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 io 라는 땅따먹기 게임을 최근에 했다. 처음에 게임 룰이니 튜토리얼이니 그런거 하나 없이 바로 게임이 시작되는데, 시작하자마자 다수의 플레이어가 나타나 나를 견제한다. 나의 캐릭터는 바로 사망해버리고 잠시 짜증이 밀려오지만 캐릭터는 바로 부활하고 게임은 계속된다. 그렇게 몇번 죽다보니 조작에 익숙해지고 룰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고 이내 몇명을 죽이고, 왕을 죽이고, 1등을 하게된다. 실력은 점점 올라가고 1등에 익숙해지면서 점점 내가 취할 수 있는 전략의 폭도 넓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여유가 생긴 나는 다른 플레이어를 괴롭히는 플레이를 질기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주변에 얼쩡거리며 위협을 준다던가, 상대방의 땅을 끊어 상대의 오랜 노고를 증발시켜버리거나 하는 등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플레이만을 즐기게 되었다. 그냥 괴롭힐 수 있으니 괴롭혔고, 괴롭히는게 즐거웠다. 이 지구 위의 누군가가 누워서 폰을 들고 게임을 하다가 나의 괴롭힘에 분노하고 폰을 집어던지는 그 모습이 손끝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재미도 오래가지는 못 했다.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주변 플레이어의 움직임이 인간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땐 내가 못했기에 비슷한 녀석들이겠거니 했다. 또 멀티플레이 게임이지만 지연이나 버벅임, 혹은 그에 따른 버그가 보이지 않는게 의문이었으나 이 또한 게임 하느라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게임을 하면 할 수록 의구심을 커져갔고 확인해보니 이때까지 사람이라고 믿던 녀석들은 다 봇이었다. 그 이후 게임이 재미없어졌다. 상대가 컴퓨터라고 생각하니 더 이상 괴롭히고 싶지도 않았고 게임을 그냥 단순 반복 노동으로 느껴지고 말았다. 단지 상대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게 다인데 말이다…
음악을 즐겨 듣다보니 여기저기서 음악 추천을 많이 듣는다. 단지 친구, 아니 사람한테서만 추천 받는 건 아니다. 유튜브가 항상 내가 좋아할 만한 영상을 우측에 띄어주며, 애플 뮤직이 항상 나만을 위한 플레이리스트를 제안해준다. 흔히들 인공지능이라고 불리는 이 녀석들의 추천은… 훌륭하다. 이 녀석들은 뭔 놈의 신묘한 이치가 깃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내가 좋아할 만한 노래들을 제시해준다. 최근에는 애플 뮤직이 추천해준 Cardigans의 Carnival을 자주 듣고 있다. 사실 얘들이 추천을 웹이나 앱이라는 매체를 통해 전달해줘서 그렇지 진짜 사람이 추천하는 내용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상상해본다. 음악 추천을 해주던 존재가 알고 보니 인공지능이라면? 별로 기분 나쁠 건 없을 것 같다.
최근 블러드본을 다 깼다. 난이도가 어려워 유저가 자주 죽기로 유명한 게임으로 특히나 극악 난이도의 보스전이 유명하다. 나 같은 경우 어려운 보스를 잡기 위해 수십번 가까이 죽으며 심할 때는 8시간 동안 한 보스를 공략한 적도 있다. 8시간 정도 전투를 하다보면 보스는 단순한 비트 덩어리와 알고리즘이 아니다. 보스는 XXX며 XXX이며 X XX XX이다. 피그말리온인지 뭔지처럼 내 감정이 스며들어 살아 숨쉬며 욕먹는 생명체가 탄생한다. 그 생명체의 소리 하나하나, 움직임 하나하나에 내 감정이 깃들고 욕으로 치환된다. 그러면서도 그 생명체와 교유를 나누다보면 어느새 생명체와 함께 춤을 추고 있다. 그렇게 춤을 추고 때리다보면 보스가 죽고 온 몸에서는 희열이 들끓는다. 아까 paper io와는 딴판의 반응이다.
앞으로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에 대한 궁금증이 든다. 우리는 어떤 인공지능을 우리 안에 넣을 것이며 어떤 인공지능을 우리 밖으로 던져버릴 것인가? 그리고 인공지능은 어떻게 우리 안에 들어오려 할 것인가? 필립 k 딕 소설처럼 인간은 끊임없이 두려워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