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zed and Confused

어제 병원을 갔고 반년 가까이 상태가 정상이라서 더이상 약을 안 먹어도 된다고 하셨다. 3개월 후에 보자고 한다. 

병원을 나와 바로 옆 광화문에 있는 타코벨을 갔다. 아니 타코벨이 있던 곳에 갔다. 고작 2개월 사이에 타코벨은없어졌다. 왜 한국에서 타코벨은 인기가 없는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인가? 슬프다.

바로 옆 광화문 뽀모도로라는 파스타 집에 갔다. 11시 20분 쯤부터 테이블이 거의 가득 차 있었으며, 내가 들어가고 10분만에 줄이 길게 늘어섰다. 벽에는 온갖 유명인의 사인이 가득했다. 잘 모르는 만화가의 그림과 사인이 눈에 들어왔다. 베이커 토마토 파스타를 먹었는데 되게 맛있는데 흠 잡을 곳이 없다 싶은데 입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 이틀 전에 술을 먹은거 때문일까? 아니면 기분이 안좋아서? 아니면 그냥 맛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다. 분명 특별한 맛도 아니지만 깔끔한 맛이었는데계속 몸이 거부하더라. 그래도 소스까지 싹 비우고 계산하고 나왔다. 17500원인가? 사악한 가격이다.

나오고 바로 앞 시네큐브에 갔다. 쁘띠 마망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재미없어서 별로 할 말도 없다. 평일 점심 때 영화를 보러올 한량은 당연 별로 없었다. 나, 그리고 학생 커플, 그리고 동네에 사시는은퇴하신 어르신들 몇 분이 전부였다. 노년의 시간은 무엇으로 채워야할까 궁금했다가도 지금 내삶을 무엇으로 채워야할 지가 더 궁금하고 마음이 답답해서 그냥 생각을 접었다.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고 전자담배 팟을 사려고 종각역에 갔다. 공팟을 산 후에 현대미술관이나 가려고 길을 걸어동십자각으로 향하려 했으나 인사동이 나와서 그냥 그 길로 삼청동에 들어섰다. 못보던 큰 미술관 같은게 생겼길래 가보니 공예박물관이라고 한다. 궁금해서 들어가보려 했더니 예약 안 하면 못 들어간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다시 나와 미술관 방향으로 가다가 예전에 일했던 카페 건물을 마주한다. 저번에 왔을 때도 다른 가게로 바뀌어있었는데 지금은 완전 그 가게마저 폐업하여 폐허 같은 공간만 남아있다.

현대미술관에 들어서니 여기도 예약제라고 한다. 3시에 도착했는데 4시 20분 회차 관람은 가능하다길래 그냥 기다렸다. 가져온 ‘어른이 된 영재들’이라는 책을 읽다보니 시간이 다 되어 관람을 했다. 무지하게 재미없는 기획 두개가 있었다. 하나는 자유의 마을이라는 비무장지대 쯤에 있을 것 같은 마을을 다루는데 재미없었다. 다음은 와치앤칠 이라는 전시였는데 넷플릭스+SNS+코로나 -> 집콕 상황에서 뭐시기 저시기를 한다고 하는데 별로 뭐 재미있는 것도 없었고, 몇몇 한국 학생 작품은 그 놈의 되도 않는 예술가 삘로 아무 사물에다가 이름표 이상한거 붙이고 놀길래 역겨워서 그냥나왔다. 대형 수족관 같은 큰 물통에 거실을 만들어놓고 폭파시키는 영상 작품이 있었는데 폭파 후에 책들이 하늘하늘 물을 떠도는 모습이 예뻤다.

예술은 사회적인 것을 다루려고 노력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작품이라는 것을 내가 감상하는 방식은지극히 개인적이다. 남들도 다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술 작품을 사람들이 많이 찾지않는 것 같다. 다들 넷플릭스로원하는 것, 아니면 유행하는 것만 보는데 예술 작품의 사회적 시선이건 그 감각이건 무슨 소용인가. 내 마음에 안들면 안 보게 되고, 내 시선 확장시키려고 작품을 감상하려 노력해봐도 작품들은 또 너무나 개인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니 무의미하게 느껴질 뿐이다.

미술관을 나와서 비오니 비는 그쳤길래 인왕산을 가보려고 청와대 앞을 지났다. 지날 때 마주치는수많은 경호원들, 청와대를 둘러싼 경복궁, 인왕산, 북악산을 볼 때마다 권력의 힘이 느껴진다. 

서촌에 도착해 일단 밥을 먹으려고 통인 시장 쪽에 기름 떡볶이를 찾아갔으나 7시에 이미 모두 문을 닫았다. 슬픈마음에 예전에 자주 가던 돈까스 집에 가려다가 새로 생긴 ‘효자동 국수’라는 곳에가봤다. 만원이나 하는 고기 국수를 시켰는데 그냥 잔치 국수 위에 양념 불고기 같은거 좀 얹어주는게 다라서 실망이었다. 그냥 잔치국수는 7000원인데,,, 3000원에 이 정도 고기를,,, 그냥 9000원에 국수 + 만두 4개 파는 거 있던거 그거 시킬 껄,,,, 근데 국수 맛은 끝내줬다. 면발은 아주 탄력이 좋아서 씹을 때마다 재미를 느낄 정도였고 국물도 단순한 멸치 국물이 아니라각종 다데기가 잘어우러져 심심하지 않고 또 자극적이지도 않은 먹어본 적 없는 잔치국수 맛을 냈다. 맛있게 먹고있는데 내 옆 테이블에 40대 후반의 아저씨가 국수에 소주를 곁들이고 계셨다. 그러면서 본인 자식들의 전화를 받는데 짜증이 많으시다. 결국 통화가 끝났을 때 욕을 내뱉는다,,, 그냥 마음이 안 좋아진다.

