것을 재생산하는 시체 제조기가 되어 인터넷을 잠식하고 우리의 뇌를 갉아먹고 있다. AI가 만든 모든 것들을 볼 때마다 바퀴벌레 시체더미가 생각난다. (공학도가 이런 표현을 써도 되나 모르겠다,,,)
이건 푸념, 체념, 좌절이 아니다.
빈틈을 채우는 것이 인간의 고유한 속성이다.
끝없이 기계적으로 채워온 우리 문명은 이제 우리가 만든 성벽에 갇혀버렸다.
이 문명에서 비어있는건 인간이다.
이제 우리가 채워야할 빈틈을 인간이다.
인간은 다시 인간을 채워나갈 것이다.
찰리 XCX 노래를 평소에 듣지는 않는다. 몸매는 내 취향이지만,,, 음악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저번 연두색 앨범도 몇번 듣다가 말았다.
유튜브가 뜬금없이 이런 영상을 던져줬다. AIR x Charli XCX ???
조합이 그렇게 잘 어울릴 것 같지는 않아서 그렇게 기대는 안 되지만 재생 버튼을 눌러본다.
영상 시작부터 갸루들이 미친듯이 소리를 지른다,,, 뭐 당연하지,,,
하이패스에 Resonant가 튕기듯이 걸린 비트가 시작되는데 정말 Charli XCX스러운 소리인데 원곡과도 잘 어울린다. 굿!
그리고 아름다운 Cherry Blossom Girl이 시작된다.
찰리의 보컬이 시작되는데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 AIR 노래 보컬 특유의 힘빠지고 에테리얼한 소리가 라이브에서 쉽지 않고, 아무래도 Charli XCX가 전면으로 나온만큼 믹싱에서도 찰리의 보컬이 부각되다보니 어쩔 수 없나보다.
그리고 스튜디오 버전을 들어보면 원래 보컬에 밑에 더블링으로 깔리는 저음 보이스가 있어야하는데 덩켈이 라이브에서 원래 맡았던 고음 보컬 역할을 그대로 하다보니 고음이 약간 중첩되는게 썩 자연스럽지는 않다.
근데,,, 묘하게 마음에 든다.
느껴진다. 찰리가 이 노래를 무지하게 사랑한다는 사실이 느껴진다. 요즘 쇼비즈니스의 지랄병 콜라보, 상품 이미지에다 다른 이미지 때려넣기가 아니라 그냥 찰리가 이 노래를 무지하게 좋아한다.
찰리가 자신의 목소리 톤을 최대한 절제하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그 곡에 자신의 목소리를 부여하며 행복해하는 것이 느껴진다.
묘하다. 사실 음악적으로만 놓고보면 별로인데 싶은데도 계속 듣게된다.
나도 이 노래를 사랑해서 그녀의 사랑이 잘 전해지나보다.
친구가 뜬금없이 밤 11시에 드라이브 뛰자고 집 앞에 왔다.
수비드 해놓은 고기랑 맥주를 마시려던 참이었는데 잘 됐다.
고기랑 맥주를 들고 차에 타서 신나게 마신다. 행복하다.
미국 어떤 주는 동승자도 술을 마시면 안 되고 운전자 손에 닿는 곳에 술이 있어도 안 된다던데 우리나라는 상관 없다!
용인 어디 저수지에 도착해서 느긋하게 쉬다가 돌아온다.
역시 남이 운전해주는 차가 최고다.
주말에 구미 내려갔다가 부모님에 아침 내내 집을 비우시길래 혼자 차를 몰고 드라이브를 뛰었다.
예천에 회룡포라는 곳을 갔는데 예쁘고 좋더라. 해가 좀 쌨지만 새벽에 출발했다보니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혼자가서 할 일도 없다보니 챙겨온 휴대폰 삼각대로 내 사진을 찍어본다.
구도를 보면 알겠지만 고지대까지 올라가 삼각대랑 폰을 설치하고 다시 내려와서 찍은거다.
더운 날 뻘짓하며 별로 예쁘지도 않은 사진을 찍는구나 혼자 자조하다가 갑자기 웃음이 나온다.
즐겁다.
사진 속 내 얼굴이 완전 아저씨에다가 자세도 하는 짓도 아저씨 그 자체이다.
그렇게 아저씨가 되나보다.
회룡포 가는 길에 김천에 들러 ‘오단이’ 라는 유명한 김밥 집에서 꼬마 김밥을 사먹었다.
안에 오뎅, 단무지, 오이 밖에 없어서 오단이인데 보기와는 다르게 매우 맛있다. 맛이 단순해서 첫입에는 실망할 지 모르겠지만 계속 주워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생활의 달인에 나온 집인데 오뎅을 볶을 때 쓰는 간장에다가 포도를 넣는다고 한다. 먹을 때 포도맛이 느껴지지는 않는데 먹고난 후 입안에 묘하게 포도향이 남는 듯하다. 몰랐는데 김의 촥 내려앉은 향이 포도 껍질의 향과 꽤 닮았더라. 그래서 내가 맡은 향이 포도향인지 김 향인지 확신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