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를 결제하고서

대략 1년 전부터 사니 마니 고민을 하던 ipad pro 12.9인치를 드디어 주문했다. 정말 심각하게 어려운 결정이었던 것 같다. 일단 256gb 기준으로 110만원의 기기 가격에 스마트 키보드부터 이것저것 포함 시 140 가까운 돈을 써야하니 고민할 수 밖에 없다. 소비자로서 할 수 있는 고민은 다 한 것 같고 아이패드가 오기 전에 나의 고민들을 기록해야할 필요가 있다.

역시 가장 큰 문제는 과연 이 아이패드가 필요한 것인가?이다. 이미 우리 집에는 2대의 9.7인치 아이패드와 한대의 아이패드 미니가 거쳐갔고 내가 만져보고 내른 결론은 필요없다였다. 내가 보기에 아이패드는 화면이 큰 아이팟 터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름 워크스페이스라고 하는데 유튜브를 편하게 누워서 볼 수 있고 뒹굴거리면서 웹툰을 볼 수 있다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땐 ios8쯤 인가 그랬으니 os 완성도가 떨어지던 때이긴 했다.

하지만 매일 들고 다니는 노트북이 너무 무겁고 이동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왔고 그러던 중 새로운 아이패드 프로가 나오면서 다시 아이패드에 눈을 돌리게 됐다. 12.9인치의 넓은 화면과 677g의 가벼움. 스마트 커버는 ipad를 태블릿에서 워크스페이스로 전환시켜준다. 그리고 성숙된 ios와 새로운 A10 프로세서는 완벽한 유저 경험을 보장해준다. 그리고 가방에 쏙 들어가는 그 6.9mm의 두께. 얇은 베젤. i7 서피스 보다 빠른 성능. 초고화질의 디스플레이와 최고 수준의 애플 펜슬. 다양한 업무 어플에 icloud 동기화를 통한 mac과의 seamless transition. 거기다 이건 Apple이 만들었다. 어멋! 이건 사야해!

일단 여기서 내가 끌린건 이동성이었다. 항상 정보를 접하면서 ‘시간’을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써야하는 나(혹은 우리 모두)에게 ipad는 정말 적합한 물건이었다. 가벼우니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고 battery time은 신경 안 써도 된다. 지하철에서 논문을 보거나 아키텍처 문서를 볼 때를 생각하면, 나아질 나의 ‘작업 능력’에 벌써 설레어오고 돈을 쓰고 싶게한다. 나의 ‘시간’은 더욱 ‘훌륭’해진다. 더 나아가 나의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와 함께라면 always online이다. 아 훌륭하도다. 더 나아가 ipad는 훌륭한 ssh 머신이 될 수 있다. 어디든 앉아 20코어 128기가 ram의 고성능 서버에 접속해 작업을 할 수 있다. 클라우드 저리가라이다. 심지어 연구실에서도 작업 도중 관련 문서 검색을 할 수 있는 보조 기기가 될 수 있다.나의 연구실 자리의 display는 총 4개가 된다는 것이다. 아 정말 설레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제품을 사는데 왜 그리 오래 고민했는가 묻는다면 그 범용성이 문제다. 어쨌든 프로그래밍을 해야하는데 이걸로는 도무지 할 수가 없다. 아무리 ssh가 된다고 하지만 로컬에서 작업 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 지점에서 서피스가 등장한다. 준수한 성능과 배터리, 훌륭한 크기와 펜, 그리고 최상의 키보드. 그리고 가장 중요한 범용성. 이 범용성 하나로 ipad를 압도한다. 어디서든 데스크탑과 동일한 환경으로 작업할 수 있는 태블릿이다. 심지어 가격도 비슷하다. 이 녀석이랑 아이패드를 저울질한다고 1년 가량 아이패드를 사지 못했다(죄악인가?).

그럼 왜 최종적으로 아이패드를 사게 됐냐면 역시 완벽한 사용성이다. 서피스는 어쨌건 엿 같은 window의 사용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창간의 이동이라던지 해상도, 반응성 등 모든게 엉망이다. 블루투스로 음악을 들으며 pdf를 읽는다고 생각해보자. 일단 windows는 블루투스 페어링부터가 개판이다. 그리고 우측에 뜨는 작업표시줄은 논문을 표시하는 디스플레이 영역을 침범하기에 논문을 글자 크기는 더 작아지게 된다. 눈을 찌푸려보던지 pinch를 해야한다. 그 작업표시줄이 다른 앱으로 이동할 때 좋은 사용 경험을 주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다른 음악으로 바꾸는 일은 그냥 포기하는게 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느린 반응 속도는 참을 수가 없다. 아이패드는 다르다. ios11부터 시작되는 완벽한 멀티 태스킹과 split view. 통합된 파일 관리 시스템. 하단 dock. 모든게 완벽해졌다. 그렇게 나는 ipad를 샀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생각하고 결제를 한 후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나는 새로운 기기를 이렇게 매번 살 때마다 고민을 하고 상상을 하고 또 마음을 불 태우는데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기기들에게서 그에 상응하는 기쁨을 얻었는가? 확신 못 하겠다. 사실 꿈과 환상을 가지고 산 기기는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 경험은 사라지고 무신경하게 그 기기를 만지거나, 어디 집 한구석에 방치하게 된다. 그래놓고는 또다시 광고의 문구들, 웹의 텍스트와 영상, 그 빛에 이끌려 또 다른 ‘더 나은’ 기기를 사고 또 무신경해지고 만다. 옛날에 애플 초기 ui 수석인가 뭐시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새로운 기기는 최고의 스포츠카에서 끝장나는 여자와 카섹스를 하는 경험을 줘야한다’

진지하게 나에게 질문할 필요가 있다. 나는 왜 이런 반복을 계속하는가? 나는 이 반복에 행복한가? 반복을 할 때마다 어떤 구조나 명령, 자극에 지배 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르크스가 말한 ‘과거가 현재를 지배한다’가 떠오른다. 매번 나는 최신 제품의 광고가 제시하는 최고라는 말을 듣는다. 더 나은 경험, 더 나은 생활, 더 나은 업무를 광고는 언제나 제시한다. 새 기기는 나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 것이고 이 보다 나은 제품은 없다고 한다. 그런데 1년 후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다시 나에게 그전보다 더 나은 삶을 제시하며 이 보다 나은 제품을 없다고 말한다. 그 순간 앞의 광고는 거짓말이 되고 만다. 엄밀히 말해서 앞서의 광고는 그 시점에서 얘기하는 것이니 거짓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돈을 대가로한 약속이 나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끄는 지는 의문이 든다. 더 나은 삶을 생각해보면 무언가 조금 어색하다. 광고에서는 기기의 신기능을 내가 사랑할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정말로 그 기능을 사랑하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사랑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내가 그 약속된 삶을 욕망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약속들이 강조하는 것처럼 내 시간은 그 제품을 산다고 그렇게 생산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약속과 반대로 내 시간은 철저히 흡수 당하고 내 존재는 희미해져간다. 그리고 돈도 사라진다. 잘못된 것 같다. 그 제품들을 거짓된 약속을 하는 것 같다. 더 나은 속도, 더 나은 화질, 더 작은 크기는 나에게 더 나은 삶을 약속해주지 못한다. 더 나은 삶은 약속할 수 있는 주체는 오직 나 자신 뿐이다.

어쨌건 아이패드는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