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유토피아

넷플릭스 구독한 김에 종종 챙겨보는 중이다. 모두가 그렇듯 넷플릭스 영상물 목록을 멍하니 쓸고 문지르면서 볼게 없나 10분 정도 고민하다가 남들이 많이들 떠들었던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택했다.

영화는 뭐,,, 완전 나쁘진 않았으나 불만이 있어서 불만사항을 리뷰로 남긴다. 스포가 있으니 안 봤으면 영화 이야기 안 하는 마지막 절만 읽어도 될 듯하다.

이상한 첫 CG

첫 오프닝 씬에서 박살나버린 아파트 주변과 서울의 모습을 버드아이 뷰로 보여주는 장면에서 충격 먹었다. CG 수준이 진짜 박살난 수준이라서 어,,, 이게 뭐지? 너무 후진데? 이거 블록버스터 아녔어? 블록버스터는 아니더라도 블록버스터 지향 아니었어? 이건 너무하지 않나? 이 영화 봐도 괜찮은걸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 웃긴게 그 이후 나오는 CG들은 뭐 훌륭하지는 않더라도 이리저리 문질러대서 거북하지는 않은데 왜 오프닝 씬에 그렇게 개박살난 CG 내던졌나 싶다.

아파트라는 상징에 대한 집착

영화는 현대 한국의 아파트 만능주의, 그리고 물질 만능주의를 노골적으로 비웃기 위해 한국인의 욕망을 과장된 방식으로 보여주며 풍자하려고 한다. 캐릭터의 설정부터 갈등과 주제의식까지 다 아파트에 결부 짓는데 문제는 아파트에 대한 영화의 집착이 과하다.

초반부 장면까지는 오케이다. 이미 말도 안 되는 규모의 지진을 겪긴 했지만 영화의 긴장이 약한 초반부에 자가, 세입자 차별해서 대우하자느니, 비거주민을 쫓아내자느니 하는건 사람의 나약한 마음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모든 시스템이 망가져서 자원을 한정적이고 그 자원을 차지하기위해 칼빵을 난무하는 시대에 가장 상상력이 떨어지는 방식으로 마음을 의지할 곳을 찾으려면 아파트 말고 뭐가 있겠는가.

그 이후에도 모든 극의 전개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이어지지만 아파트에 대한 비판이 부재하다보니 빈약한 주제의식 여실히 드러난다. 아파트 내의 거주자-바퀴벌레 갈등, 이병헌-박보영 갈등, 아파트 주민-바깥 주민 간의 갈등, 아파트를 지키면서 잃어가는 인간성에 대한 갈등에서 아파트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 의식을 읽어내기는 어렵다. 거주민이 제한된 자원을 최대한 많이 누리기 위해 불법?거주민을 쫓아내는거나 아파트 주민이 바깥 주민을 조져가며 식량을 쟁취하는 것은 생존의 문제이다. 영화가 어느 정도 전개된 중반부터 아파트는 아포칼립스 이전의 아파트와는 전혀 관계 없는 생존을 위한 공동체일 뿐이다. 아파트 주민들이 단결! 투쟁!할 때 외치는 아파트가 우리 시대에 아파트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병헌이 바깥 세상 사람들을 짓밟고 돌아와서는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를 목놓아부르다가 쓸쓸하게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를 부르는 장면을 통해 아파트에 미쳐있는 우리의 모습을 그려내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근데 이병헌은 문명에 진공 상태에서 본능/본질적인 우리의 생존/경쟁/투쟁에 의해 흑화한거다. 그의 아파트에 대한 욕망은 지진 이후 새로운 세상에 내던져졌을 때 캐릭터 형성에 색과 향을 입히는 향신료 같은거다. 이병헌의 생존/경쟁/투쟁의 모습이 이 시대 우리의 모습과 닮았나? 그렇기에는 조건이 너무 달라서 나는 잘,,, 모르겠다. 우리의 아파트이 대한 욕망을 단순하게 생존을 위한 원초적인 경쟁으로만 읽어내기에는 어렵다.

