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알고 있었나요 처음 보던 그 순간부터 이런 모습의 나 믿을 수가 없어요.
그냥 글 제목을 가지고 헛소리 해봤다.
어릴 적부터 어떤 대상이나 이미지에 바라볼 때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은 것들도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저번에 썼었던 인형에 대한 글에서도 밝혔듯 인형에 대해 큰 애착이 있었지만 언젠가는 인형에게 관심이 사라지거나, 인형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질 때가 올 것이 분명히 보였다. 그 인형은 방이나 창고 구석에 쳐박혀 조용히 소리없이 꾸겨져있다가 언젠가는 버려질 것이고 갈갈이 찢긴 상태로 세상 어딘가에서 썩어버리고 말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들기에 사람들이 인형을 그렇게 많이 사는 이유가 크게 와닿지 않았다. 또 저번에 썼던 글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일반 소비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생각이 든다. 항상 제품의 광고에서 제시하는 더 뛰어난 성능, 편리한 기능,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은 마음을 들뜨게도 하지만 제품을 가지기 전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거나 스마트폰 중독과 같이 그 전보다 못한 삶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야기를 더 극단으로 이끌어가자면 나의 삶과 사람들의 삶을 바라볼 때는 유한함, 죽음이 떠올랐다. 적어도 살아있는 동안은 쉼 없이 우린 무언가를 찾아서 행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은 찰나이거나 유한할 뿐이다. 이런 생각이 가장 많이 들 때가 주말에 근린 공원에서 놀고 있는 어린 아이와 부모의 모습을 볼 때이다. 분명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느끼지만 그 빛나던 모습이 삶의 유한한 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아파진다.
이쯤 말하다보면 인생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이미지들만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이탈리아 시에나라는 곳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날이 아주 화창한 지라 하늘의 색이 무지 예뻤다. 멋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길을 걷다보니 길 양 옆에 있는 2~3층 높이의 건물들의 지붕이 하늘에 그림(공대 감성으로는 그래프)을 그리듯이 눈앞에 뻗어있었다. 그런 생각을 가지며 길을 걷다보니 항상 양각으로 대지 위에 존재하던 건물이 음각으로 세상을 깎아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한번 상상해보고, 또 길을 걸을 때 피사체를 눈 앞에 놓인 건물이 아니라 건물보다 훨씬 웅장하고 빛나는 하늘로 초첨을 맞춰보기를 바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미지 중 하나는 큰 나무에서 뻗어나오는 나뭇가지와 잎, 그리고 나뭇가지와 잎 사이로 터져나오는 멋진 하늘이다.(이것도 예전에 썼다) 원체 나무의 형태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 멋진 양각의 조형물이 하늘에 긋는 선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심지어 길을 걸으면서 나뭇가지와 하늘을 바라보면 가까이 있는 나뭇가지는 빠르게 움직이고 멀리있는 나뭇가지는 천천히 움직이면서 하늘의 그려내는 그 선들의 형태와 완전히 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면 단순하게 여겼던 나무의 형태가 실로 복잡하다고 느껴지며 이내 그 형태에 무한한 경외감을 느낀다.
계속 확장해보면 미술관에서 미술 작품을 볼 때에도 그 작품만을 볼 것이 아니라 화이트큐브의 공간을 바라보곤 한다. 하얀벽에 네모난 액자, 작품을 걸기 위한 와이어(없는 경우가 많지만), 옆에 비치된 소화기, 비상구 픽토그램, 작품을 비추는 조명, 작품을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 이런 것들을 바라보다보면 최대한 하얗게 통제해서 온전히 작품의 맥락만을 남기려는 발상이 참으로 덧없다는 생각이 들며 웃음이 나오고는 한다.
이제는 눈치 챘을 지 모르겠지만 이 모든 것들은 전경과 후경의 이야기이다. 빛나는 것, 멋지게 뻗어있는 것, 관심을 준 것(혹은 관심을 줘야할 것)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만을 바라보려고 하지만 우리가 바라보려고 하지 않는 것들이 우리의 시야에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생과 죽음, 사랑과 무관심, 채우기와 비우기,,, 시선을 바꿔 관심을 주지 않던 후경의 바라보면 후경이 전경이 되고 전경이 후경이 되는데 이때 그전에 전경이었던 것들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후경과 관계가 지어진다. 그렇게 전복된 전경과 후경을 바라보면 다시 전경이 후경이 되고 후경이 전경이 된다.
정리하면 전경 -> 후경 -> 전경
후경 -> 전경 -> 후경
이렇게 되는건데 이런 일들은 무한히 반복할 수 있고 매 전경-후경이 전복이 발생할 때마다 전경과 후경 사이의 그 미묘하게 아슬아슬한 경계가 느껴진다. 그리고 시선을 확장하고 사고를 확장하면 사실 전경과 후경 사이의 경계가 2차원 평면 A, B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A, B, C, D,,, ㄱ, ㄴ, ㄷ, ㄹ,,, あ, い, う, え, お,,,, 무한히 많은 차원이 서로를 잡아먹으려고 침범하는 시끌벅적한 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어쩌면 항상 그 경계에 서서 세상을 바라본 것이 아닐까?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하지만 수많은 경계를 오가며 다채로운 세상을 느끼고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다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