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스터 생활 청산 선언문

전날 밤 새벽 5시에 친구한테 전화가 온다. 나는 전화를 받는다. 친구는 내가 전화 받을 줄 알았단다. 역시 난 규격 외 사람인걸까,,,? 이렇게 말하니 넌 규격 외 중에 가장 평범한 사람이라고 해준다. 완전 동의다. 그리고 덕담처럼 친구한테도 너도 규격 외라고 이야기 해준다. 친구는 발끈한다. 자긴 정상 아니냐고. 응 아냐 너 엄청 이상해. 규격 외 친구는 갑자기 이 시간에 놀러오라고 부른다. 나는 거기에 응하고 바로 샤워를 하는데 샤워 마치고 출발하려고 하니 친구가 잠 온다고 오지마란다. 잠시 짜증났으나 어차피 자기 전에 씻었어야 했고 그냥 옷을 잠옷으로 갈아입는거 외에는 그렇게 손해본 것도 없어서 알겠다고 하고 침대로 돌아간다.

(action line - Dorothy Ashby)

다음날 느지막히 일어난다. 어제 늦게 잔 이유가 막스 쿠퍼 오는 공연이 새벽까지하니까 시차를 맞추기 위해 늦게 자구 늦게 일어난거다(맥스 쿠퍼라고 발음해야할텐데 우리 슈퍼 막스 때문에 막스라고 부른다). 커피를 내리고 샌드위치를 먹는다. 그리고 다시 침대에 눕는다. 7시에 친구를 만나기로 했으니 5시 반쯤 출발하면 된다. 누워서 음악이나 듣는다. 눈을 뜨니 비는 이미 그쳤으나 여전히 하늘은 흐리고 비 냄새도 나니까 비음악을 듣는다. 이런 빛, 이런 온도, 주말에는 Dorothy  Ashby에 Afro-Harping 앨범이 제일 좋다. 하프의 소리가 빗소리랑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왜냐면 하프 소리는 물 속에서 나는 소리 같거든. 나중에 시간나면 하프 소리의 주파수 스펙트럼을 좀 분석해봐야겠다. 그러다가 보이즈 노이즈가 내한 온다는 소식을 듣는다. 4월 29일. 전주 영화제 가는 날이다. 아 어쩌지. 전주 같이 가기로 한 녀석도 보이즈 노이즈를 좋아하니까 아마 내한 소식을 몰랐나보다. 전화 해보니 몰랐다고 한다. 생각보다 시큰둥하다. 많이 좋아하는 걸로 아는데,,, 난 어쩌지. 사실 29일은 서울 공연이고 28일 금요일에 부산 공연을 한다. 부산을 가서 공연을 보고 부산에서 전주로 바로 가,,,? 그러고 토일월은 영화를 보고,,,? 친구는 유산계급답게 금토일월 째라고 이야기한다. 정정해준다. 난 유산계급이 아니라 테크노크라시라구!(테크노크라시의 원래 뜻과는 다르지만,,,) 고민하다가 그냥 고민을 멈춘다. 몰겠다. 일단 보이즈 노이즈나 들으면서 뒹굴거리자. 개좋다. 듣다보니 개버까지 나온다. 좋다 좋다. 막스 쿠퍼 가기도 전에 혼자 집에서 대가리를 흔든다. 스포티파이가 알아서 게샤 노래를 틀어준다. 올만에 듣는데 역시 엄청 좋다. 대충 나갈 시간이 다 되어가니 고민이 된다. 일단 씻기는 해야하고,,, 힙스터들 사이에서 ‘스탠드’를 뽐내기 위해서, 차가운 표정으로 죠죠서기를 당당하게 하기 위해서는 꽃단장을 해야한다. 멋지지 않은 힙스터는 그냥 고위 힙스터를 더 빛나게 해주는 반사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잠시 침대에서 오아시스처럼 궁리를 한다(무슨 뜻인지 모르겠으면 Definately Maybe 앨범의 1번 트랙을 듣자). 고민을 하다보니 침대와 시간이 양쪽에서 압박해온다. 그 틈에 찡겨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어릴 적 고든 프리먼과 R2D2의 활약을 감명 깊게 봤기에 현명하게 그 틈을 벗어난다(모르면 하프 라이프1을 플레이하고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을 보자). 그냥 테크노 룩을 입자. 검은색으로 도배하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는가. 난 고위 힙스터가 아닌 걸. 주제 파악을 하고 대충 나간다. 그래도 테크노 선글라스는 빼먹지말자. 테크노 룩을 입었기에 광역버스에서 게샤를 들으면서 대가리를 흔들어줘야한다. 친구를 만나 성수에 도착하고 일단 담배도 펴줘야한다. 아무 이자카야에서 술을 마신다. 술이 맛있고 꼬치가 맛있다. 그러다 공연장을 간다. 근데 매우 실망스럽다. 첫공연은 막스쿠퍼가 아니라 무슨 한국 디제이였는데 노래가 그렇게 별로는 아니었는데 사람들이 흔들지를 않는다. 이미 만취인 나는 그냥 흔들다가 흥 떨어져서 친구와 공연장을 나와 옆에 있는 콤팩을 간다. 진토닉이 국룰이다. 콤팩에 나오는 노래도 다 너무 후지다. 다 아는 노래. 다 뻔한 노래. 디제이가 쓸데없이 만지작 하는 걸 바로 앞에서 구경하다가 막스 쿠퍼를 보러 돌아간다. 공연은 좋다 말았다. 처음에는 뭔 느낌이 왔는데 이내 흥이 떨어졌다. 다른 관객들이 그렇게 흥이 넘치지도 않았다. 사실 내가 만취해서 흔드는게 문제일 수도 있다. 뭐 암튼,,, 항상 막스 쿠퍼의 비주얼이 엄청 좋다고 느꼈는데 어제는 별로 감흥이 오지도 않았다. 뭐가 문제였을까? 모르겠다. 그냥 담배나 피자. 왜인지 다른 힙스터들한테 큰 관심이 가지도 않는다. 원래 담배 피면서 다른 힙스터들을 노려보거나, 말 거는게 국룰인데,,, 공연을 다보고 실망을 가득 안고 그냥 공연장과 작별인사를 나눈다. 옆에 테크노 피플이 가득한 감자탕집에 선글라스를 끼고 들어간다. 역시 테크노 피플이 가득하다. 감자탕과 소주. 술을 얼마나 마시는거지? 밤섬해적단이 소리치던 ‘나는 씨발 존나 젊은 20대 청춘’도 아닌데 이제. 대충 마시다가 집에 돌아간다.