공감하기 어려운 박보영 캐릭터

영화의 핵심 인물인 박보영은 아포칼립스 속에서도 타인을 위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캐릭터이다. 근데 이 캐릭터는 가면 갈수록 공감이 가지 않는다. 사람들 몰래 불법 거주민을 챙겨주는 것까지는 오케이다. 계속 박서준이 타락하는 것을 경계하고 걱정하는 것도 오케이다. 하지만 이병헌이 불법거주민을 쫓아낸 이후로 삔또가 상해서 이병헌의 치부를 들춰서 조지는건 도대체 삔또 상했다 이상의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 전 아파트 대표 아줌마와 이병헌의 갈등에서 제시된 것처럼 선악이 불분명한 투쟁을 통해 획득한 자원을 근간으로 아파트는 생존한다. 박보영 또한 이 사실을 모르지 않았고 이병헌을 조지면 체제에 혼란이 온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사건을 터트린다. 이게 그 이병헌 옆집 학생이 터트린 일이라면 오케이다. 그 학생은 그냥 혼란스럽고 고통스럽고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이니까. 박보영은 그런 캐릭터가 아니다. 많은 것들을 보고 받아들이고 선택하는 캐릭터이다. 더 나아가서 박보영은 시스템이 무너지고 인간성의 근간 조건이 사라진 세상에서도 인간성을 지키는 상징적인 캐릭터이다. 그런 그녀가 생존을 갈망하며 투쟁하는 이병헌 외의 다른 주민의 삶을 밟아버리고 싶었던 것도 아니면서 대책없이 일을 벌이면 박보영이 상징하는 인간성을 지키는 삶 자체가 우스워진다. 자신이 집단의 가치관을 바꿀 생각이 없다면 그냥 결말처럼 아파트를 떠나면 되는거다.

시작부터 희망이 없는데?

앞서 박보영 캐릭터의 문제는 여기에 있다. 영화는 초반부에 구조대 타령을 잠시 하지만 중반부의 말도 안되는 지진?의 규모가 그려진 이후에는 그 어떠한 꿈도 희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초반부에 주변 상황만 봐도 희망이 없다는 것이 뻔하게 드러난다. 아포칼립스물에 꿈도 희망도 없는게 왜 문제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으나 인간성의 근간인 문명, 시스템, 안정에 대한 그 어떠한 기대도 없는 상태에서는 인간성에 대한 기대도 없어진다. 당장 겨울이 더럽게 춥고 콘크리트 위의 자연과 유리된 가상 세상에서 살던 인간들이 약탈 이외에 어떤 생산적 활동을 할 수 있는가? 당장 내일 죽을 지 모른다는 공포에 눈이 먼 사람들이 어떤 블링블링한 불가침조약 같은거라도 작성할거라고 생각하나? 유치하지만 저 위에 평양은 지진 피해가 없다는 소문이 있으니 이 겨울만 버티자는 낚시성 희망이라도 있었다면 박보영에게 공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 내내 어떠한 희망도 없다는 걸 너무 뻔히 드러내니까 박보영은 뭐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면서 왜 저러나 싶을 뿐이다. 그냥 하던대로 사람들 간호하고 몰래 불법거주민 챙기면서 살아가란 말이다.

어처구니 없는 결말

결말은 황당하기 그지 없다. 박보영이 깽판난 아파트를 떠나는건 좋다. 근데 아파트를 떠나는 선택에는 그에 걸맞는 책임이 따라와야한다. 아파트 주민들이라고 사람 죽이고 싶어 죽인게 아니고 사람이 미워서 불법주거민을 쫓아낸 것이 아니다. 살기 위해서 죽인거고 쫓아낸 것이다. 바깥은 춥고 위험하니까 아파트를 지킨거다. 그녀가 가시 밭길을 걸었다면 가시에 찔려야한다. 근데 결말은 어디 시민운동 단체 다닐 것 같은 선하게 웃는 사람들의 구조를 받고 꼬뮨 같은 마을에 일원이 되어버린다. 그러고는 위험과 추위는 없다는 양 개방된 공터에서 무료 급식소 열린 장면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끝난다. ????? 아 그게 그냥 선한 인간성을 선택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함께 좋은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었나? 아파트 주민들은 원래 악한 사람들이라서 사람을 죽여가며 생존했는가? 진짜 이 영화는 인간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걸까?

