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 등산을 한 친구가 등산하고 한 주 정도 지나 연락이 온다. 또 같은 곳을 오르자고 말한다. 그때 산을 오른 일을 가지고 쓴 시를 시 수업에 가져갔는데 선생님이 다시 산을 오르고 시를 써보라고 했단다. 혼자 산 타기는 무서워서 같이 가자는데 좋다고 하고 간다. 밤 늦게 친구네 작업실 겸 카페에 가서 마감을 기다리는데 카페 책장에 마광수의 책이 있더라. 고등학생 때 읽고 반해서,,,, 몇년은 마광수에 빠져 살았었다. 이제는 다 까먹었는데 막상 책을 다시 읽어보니 좋더라. 길게 설명하기는 싫다. 그냥 한번쯤 모두 읽어봤으면 한다.
원래 계획은 마감 후 친구 집에서 술 먹고 일찍 자고 일어나 일출 등반을 하려 했으나 술을 먹다보니 새벽 4시반이다,,, 그냥 다음날에 일몰 등산을 하기로 한다. 역시 메뉴는 회다.
눈을 뜨고 해장 궁리를 한다. 칼국수, 이북식 냉면, 빵,,, 등등,,, 여러 의견이 있었으나 결국 차를 끌고 파주 마장호수 옆에 쌈밥집에 가기로 한다. 먼저 커피집 사장이 내려주는 커피를 텀블러에 담는걸로 시작이다.
차에 시동을 걸고 가는 경로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오후 1시경 출발하니 대략 5시경 돌아올 것이므로 각 시간대 별 막히는 경로와 경로 상의 풍경들을 머리에 그려본다. 결정! 갈 때는 구기터널을 지나 은평을 넘어서 마장호수를 가고 올 때는 외곽 순환을 타고 그 긴 터널을 지난 후 동부간선을 타고 돌아오는거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구기터널을 지나서 은평 중심을 향하는 길 양 옆으로 나무가 울창하게 있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은 지날 때마다 마음에 녹음이 피어난다. 그리고 친구의 고향은 은평이다. 그렇기에 친구에 여러 옛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은평을 지나 고양 - 파주 - 마장호수 길에 펼쳐지는 북악산 자락의 경치가 좋다. 그 길은 교외 여행 코스라서 도로 변에 맛있는 빵집과 카페가 가득하다(모텔도,,,). 돌아오는 길의 경우 외곽순환의 그 긴 터널이 좋고 터널 전후로 북한산의 경치가 끝내준다. 그리고 퇴근 시간에 은평을 지나는 것 보다는 훨씬 빨리 복귀할 수 있다.
시작부터 차창 너머로 보이는 북한산의 풍경이 좋다. 가는 길에 필립 글라스의 해변의 아인슈타인을 틀었는데 친구가 너의 머리는 항상 이 상태냐고 묻는다. 항상은 아니다,,,
은평을 지날 때 친구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발견한 사실이 있다. 미디어나 사람들의 입에서 은평구라는 단어 혹은 은평구의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생각해봐라. 종로는 말할 것도 없고 용산구는 무슨 대통령,,, 뭐시기, 이태원이 있고 송파구는 롯데타워, 석촌호수, 올림픽 공원 등등,,, 저기 강동구는 워커힐, 성수 등등,,,, 노원구만 해도 학원촌 같은 이미지가 있지 않은가? 근데 은평구는 뭐가 없다,,, 뉴타운? 그나마 최근에 생긴 한옥마을 정도 있을까?
간만에 온 쌈밥집은 언제나처럼 맛있더라. 친구도 먹보 나도 먹보라서 둘이서 먹보 이야기만 끝없이 한다. 고등어가 얼마나 잘 구워져서 이렇게 겉은 약간 타면서도 속은 말랑말랑 촉촉하다느니, 쌈에 샐러리 맛이 어떻다느니,,, 그런 이야기만 거의 한시간 가량을 한다. 사실 이 동네가 불륜촌이라서 친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줬더니 친구의 눈이 반짝하면서 신나게 불륜 이야기도 했다. 둘이서 상상해봤다. 만약 우리가 나이 들어 여기에 불륜을 하러와서 앞에 불륜 상대랑 쌈밥을 먹으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둘이서 깊이 고민한 결과 지금처럼 먹보 이야기만 떠들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서로 불륜 상대에게 쌈을 싸주는 것도 연기해보았다.
밥을 먹고 마장호수를 가긴 했는데 알다시피 마장호수는 그렇게 예쁘지 않아서 옆에 저수지를 향한다. 아무 생각없이 저수지 옆 길을 따라가다가 막다른 길을 만나 돌아오는데 한 눈에 봐도 예쁜 네온사인을 길 옆에서 만났다.
들어가보니 아름다운 곳이다. 목재로 지어져서 들어가자마자 목재의 향이 가득했으며 안의 인테리어는 한국 특유의 과한 느낌의 인테리어 요소들이 차분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카페는 저수지 변에 있어 테이블 옆 큰 창으로 저수지의 모습이 훤히 보인다.
신나게 떠들고 논다. 친구가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라고 했었는데 잠시 고민하다가 SuperSaw에 대한 이야기를 주구장창한다. 난 항상 누가 나한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라고 하면 당황한다. 당장 떠오르는 재미있는 이야기는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내 재미있는 이야기는 남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리 머릿속에 저장해둔 남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레코드 플레이어를 돌리듯이,,, 이야기 해주고는 한다.
카페를 나와서 친구는 이제 피곤하니까 처음에 계획한 일몰 등산은 포기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아까 말한 외곽순환 경로를 타고 돌아가면서 친구의 친구가 한 음악을 듣는다. 인더스트리얼,,, 엠비언트,,, 4th world,,, 뭐시기이기였다. 그러면서 친구가 나에게 말하길 전자음악에서 어떤게 좋은 음악인 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난 Jon Hassell의 노래를 튼다. 그리고 말해준다. 좋은 전자음악은 사운드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다고.
친구 집에 도착 후 가기 싫어하는 친구를 이끌고 말바위를 향해 등산을 한다. 오르는 길에 성북 동네 친구에게 전화가 왔는데 친구도 말바위를 향한다길래 말바위에서 접선하기로 한다. 간만에 만난 친구랑 셋이서 낮에 사온 밀곳간 빵을 나눠먹으며 일몰 서울을 본다.
딱히 외국인의 관광 가이드가 되어본 적은 없지만 종종 서울에 놀러오는 외국인에게 어떤 곳을 소개해줄 지 상상해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건 산이다. 남산도 좋고 낙산도 좋다. 조금 더 힘이나면 인왕산까지 올라도 좋고 정말 힘이나면 북악산을 올라도 좋다. 정말로 힘이 넘쳐나면 4대문을 아우르는 코스를 가야한다. 이렇게 도심과 산이 어우러진 대도시는 전세계에 찾기 힘들다.
셋이서 내려와서 동네 구멍가게 앞에 좌판을 깔고 맥주와 포카리를 마신다. 왜 포카리냐,,, 차 끌고 집 돌아가야해서 난 포카리,,,
아직 친구가 등산을 한 내용을 가지고 썼다는 시를 못 봤는데 나중에 친구한테 허락을 받으면 이 밑에 첨부할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