눈을 뜨고 플란타시아를 들으면서 생각한다. 아 이제 재미없구나. 저번에 버트도 개같이 재미없었고 링이건 볼노스트건 다 아무 감흥이 안 든다. 대가리 흔드는거야 혼자 산 위에 올라가서 흔들어도 그만이다. 사실 플란타시아 들으면서 식물이 된 내 모습을 상상하며 집에서 춤추는게 더 재미있다. 나이가 든걸까? 철이 든걸까? 후자는 아닌 것 같지만 아무튼 이제 재미가 없다. 그래서 힙스터 생활 청산 선언을 하고자 한다! 나 이도현은 이제 힙스터 생활을 청산할 것을 약속합니다.

(Mr. Oizo - Cut Dick)

저 말을 믿는 사람은 없지? 내 좆을 내가 자르랴. 후지 갈 생각에 신난다. 일 빡세게 하고 시간 잘 맞춰서 보이즈 노이즈도 가야지^^

덧붙이는 말

글을 쓰고 몇개 코멘트가 있는데

  1. BDSM 쪽에 있는 친구는 ‘에셈바 가거나 오프 모임가면 와 존나 쩔어 신기해 능력자다!’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아 또 문신충,,, 본디지충,,, 철학충 납셨네,,,’ 생각을 한단다. 최근에도 옆에 앉은 애가 무슨 주식리딩방에서 조폭 따가리 같은거 한 썰을 들으면서 ‘암흑충 납셨네,, 이런 애들은 꼭 마조펫섭이지,,,’ 생각하고 ‘님 마조펫섭임?’이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2. 다른 친구가 ‘힙스터는 좀 대놓고 힙찔한 구석이 있어야 힙스터로 보이긴 하는 듯. 척하는 구석이 좀 있어야 그래 보인다’.라고 하는데 글 쓰면서 놓친 부분이다. 사실 고위 힙스터는 힙스터가 아니다,,,
  3. 1번의 친구가 ‘뭔가 그 말 걸어줬으면 좋겠어 말걸지마 찌질아 이런게 공존하는거야? 공허해. 왜 음악은 온 몸으로 느끼면서 인생은 온 몸으로 안 느끼는데.. 겁쟁이야. 인생은 졸라 주류문화와 하위문화가 공조하고 경쟁과 사랑과 질척질척한 것들로 가득한데 그 공허함이란’라고 말해준다.
  4. 이제 몸이 진짜 맛이 갔다. 토요일 그렇게 놀고 나니까 감당이 안 된다. 짜져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