나도 술이 먹고 싶어 인왕산은 포기하고 주변에 보이는 LP바에 갔다. 입구부터 이상한 인디언 석상이 있길래 좋은 느낌이 왔다. 가게에 들어서니 나이가 좀 있으신 주인장 할머님이 LP를 만지고 계셨고 어떤 백발의 아저씨가혼자 양주를 드시고 계셨다. 벽면에는 LP가 가득했다. 진짜 가득했다. 그렇게 LP가 많은 곳은 처음이었다. 안에는매킨토시 앰프도 가득하고 매킨토시 스피커도 있었다. 매킨토시가 스피커를 만드는지 처음 알았다. 알텍 스피커도 있었는데 오랜만에 보니까 신기했다. 

들어가자마자 맥주를 잡는다. Alan Parsons Project의 Eye in the Sky가 흘러나왔다. 옆에 분이신청하신 것 같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어떤 강한 이미지, 느낌, 공기, 공간이 내 머리를 가득채운다. 20년 후 내가 똑같이 그렇게 보낼 것 같다는 느낌이 왔고, 마치 20년의 인생을 어떤 방식으로든 채우고 난 후 그 공간에서 술 마시는 내 모습이 머릿 속에 가득해졌다. 많은 것들을 붙잡아도 보고 놓아도 보고, 많은 것들이 스쳐지나간다. 아름다운 것을바라보고자 노력했고 많은 아름다운 것을 마주했지만 시간은 처절하게 흐르고 붙잡아둘 수 있는 건 없었다. 옆에는 술과 음악만 남아있다. 외롭다. 예전에도 외롭웠고 앞으로 외로울 것이다. 

그 분에게 위로가 되고 싶었고, 최근에 추천 받은 Emerson, Lake and Palmer의  Trilogy를 신청했다. 주인장은 내가신청한 다른 노래인 I can’t go for that을 트시고서는 10분을 넘게 엘피 더미를 뒤적거리신다. 그러다가 같은 뮤지션의 세라비를 트시고는 조금 기다려보라고 분명 판이 있는데 못 찾겠다고 말하시고는 이내 그 판을 찾아내서 노래를 틀어주신다. 있을 것 같더라. 전주의 스트링부터 피아노,,, 그리고 보컬 목소리가 들릴 때 마음의 안정이 온다. 이 안정이 옆 사람에게 전해지길 바랬다. 그러다가 노래가 터져나가기 시작할 때 오는 그 벅찬 에너지가 전해지길 바랬다.

옆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마주하기 두렵다는 마음도 크게 들었다. 미래의 나를 확인하기 무서웠다. 그래서 그냥 음악으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ELO의 Don’t bring me down, Herbie Hancock의Chameleon, Harold Melvin의 Don’t leave me this way를 신청했다. ElO를 바로 틀어주시고, 허비 핸콕은 Rock-it을틀어주시고 멜빈은 틀어주시지 않았다. 아마도 판이 없으셨나 싶다. 

옆에 분 친구가 왔고, 또 오자마자 락앤롤을 외치시는 노년의 아저씨 여럿이 들어왔다. 그 덕에 옆아저씨와의 음악의 대화는 끝나버렸다. 노년의 아저씨들은 레드 제플린을 신청하셨고, 옆에 분은R.E.M과 Oasis를 신청하셨다. 담배를 피우러 나가시길래 따라나섰고 음악 듣는데 내 노래가 방해되진 않았는지 여쭈었다. 즐겁게 들으셨고 말걸고 싶었는데 먼저 말 걸어줘서 고맙다고 하신다. 메일 친구 하자고 하신다. 좋다. 

그러고 드신 잭 다니엘을 나눠 마시다가 옆에 분이 신청하신 Pale blue eyes가 들린다. 술은 얻어마셨지만 여전히다른 테이블이었고 더 다른 대화는 없었다. 그러다 밖에서 한잔 더 마시자고 제안하셨고 응했다. 말없이 따라나서콜키지 하신 술을 더 마신다. 이야기를 걸어보았지만 술이나 마시자고 하셨고, 음악만 몇 곡 더 들려주신다. 김광석의 불행아, Roy Orbison,,, 서로에 대한 이야기는 3번째 만났을 때 하자고 하신다. 5번째 만났을 때는 내가 피는전자담배 가르쳐달라고 하신다. 술은 다 마셨고 10시가 되어서 자리를 나선다. 짧게 인사를 하고 열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같이 있는 내내 한없이 조심히 존중을 다해 날 대해주셨고, 그저 다른 이야기도 나에 대한 기대도없이 술과 음악만 원하신다. 아 그리고 술집에서 준 고구마 껍질을 까서 건내드리니 ‘남자가 까주는 건 안 먹어요’라고 말하신다. 

미래의 여러 가능성 중 가장 확률이 높은 내 미래를 마주한 것이 분명하다. 그 사실이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다. 많이 아프고 외롭겠지만 삶은 나아가는 것이고, 그러고 싶지 않아도 시간이 날 먹어치우지 않겠는가? 

하루를 돌아보면 무언가 가득하지만 비어있다. 어떤 순간들은 흘러가고, 어떤 순간은 길게 느껴진다. 많은 것들이스쳐지나가고 무언가를 붙잡을 마음 상태도 아니다. 멍하니 혼동스러운 순간들이가득한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