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바빠서 글을 전혀 쓰지 않았다. 사실은 놀고 먹는다고 바빴다…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친구가 말한 음악 추천 글을 써보려고 한다.
이때까지 음악 추천 글을 쓸까 말까 되게 고민 많이 했던 것 같다. 매번 고민할 때마다 쓰지 말자고 결론을 내렸었는데 이유는 정말로 모르겠다. 아마 내 고스트가 속삭인거 아닐까? 농담이고 아무튼 그냥 쓰기 싫었고 그냥 글에다가 음악을 첨부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친구가 한번 써보라고 하길래 평소에 글감을 찬찬히 떠올려봤는데 꽤나 쓸만한 것이 많다. 포맷도 생각보다 자유롭고 꽤나 그 나름의 리듬이 있을 것 같다.
아 참고로 그 친구의 음악 추천 글은 아직 보진 않았다. 보면 자유도가 떨어질 것 같아서 싫다. 좀 쓰고 나서 보련다.
A felicidade가 이번 글의 노래다. 딱히 음악 역사는 잘 모르지만 위키가 말해주길 Antônio Carlos Jobim이 작곡가라고 한다. (사실 João Gilberto라고 어림짐작하고 있었다…) 꽤나 역사 깊은 음악이라고 한다. 단지 오래된 노래라서 역사가 깊은 것이 아니라 꽤나 많이 회자되고 있는 ‘흑인 오르페’라는 영화의 OST라서 그렇다. 나 또한 그 영화를 통해 이 노래를 접하게 되었다.
언제나 보사노바를 들을 때는 신선한 느낌을 받는다. 매번 듣지만 들을 때마다 모든 감각에 생기가 넘쳐흐른다.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우리는 감각 기관을 통해 쉴 새 없고 끊김 없이 정보를 받아들이면서 세상을 움직임을 인지한다. 이는 다르게 말하면 우리는 감각을 통해 시간을 흐름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게 우리는 항상 감각 기관을 열어놓지만 또 한편으로는 감각기관을 최대한 닫으려고 한다. 왜? 우리는 감각 기관이 주는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아 효율적으로 분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매번 외부 자극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의미를 추출하는 것은 피곤하기에, 기존의 기억들을 토대로 빠르게 외부 자극에서 의미를 추출해낸다. 이 패턴에서 의미를 추출하는 과정이 내가 보기에는 지성의 기초인 것 같다. 하지만 이 같은 패턴화는 시간을 멈추어버린다. 패턴화에 고착되어버리면 모든 외부 자극을 기존에 패턴에 끼워맞추어 버리고 더이상 외부 자극을 새로울 수 없는 정적인 것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다시 한번 돌아가서 어떤 음악들은 이렇게 죽어가는 감각을 다시 살린다. 그런데 그 음악을 반복해서 들을 경우, 그 감각을 되살리는 느낌이 줄어들고는 한다. 하지만 보사노바는 항상 들을 때마다 감각이 살아나는 느낌을 준다. 보사노바를 꾸준히 들은 지 4년이 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랍다. 뭐 4년이라고 하면 별로 긴 건 아니지만 항상 2~3달 전 쯤부터 들은 것 같았는데 4년이라고 하니 머리의 기억 체계에 대한 의심이 든다.
‘흑인 오르페’를 2013년에 봤던 이유는 아케이드 파이어의 reflektor 앨범의 주요 테마라고 얼핏 들은 것 때문이다. 잘은 모르겠는데 그 영화 보고 그 앨범을 만들었다고 하니 궁금해서 찾아봤다. 영화 내용은 사실 기억도 잘 안 난다. 뭐 카니발 나오고 뭐 나오고 조금 이상한 영화였던 것 같은데 지금 보면 이해가 가련지 모르겠다. 내용은 모르겠지만 음악은 정말로 강렬하다. 그 리우 언덕집에서 Manha de Carnaval을 부르는 장면은 아마 죽어서야 잊지 않을까? 그 이후로 보사노바를 듣기 시작했다.
이후 ‘Girl form Ipanema’부터 시작해서 이리 저리 보사노바를 들어왔다. 듣다가 알게된 건데 그 전부터 보사노바를 좋아했던 것 같다. 보사노바라는 것을 알기 전에도 보사노바가 어디서 배경음으로 나오면 좋았었고, 클래지콰이나 롤러코스터의 일부 곡들을 선호해왔었다.
노래 추천이라고 해놓고 딴 이야기만 하는 것 같다. A felicidade. 포르투갈 말로 행복이라고 한다. 노래 가사는 포르투갈 말인데 번역이 있으니 참고 바란다. (lyricstranslate.com/en/felicidade-happiness.html) (저작권 몰라서 그냥 복붙은 못하겠습니당, 가수가 다르지만 가사는 같으니 뭐…) 내용은 대략 이렇다. 슬픔은 끝이 없지만 행복은 끝이 있다. 행복은 찰나의 아름다움. 카니발, 그것은 가난한 자의 신기루. 뭐 이런거다.
가사의 내용은 크게 관심이 안 가는데 요즘 행복에 대해서 드는 생각이 있다. 이름하여 탐욕적 행복 알고리즘이다. 컴퓨터 알고리즘 기법 중 Greedy algorithm에서 따온건데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 그리디 알고리즘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테니 간략히만 설명하겠다. 서울에서 부산을 최대한 빠르게 가려고 한다. 서울 부산 사이에는 수많은 길들이 있으니 그 길들을 다 고려하면 최단 경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디 알고리즘에서는 전체 경로를 다 고려하지 않고 서울에 직접 연결되어있는 도로들의 소요 시간만 고려한다. 그 중 최단 경로를 정하고 그 길로 가는 것이 그리디 알고리즘의 방법이다. 이 같은 방식은 전체 최단 경로를 보장해주지 못 하지만 뭐 어찌 운 좋으면 꽤 짧은 길을 찾아나가지 않을까?
인생의 행복에 대한 고민도 탐욕 알고리즘이 해결해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행복을 추구하는 행위가 내 인생에 행복을 추구하는 행위일까? 모른다. 아까의 예제와 달리 우리는 죽을 때까지의 경로를 알지 못한다. 그저 지금 행복할 일을 하면 그만인 것이다. 뭐 당장 오늘만 보고 살자는 것이 아니다. 그냥 알지도 못하는 일에 고민하지 말아야한다.
사실 이 같은 말을 하려고 탐욕 행복론을 꺼낸 것이 아니다. 행복은 탐욕적으로 추구해야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끔 가다보면 과거에 연연하거나 과거를 후회하지 말고 지금 상황에 만족하고, 삶에 감사하고 주변을 되돌아보라는 말이 들린다. 정말로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행복은 주어지지 않는다. 인생의 행복은 끊임없이 탐해야하는 일이다. 뭐 어쩌다 운 좋게 삶을 흘려보내다가도 행복의 길에 들어설 지도 모르겠으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자세이다. 행복해지고 싶으면 행복을 탐해야한다. 행복해지고 싶으면 과거에 했던 일을 생각하고 자신을 걸을 수 있던 길을 보고 반성하고 후회해야한다. 그리고 다시 지금 시점에서는 언제나 생각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회들을 찾고 최선의 선택을 해야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행복하지 않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언제나처럼 노래 추천은 하지 않고 잡소리만 늘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