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말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말은 국평오이다. ‘국어 평균 5등급’의 줄임말로 전 국민의 평균 국어 능력은 5등급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말의 용례는 다음과 같다. 누군가 어그로를 끌고 댓글로 서로 싸운다. 여기서 싸우는 당사자들은 온갖 이야기를 펼치고 그러다보면 헛소리를 하고 만다. 그러다가 싸우는 당사자 혹은 제삼자가 댓글을 단다. 국평오. 혹은 정치인들이 뭔가 주장을 하고 거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온갖 방식으로 반응을 한다. 거기에 국평오라는 평가를 제시해주면 가장 적합한 용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처음 국평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나도 반가웠다. 수능 언어 등급에 따라 인터넷 게시글 작성 횟수, 투표권 개수를 정해야한다고 20살 때 주장해온 나로서는 매우 친숙한 문구이다. 그와 동시에 말만 길었던 나와 달리 매우 의미가 분명하며 공격적이라서 매력적이다.
다들 쉽게 유출할 수 있듯이 국평오는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소리만 떠들지만 자신들이 옳다고 떠드는 대중들이 사실 국어 평균 5등급은 덜 떨어진 인간들이라고 비하하는 말이다. 이 말이 흥미로운건 정말로 공격적이며 상대방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가득 담겨 있지만 국어 평균 5등급은 사실이라는 점이다. 우리 모두 꽤 잘난 척 떠들고 다니지만 사실 평균 5등급은 사실이지 않은가?
첫째 재미있는 사실! 사람들은 국어 평균 5등급이라는 표현이 되게 모욕적이라고 생각한다. 5등급은 언어 실력을 정량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고 가장 보통의 언어 실력을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은 어떠한 고민도 없이 상대방에게 ‘넌 가장 보통의 언어 실력이야’라는 표현을 공격의 의도로 사용한다. 그리고 모두가 그 의도를 분명히 받아들인다. 뭐 국어 평균 5등급이니 9등급도 있겠지만 5등급만 해도 충분히 모욕적이라고 느껴진다. 여기서 생각할 거리가 있는데 국평오를 쓰는 사람들은 모욕의 의도로 국평오라는 단어를 쓰지만 내가 인터넷에서 국평오라는 단어에 모욕감을 느꼈다고 표현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 했다. 여기서 둘째 재미있는 사실이 등장한다.
둘째 재미있는 사실! 국평오는 존재하지 않는다. 평균이라는 말이 뜻하는 바와 같이 사실 우리 모두가 국평오이다. 물론 나는 수능 언어 1등급이었지만^^ 사실 그 평균 5등급의 국민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국평오라는 말을 쓰는 사람도 아마 1~4등급일 가능성이 아주 약간 높지만 사실 5등급 혹은 그것보다 낮은 국어 성적을 받은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발화자가 상대를 비하하고자 쓰지만 사실을 자신을 비하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철저히 자신이 국평오라고 믿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 국평오는 세상에 없는 존재다!
셋째 재미있는 사실! 사실 우리 모두가 국평오이다. 앞서 밝혔지만 우리 모두가 평균적으로 평균 5등급의 국어 실력을 지닌 집단에 속해있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나의 반응과 같이 난 1등급인데^^와 같은 방식으로 모두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국평오에 담긴 구분짓기, 배제의 목적을 바라봐야한다. 우리는 아주 일상적으로 의견이 다르거나 정치적 입장이 다른 존재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존재를 비하하고 무시한다. 자신과 같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명철하며 큰 공익을 바라보는 모범시민이 눈으로는 이상한 주장이나 하며 자신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존재는 비시민이며, 심하게는 사람새끼가 아니다. 국평오는 그런 마음이 드러나는 또다른 구분짓기의 표현에 가까우며 그 발화자 혹은 대상자의 실제 국어 등급은 전혀 상관없다. 내가 언어 1등급이던말던 나 또한 국평오가 될 수 있다. 물론 방금 쓴 말에서도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글을 쓰는 나는 제 정신이다라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있다.
이렇게 국평오는 실존하는 존재 같기도 하고 그냥 허구의 존재 같기도 하지만 사실 정치인과 기자들에게 국평오는 실제하는 존재들이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854279 이 기사의 헤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 추미애 “부동산 급등, 정부 탓 아니다…주부도 뛰어든 투기 탓”. 본 기사는 언론사가 자신의 온라인 1지면에 수록되어있다 (언론사 Pick이라고 부른다). 일단 기사 내용 속 추미애씨의 말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투기를 했으니 비정상적인 속도로 오른건 당연한거고 거기에서 정부의 역할이나 책임은 전혀 말도 안 꺼낸다. 심지어 법무부 장관이 왜 이런 소리를 하는 지 잘 모르겠다. 페북 원문을 살펴봐야할 것 같지만 사실 뭐 애써서 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재미있는 사실! 추미애는 분명 학력고사를 잘 쳤을 것이다 - 다시 말해 국어 1등급이다). 추미애씨는 국평오를 대상으로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기사 헤드라인도 무지 웃긴다. 부동산 급등! 정부 탓 아니다… 주부도 뛰어든 투기 탓! 이렇게 자극적으로 헤드라인 뽑아내는 기자들도 국평오를 대상으로 기사를 쓴다. 보통 사설이면 조금 더 기사 내용을 중심으로 국평오 자극 문장을 뽑아낼 수 있겠으나 이 기사는 발췌 중심이라서 원문을 읽어야 그런 내용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저 페북 글을 읽을 생각이 전혀 없기에 패스! 이런 의견을 친구한테 이야기했더니 네이버 기사는 화나요 반응이 많으면 성공한 것이라고 하기에 참으로 옳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댓글은 사실 보지 않았는데 뭐 뻔하지 않은가? 국평오들의 아우성일 것이다.
전국의 국평오들이여 분노하라! 나 너 우리는 모두 가장 표준적인 사람에 불과하지만 이렇게 치욕스러운 취급을 받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생각을 표현할 책임을 다하고 있다. 우리가 모자르고 비논리적이고 이기적인 국평오지만 우린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국평오이다. 우리에게 냄비니 하등한 대중이니 하는 모욕적 평가에 굴하지 말자.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떠드는 것 뿐이지 않은가? 대신 우리 모두가 국평오라는 한 가지 사실 만을 받아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