결말에서 그녀에게 선택의 순간이 주어져야했다. 인간성을 저버리고 생존할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죽는게 과하다면 그냥 아무 불이익이라도 감수하는 선택을 했어야한다. 그런게 없다면 그녀의 인간성 타령은 그냥 꽃밭 생활 못 잊은 얼간이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이쯤와서 헛소리 하자면 이 영화는 벡델 테스트 통과 했는가? 위키피디아에 벡델 테스트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를 최소 2명 포함할 것
  2. 서로 이야기를 나눌 것
  3. 남성에 대한 것 이외에 다른 대화를 나눌 것.

1, 2번은 통과이다. 3번은 통과 못한 것 같긴 한데 여성들을 조금 더 부각시키는 척은 하려고 노력한 것 같다. 근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주요 여성 주인공인 박보영은 그 어떠한 능동적 선택을 하지 않는다. 꽃발 걷고 있는데 선택 타령하는게 웃긴거다.

그래서 아파트야? 아님 인간성이야? 둘 다야?

귀찮아서 타인을 위하고 타인과 함께하려는 인간성을 인간성이라고 대충 써왔는데 사실 영화는 문명의 안정이 사라진 과장된 조건에서 인간성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하고 싶어한다. 사실 영화 중반부 이후의 모든 내용이 그렇다. 그래도 박보영 물을 많이 먹은 박서준이 선한 인간성을 지키고 싶지만 타락하는 내적 갈등이라던지 극단적으로 타락해버린 이병헌의 모습 같은건 다 그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면 아파트는? 문명과 안정의 상징인 아파트는 극 전개의 메인 테마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영화는 시종일관 아파트에 집착하는 등장인물들을 우스꽝스럽게 그리면서 아파트 만능주의를 풍자, 비판하는 척하지만 사실 아파트와 관계없는 인간성에 대한 질문만 영화 내내 던져대고 있을 뿐이다.

그럼 인간성? 인간의 본성? 문명의 진공에서 우리의 동적 행동 양태에 대한 영화?로 본다면 어떨까? 그렇게 보면 꽤 재미있게 볼 여지가 있다. 박서준이라는 캐릭터는 영화 속 극단적인 조건에 처하지 않은 관객이 가장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로 잘 설정됐고, 영화가 전개되면서 그가 살인 가까운 것을 하고 정당화하는 극단적이 모습도 설득력 있게 제시되었다. 이병헌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강렬한 연기를 선보여서 과장된 캐릭터이지만 영화 내의 등장인물과 관객들이 그의 카리스마에 쉽게 매혹되었고, 덕분에 이병헌의 비인륜적 행위에 심적으로 동조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박서준과 이병헌에 관객들이 감정을 하기를 유도하면서도 박보영을 보여주며 우리가 쉽게 언어적으로 꺼내지 못하는 악한 인간성을 깨닫고 고민해보기를 바라는 것 같으나 그러기에는 박보영이 너무 설득력 없다.

(그냥 귀찮아서 선한 인간성, 악한 인간성, 타락이라는 표현을 썼다. 영화 자체 메세지가 불분명하니 언어화하기도 귀찮다.)

좋았던 점

이병헌 연기가 좋더라.

꼬우면 니가 작가해

가볍게 사람들이 즐기기 위한 영화에다가 볼멘소리 늘여놓는 것도 웃기긴하다. 그럴 듯한 메세지가 있는 척 해놓고 아무것도 없는게 짜증났다. 꼬우면 니가 작가해서 시나리오 써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응 싫어^^ 영화 개후져^^

이 글을 읽은 H의 평가

애독자 H씨가 글을 읽고 친히 몇 줄 평을 작성해주셨다. H의 성격에 감사를 표한다.

