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들어온 지 3일째 되는 날이며 동시에 이 집에서 첫 끼를 먹은 날이다. 전날 밤 3시쯤 룸메가 집에 돌아와서는 낼 아침 먹을꺼냐길래 밥 해놓으면 점심 때 3분 카레 해먹고 가겠다고 했다. 오늘 일어나니 룸메는 늦잠을 자버렸기에 아침도 안 먹고 가버렸더라. 일어나 어제 밤에 새로 깔은 ihaskell 가지고 좀 놀다가 슬슬 밥을 먹고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사실 이때서야 룸메가 밥을 안 먹고 갔다는 사실을 알고 룸메는 나를 위해 밥을 해주고 가는 자상한 사람이구나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러고 3분 카레를 데우려고 전자렌지를 찾아보니 아직 이 집에 전자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잠시 안 돌아가는 머리를 굴리며 외식, 김 + 밥을 가지고 저울질 하다가 룸메의 자상한 밥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렇게 밥을 먹었고 그 순간 수 많은 시간 대의 내가 느껴졌다. 마치 엘리베이터 안에 앞 뒤에 거울 속에 있는 무한 수의 나를 목격한 것 같았다.
언젠가부터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시간이 한 방향을 향해 움직이는 비가역적 흐름이 아니라, 선후관계가 없는 하나의 점 혹은 연결망 같다는 느낌. 방금의 경우에는 방 바닥에 밥이랑 김으로 대충 떼우는 내 모습이 다양한 빛, 시간, 인물, 음악과 같은 약간의 변주와 함께 내 옆에 찾아왔다. 심지어는 다양한 장소 속에서 다양한 음식을 앞에 두고 있는 내 모습도 느껴졌다. 앞으로 계속 그럴 것이다.
단지 밥 먹는 상황과 같이 구체적인 행동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좀 더 나이가 많이 들어 산책하는 모습, 술 마시는 모습, 음악 듣는 모습 등등 정말로 많은 시간 속의 내가 느껴지고 그 마음이 느껴진다
확실히 테트 창의 컨택트 속 주인공이 느낀 시간관이랑은 다른 것 같다. 아마 베르그송의 지속의 개념이랑 비슷한 느낌을 받는 것 같다. 사실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서 지속이 어떤 개념인 지 잘 기억도 안 난다. 뭐… 시간… 운동… 기억… 잠재… 국지론 반대… 뭐 그런 거 있었는거 같기는 한데… 그냥 느낌이 비슷한 것 같기는 하다.
뭐 그런 건 모르겠고 항상 내가 하던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나와 세상이 관계 짓는 방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세상과의 상호작용이 바뀔 일은 없다. 사회를 이야기하고 담론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자본주의니 신자유주의니 젠더론 같은 이야기로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 사실 그런 건 잘 모르겠다. 수많은 나를 평행하게 느끼는 동시에 그 존재들을 지우는 방법을 안다. 첫번째 방법은 그냥 모른 척 밥을 먹으면서 폰을 켜고 네이버 뉴스를 들락날락 거리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그 존재들을 면밀히 살피고 느끼고 바라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