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타고 안면도에 가 기분좋게 놀다왔다. 친구들에게 자랑한다고 사진을 뿌려대니까 다들 어떻게 그런 공간을 찾았냐 묻더라. 항상 듣던 질문인데 예전에는 그냥 내가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운이 좋아서 멋진 곳들을 찾았던 건 아니다. 생각을 정리할 겸 좋은 공간을 찾는 과정을 적어본다.
이번 여행에서의 포인트
이번에 안면도 갈 때도 언제나처럼 별다른 계획 없이 움직였다. 1박 2일 일정이고 서울에서부터 캠핑카를 몰고가서 다음날 서울에 반납해야 했기에 그리 멀리 움직이지는 못 한다. 그렇기에 갈 수 있는 거리는 제한됐기에 적당히 아래와 같은 사고 과정을 거쳐 여행지를 결정한다.
시간이 적음 → 멀리는 못 감 → 서울에서 멀어져봐야 충남, 강원이 한계 → 바다? 산에서 별? → 비 오니까 바다! → 서해, 동해? → 다음에 2박 3일 빌릴 때 별보고 바다도 보고 할거니까 그때 별,산,바다를 다 갈 수 있는 강원도를 간다 → 그럼 이번에는 서해 → 서해에서 어디? → 최대한 사람이 적은 곳! → 서울에서 갈 수 한계 거리에 위치한 충남 서산? → 결정! → 서산 어디? → 음,,, 빛 공해 지도켜서 제일 빛이 없는 해변! → 그럼 여기 꽃지 해변 밑에 무슨 해변!
이런 식으로 여행지가 결정됐다. 왜 무슨 해변이냐면 분명 전날 밤에 술 먹으면서 어떤 해변을 정했는데 다음날 눈 뜨니까 잘 기억 안나서 출발할 때 즉석으로 꽃지 해변 밑에 아무 해변이나 찍고 갔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샛별 해수욕장이였다. 정말 멋진 곳이니 다들 한번 가보길 바람.
이렇게 보면 운이 크게 작용했나 싶기도한데 안면도 길을 주행하며 친구와 내가 주변 풍경에 대해 이야기 나눴던 반응을 다시 생각해보면 순전한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의 목적지와 멀지 않은 꽃지 해수욕장에 다와갈 때 쯤 도로변에 큰 식당 건물이 있었고 그 건물에는 벽면에는 아! 거기라고 큼직하게 쓰인 게국지 식당이 있었다. 우린 그 식당을 보며 기겁한다. ‘으악 꽃지 해수욕장은 안 된다! 저긴 딱봐도 사람 많은 관광지다!’ 이게 좋은 곳을 찾는 방법이다.
무슨 바보 같이 쉬운 소리를 하는거냐 싶겠지만 이것이 가장 중요한거다. 샛별 해수욕장은 진짜 출발 직전에 티맵에서 지명이 뜨길래 임의로 선정한 것일 뿐 나의 진짜 목적지는 내 눈에 아름다운 곳이다. 빠른 이야기 진행을 위해 바로 전 글을 다시 적어본다. 우리는 시간의 방향을 향해 비행을 하는 날카로운 화살표의 머리 끝에 서서 매순간에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한다. 그렇게 화살표 머리의 벼랑 위에서 세상을 유랑하다 뒤돌아보면 우리가 단 한번도 직선으로 움직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는 순간순간에 자신을 동하는 것에 영향을 받아 그것을 따라가기도, 피해가기도, 무시하기도 하면서 압축할 수 없는 무한한 자신만의 궤적을 만들어낸다. 적어도 여행에서는 자신이 동하는 것만 따르면 된다. 아까 꽃지해수욕장의 이야기에서처럼 끔찍한 건 피하면 된다. 만약 샛별 해수욕장이 마음에 안 든다면 다른 곳을 가면 그만이다. 사실 가는 여정에 한 순간도 놓치지않고 주변 경관을 살폈기에 괜찮은 여행 후보지들이 이미 머리 속에 가득했다.
이게 전부다. 이외의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다. 샛별 해수욕장이 모든 사람이 좋아할 곳도 아니고 나만의 여행법을 자세하게 소개하는 일은 불필요해 보이기에 소개할 의욕이 안 생긴다.
운명에 대하여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종종 운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운명을 믿고 있던데 나 또한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고 느낀다. 단지 내 머릿속에 운명이라는 개념이 사람들이 말하는 운명이랑 약간 다른 듯하다.
아마 그 전 글들에서 드러나지 않았으까 생각하는데 난 세상이 우연이 가득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무슨 운명 타령이냐고? 운명은 지극히 인간, 또는 자기 중심적인 세계관이다. 조금 극단적인 예시를 들자면 수능 당일날 아침에 천둥을 맞아 수능을 못치게 되어 끔찍한 운명을 탓하다고 할 때 천둥은 그 어떠한 운명적 필연과 관계가 없다. 천둥은 우연히 발생한 자연 현상에 불과하고 이 천둥에 운명적 의미를 붙이는 건 인간이다. 그럼 우리는 수능 아침에 천둥을 맞은 일에 대해 어떤 운명적 의미를 붙일까? 전생의 죄? 액땜? 평생을 뜻하는 대로 살지 못하는 비극적 삶? 죽음을 이겨내는 강인한 생명의 힘? 뭐든지 될 수 있다. 그 수많은 말 중에 하나를 자신의 운명으로 선택한 것이다. 말 그대로이다.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과 주변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시간의 실로 엮어서 어떤 형태를 만든다. 이때 실제로 일어난 어떤 사건은 빠지기도 하고 어떤 사건은 과장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없던 사건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기억에 빠진 부분은 상상, 기만, 소망 등을 담아서 채워넣기도 한다. 그렇게 순서도 바꿔보고 요리조리 만져보며 형태를 잡다가 자신이 생각하기에 그럴 듯한 모습이 나오면 그걸 운명이라고 부른다. 그러고는 그 운명을 골똘히 관찰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말하기도 하고 일어난 일을 그 형태에 끼워넣어보기도 한다. 그러고는 이건 운명이야! 혹은 이건 우연이야!라고 말한다.
샛별 해수욕장을 발견한 건 운명일까 우연일까? 당연 운명이다. 안면도에 분명 있을 수많은 해수욕장 중에 샛별 해수욕장을 마주하게 된 건 우연이라고 할 지 모르겠지만 안면도에서 내가 가장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해변을 찾는 것은 나의 운명이다. 나는 성실하면서도 섬세한 관찰자이고 미지에 영역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하고 만족할 때까지 탐험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기에 내가 샛별 해수욕장을 찾는 것은 운명이다. 만약 그렇게 만족스러운 공간을 찾지 끝까지 찾지 못 했으면 그건 우연이다.
인간은 우주를 가득 메운 우연의 바다 위로 운명의 발자국을 남기면 살아간다.
아래는 사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