물음표가 너무 많아
같은 단어나 구절 반복이 너무 잦아(강조의 의미라고 해도 과함)
아님 진짜 영화가 너무 형편없어서 물음표 남발이 될 수 밖에 없는건가
간간히 주현영기자 빙의 돼서 글 쓴 느낌 남(무슨 말하는지 알지 정신 없다는 소리)
영화의 요소가 다 거지같고 별로여서 대차게 까고 싶은건가 분명 영화는 나쁘지 않았다고 서두에 써놓고 (진심이 느껴지는) 좋은말은 전혀 안해줌 마지못해 쓰는 느낌임

그러다가 아니 이게 이럴일인가? 영화 평론가도 아니고 기자도 아닌데 정리 안되고 좀 가독성 떨어진다고 지랄 할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음

그리고 쓰다가 기분나쁠까봐 지운거 있는데 이동진 한줄평 느낌도 난다고 썼었음.
단어를 소화시킬 문장을 안쓰고 존나 그냥 막 너 머릿속에서 나오는 대로 그냘 막 쓰는 느낌이 들어서
쉽게 읽히라고 쓰는 글이 아니라 독자 배려 없는 모슺에

웃기게 쓰던가 진짜 화내던가 일목요연하게 깔끔하게 가던가 색깔이 안보여
하나만 해 하나만 다 하려고 하지말고

이말더 하려다가 말았는데 존나 욕하다가 흥분해서 주절주절 하는게 킹받음. 쌍욕만 안했지 그냥 개 까는데

우리 사이 문제 없는거지...?
그냥 나는 홍시맛이 나서 홍시맛..이 난다고 한거야..
느낀점 그대로 말한거야..

ㅜㅜ 개빡쳐??
화나떠?

그런 글 왜 나 읽게 해
시간 앜갖게

암튼 한줄평 : 악담하는 주현영과 이동진

H씨는 나 기분 나쁠까봐 걱정하는 척 하면서 할 이야기는 다 한 듯하다. 더 이야기할 게 있었을지도? (H씨는 위의 인용을 보고 자기 성격 나빠보일까봐 걱정하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H씨가 성격 나빠보이는가? 의견 있으면 나에게 카톡 보내주길 바란다. 아닌 척 하지만 H씨는 평가를 내심 기다리고 있다.)

정확하게 내가 쭈글쭈글해지는 포인트를 짚어주셔서 감사하다. 원래 사람들은 자기의 약점을 숨기고 마치 약점이 없다는 양 행세하는데 사실 약점을 숨기는건 잘 안 된다. 글 밖에 약점은 다 빼놓고 좋은 부분만 써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기의 똥을 먼저 깔아놓고 그 똥이 무서워 허겁지겁 글을 써서 똥을 덮으려고 애쓰는 짓거리를 한다. 그러고는 내 똥 안 보일꺼야 에헴!하는 것이다.

이 글을 쓸 때 내가 싸질러놓은 똥 냄새를 H씨가 잘 맡고는 이건 무슨 똥이고 저건 무슨 똥이라고 나뭇가지로 똥을 찌르며 설명해준다. 내가 기분 나쁠까 걱정했지만 사실 난 매우 감사하다. 저 비판 카톡에서 애독자의 사랑이 느껴진다.(이동진 파트는 좀,,, 위기감을 느꼈지만)

