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보고서

5월 달에 친구랑 수원 화성에 놀러갔다가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에는 당연 잘생기고 늘씬한 내 모습이 담겨있기를 바랬지만, 내 눈에 보이는 건 고사를 지낼 때 상에 얹어놓는 웃는 돼지의 얼굴이었다. 충격을 심하게 받은 나머지 그 사진으로 보자마자 다이어트를 결심했고 같이 놀던 친구와 다이어트 내기를 하였다.

다이어트 보고에 앞서 나의 다이어트 역사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나에게 다이어트는 살이 찌면 별다른 노력 없이 다시 살이 빠지는 일을 일컫는 말이다. 혹은 살이 빠지는 기간일 수도 있겠다. 크게 운동을 많이 하던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대가 없이 얻은 젊음은 나에게 무게 없는 다이어트를 선사해줬던 것 같다. 그리고 항상 타인들의 다이어트를 비웃었다… 나에게 무게 없는 일이니 타인에게도 무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타인들이 내가 하는 정도의 작은 운동 조차 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하지만 대가 없이 지급 받은 젊음을 강제로 반납해가는 요즘 다이어트의 뜻이 변하고 말았다.

누가 먼저 4키로를 빼는가를 가지고 경쟁하는 내기였기에 다이어트는 극단적일 수 밖에 없었다. 하루에 한끼, 매일 일월호수를 3바퀴 돌기, 각종 맨손 근력 운동, 체중계 앞에 서기 2시간 전부터 물 마시지 않기 등…  평소에 하지도 않던 일들을 미친듯이 하였다. 평소에 즐기던 요리 하는 것 또한 다이어트를 시작한 이후 먹는 양이 극도로 줄다보니 자연스레 멈추게 되었다. 인터넷 배송으로 매주 토마토를 주문하고, 매일 아침 토마토를 갈아 마시고, 또 갈아서 연구실에 챙겨간다. 샐러드를 먹기도 했으나 어느 순간 그것도 멈추고 그저 토마토만 먹을 뿐이다. 운동량이 조금 많은 지, 하루 한끼의 영향 섭취량으로는 근육이 감당이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평생 마셔본 적 없는 단백질 보충제를 사먹고 있다. 하루 한끼 또한 의지를 가지고 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게임하고 책 읽다보면 귀찮아서 하루 한끼를 먹거나 한끼 조차 안 먹을 때도 있었으나 일부러 굶어본 적은 없었다. 

첫 2주간 효과는 대단했다. 1주일 만에 3키로가 빠졌으며(아마 지방이 빠진 건 아니겠지만…) 이 이후 차분히 몸에 지방에 사라지더니 1주 반 정도에 4키로 빼는 일에 성공하여 내기를 이겼다. 내기는 이겼지만 다이어트는 지속하였고 68혁명이라는 이름 아래에 계속해서 다이어트를 이어나가고 있다.

지금 글을 쓰는 시점은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1달하고도 2주차이다. 68혁명은 아직 진행 중이다. 68키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몸에 살이 충분히 빠져 돼지 같은 모습은 이미 사진 속의 옛 이야기다. 여러 운동 덕에 몸이 가벼워졌고, 이제 계단을 오르는데 다리에 부하가 오지 않는다. 얼굴도 다시 잘생겨졌다! 

68키로가 되면 더 좋아질 지 모르겠지만 사실 지금 수준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예전의 나였다면 그렇게 고생하면서까지 68혁명을 더 진행할 이유가 없다고 또 잔소리 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68혁명은 희생과 의지를 가지고 하는 운동이 아니다. 이제 68혁명은 나의 삶이며 즐거움이다. 

하루 한끼를 먹는 것은 더이상 체중 감량을 위한 자기 절제가 아니다. 하루 한끼는 내가 나의 몸에 가하는 체벌이자 나의 몸이 나에게 주는 약속된 아픔이다. 다시 말해 하루 한끼는  가학과 피가학의 쾌락을 동시에 주는 나와 내 몸 사이의 유희 활동이다. 굶주림을 참으며 연구를 하고 코딩을 할 때 잠시 불편함을 느낄 때도 있지만, 불편함도 잠시, 내 몸과 내 정신은 나도 모르게 높은 고양 상태에 이르러있다. 정신은 맑고 즐거움은 하늘의 빛과 같이 자연스럽게 빛나고 있다. 배고픔은 쉼없이 흐르는 계곡의 물과 같고 그 물이 흘러가는 소리는 기쁨을 준다. 물이 조금 차갑기는 하지만 지나다보면 마치 피와 같이 인식된다. 배고픔이 커질수록 물은 더 많이 흐르고 더 세차게 흐른다. 배고픔 예측 가능하며 내가 조절할 수 있는 몸의 파동이다. 그 파동에 시간을 얹고 주기를 얹으면 즐거움은 배가 된다. 24시간 한번씩 굶다가 먹는 한끼는 음식의 향을 풍부하게 해주고 식사에 행복이 깃들게 해준다. 다이어트를 시작하여 얻게된 것은 쉼없이 진동하는 몸의 새로운 파동이다. 이 파동은 다양한 파형 특성을 지닌 파동 성분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파동들의 합은 나의 생활에 풍부한 화음을 들려준다. 새로 찾은 이 신선한 감각을 어찌 포기하겠는가!

‘The more I make love, the more I want to make revolution. The more I make revolution, the more I want to make love.’ 와 같은 당시 68혁명 구호처럼(당시 혁명 구호라고 카더라) 혁명은 뜨거운 욕망과 쾌락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