내가 숨기고 싶었던 똥은 나의 하찮은 필력이다. 다들 알다시피 글을 유려하게 잘 쓰는 편이 아니다. 독자는 잘 모를 수 있겠지만 난 글을 빨리 쓰지도 못 한다. 위의 별 것도 없는 글을 쓰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얼마나 걸렸는지는 진짜 부끄러워서 적지도 못하겠다. 내 이야기에 대해 글을 쓰면 나은데 이렇게 내 세상 바깥의 것에 대해 글을 쓸 때면 영혼이 빠지다보니까 표현, 문장, 단어들이 다 힘 빠진다. 이게 내 필력이 좋으면 쉽게 더 좋은 표현들을 쓸 수 있었겠지만 필력이 안 좋으니 표현을 다듬으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대단한 영화도 아니었는데!’라고 변명하며 적당히 쓰고만다. 그러면서 추잡게도 괄호로 덧붙인다. ‘(그냥 귀찮아서 선한 인간성, 악한 인간성, 타락이라는 표현을 썼다. 영화 자체 메세지가 불분명하니 언어화하기도 귀찮다.)’

사실 변명은 더 있다. ‘사실 예상 독자가 영화 본 사람이다보니 어느 정도 점프한게 있음. 기존 글 보다도 영화 설명을 줄여서 그 문제가 더 두드러짐’. ‘새로운 포맷 시도가 어려웠음. 절을 구분하고 절에 제목 붙이기를 하려고 하는데 기존 글 형식이랑 너무 안 맞아서 쓰는데 어려웠음. 그게 정신 없는 지점이랑 이어짐’.

사실 이 글은 내 다른 글과 다르게 퇴고도 몇번을 거친 글이다. 아마 그 전 글들 보다도 오타가 확연히 적다는 것을 눈치챘을 지도 모른다. 내가 봐도 내 글이 별로니까 최대한 글을 수정하고 또 수정해서 조금이라도 그럴 듯한 척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H는 초장부터 나한테 묻는다. ‘이번거 첨삭 한거야 안한거야. 아님 글 쓸 때 고치기는 해?? (질문)‘이라고 보낸다. 난 H의 카톡을 보자마자 찔린다.

가장 안타까웠던 건 이 글을 최종으로 수정하고 난 다음에서야 영화에 대한 평론들을 찾아봤는데 나무위키에 적힌 영화에 대한 비판을 보니 내 글에서 적었던거랑 전혀 다르지가 않다. 너무 슬퍼졌다. 글을 내릴까 고민을 했지만 그냥 놔둔다,,,, 내 마음이 너무 급했다. 블로그를 새단장하고 업데이트 주기를 늘이고 싶은데 당장 구현하고 있는 음악 관련 코드와 글은 당장 만족할 수준으로 나오지 않아서 완성도를 높힌 후에 올리려고 하니 잡다한거라도 쓰고 싶었다.

나도 남들의 글이나 작품을 볼 때 그 사람들을 약점을 뻔히 보면서 나는 숨길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게 부끄럽다. 보통 이 정도로 이야기 해주는 사람이 잘 없다보니 ‘자알,,, 숨겼나?’ 하는 오만한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사실 이건 오만함이 아니다. 약점의 마주하지 못하는 가장 보통의 존재들의 조건반사적인 생각이다. 그렇기에 H씨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고마워 H! 그리고 왜 남들이 내가 그들의 창작물을 가지고 지랄지랄하는걸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내 허접한 필력이 진짜 문제일까? 뭐 당연 허접한게 좋은 건 아니지만 내가 뭐 이슬아처럼 매달 돈 받아가며 글 쓰는 것도 아니고, 신변잡기 글들이 내 커리어와 관련 있는 것도 아니다. 글을 못 쓰면 못 쓰는대로 그만이다. 사실 내 글 읽는 사람들이 내 글의 수려함을 좋아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 글은 나답게 전개하는 지랄맞은 맛이 있는데 이 글은 너무 납작하게 화만 내고 있다. 나다운 글을 쓰면 된다.

대신 독자에게 더 좋은 글을 보여주고 싶기에 독자께서는 내가 쓴 글이 허접하고 느낀다면 편하게 의견을 건네주셨으면 좋겠다. 나 혼자 떠들고 싶은거 떠든다는 듯이 말하지만 내가 쓴 글들 중에 블로그에 올리는 글들은 독자들이 즐겁게 읽기를 바라며 쓰는 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