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을 했다. 기간 상으로 5년 반의 학부생활이 공식적으로 끝났다. 사실 외부에 이런 형식적 이벤트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 편이긴 하지만 이 날은 기분이 특별하여 감상을 남기려한다.
사실 졸업이 별 일은 아닌게 바로 자대 대학원을 가는 입장이라 transition에 큰 역동성이 없다. 이미 한 학기 저부터 대학원 생활 비슷하게 하고 있었으니 당장 인생이 달라질 일은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분명 학부와 대학원 생활은 분명히 다르고 아마 나는 다시는 만끽할 수 없는 생활과 작별의 인사를 나눈 것 같다. 아니 사실 나에게 더 강렬하게 아쉬운 것은 내가 지낸 그 공간이랑 작별한 것이 아쉽다.
1. 동방
역시 내 학부 생활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동방인 것 같다. 학생회관에서 가장 위치가 좋으며, 별 이유없이 넓은 그 공간, 24시간 열려있으며 잘 수도 있고 영화도 보고 술을 마실 수 있는 그 공간은 정말 내 생활의 전부를 차지하였다.
동방에 대한 느낌은 폭 넓고 다양하나 지금 적어보고 싶은 건 홀로 밤새 동방에 있을 때의 그 느낌이다. 진짜 명시적인 이유없이 동방에 많이 갔었다. 명륜에서 학교 다닐 적 자취방도 있어서 지낼 곳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항상 동방에 갔다. 분명 동방에 갈 때 나의 마음은 마치 나방이 불 속에 뛰어드는 것처럼 그냥 그 공간으로 흘러들어갔다. 외로워서였겠지? 하지만 잘 모르겠다. 막상 안에 있을 때 누군가 오기를 기다렸던 것일까? 꼭 그렇지 만은 않은 것 같다. 예전에 동아리에 좋아하는 여성 분이 계실 때는 그 분을 기다리는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뭐 그건 잠시였고 대부분의 경우 누군가를 기다리지는 않았다. 그냥 혼자인 상태가 좋았던 것이었는가 하니 그것도 아니었다. 이런 감정을 쉽게 퉁쳐 부를 수 있는 양가 감정이라는 단어로 설명이 될까? 그때의 기분은 조금 더 잘 알고 싶다.
혼자 있을 때 뭘 했었던가? 보통 그냥 누워서 폰을 보거나 책을 봤다. 물론 동방 컴퓨터로 음악을 크게 틀고서 말이다. 아니 음악을 듣고 있었다가 맞는 것 같다. 그냥 누워서 멍하니 음악을 계속 들었다. 그러면서 멍하니 생각을 했었다. 방향도 힘도 없이 마치 엔트로피의 법칙처럼 흩어지는 생각들을 했다. 그러면서 마음 한 켠은 가벼웠다. 비어있다고 쓰려고 했으나 그것 보다는 가볍고 마치 공기 같은 느낌이다. 빈 것 같긴 하지만 분명 존재하고 붕뜨려고 하고 가라 앉으려고도 하는 공기의 흐름이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 같다. 다시 한번 써야할 것 같다. 외로움일까? 그 마음을 즐기지는 않았다. 그 마음은 오히려 나를 흐르게 했다. 동방으로, 남산으로, 신촌으로, 서울 어디로든 흐르게 했다. 흐른다. 흘러들어간다. 무엇이 되어도 좋다. 크게 목적성 없이 나는 흘러다녔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그때 난 목적이 없었다. 정말 automata 머신처럼 event에 따라 next state로 이동했던 것 같다. 어떤 상태에서 어떤 조건이 충족되면 다음 상태로, 그리고 또 다음 상태로 그렇게 순환하였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간단한 점화식이다. 그렇게 어제는 무한히 증식했다.
단순한 외로움은 아니었다. 단순한 무기력에 오히려 가까운 것 같다. 나에게 주어진 조건 혹은 환경에 흘렀다. 서퍼는 아니었다. 그냥 해파리 같은 것 같다. 불행하지는 않았다. 행복했냐고 물으면 행복했다. 걱정은 없고 불안도 없었다.
다시 돌아가서 왜 그렇게 동방에 흘러 들어 갔을까? 앞에 말을 쓰고 보니 동방은 넓고 음악은 컸다. 마음이 편하고 자유롭게 떠다닐 수 있었다. 그 퀴퀴한 향은 마치 마약과 같이 취하게 했었다. 동방은 hub 였던 것 같다. 내가 가진‘흘러다니기’ state들 중에서 가장 다양한 state로 전이시켜주는 hub state다. 그곳에 있으면 어디든 흘러들 수 있다. 걸을 수도 영화를 볼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술을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여자를 만날 수도 있다. 이것 말고도 정말 많은 state들이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동방으로 가는 건 자명한 중력의 법칙처럼 너무나 당연한 일 같다.
동방에 대해 한가지만 더 쓸 것이 있다. 그런 나에게 동방은 변화를 기대하게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동방은 내 소유의 공간이 아니고 다른 부원들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 다양한 존재들의 흐름을 느낄 수 있고 그거에 따라 나의state map이 변하기도 한다. 동방에 갈 때 마음 한 켠 그것을 기대했던 것 같다.
2. 와룡공원
다음으로 쓸 공간은 무엇일까 고민하다 와룡공원으로 결정했다. 와룡공원으로 정말 자주, 어떨 때는 매일 밤 흘러 들어갔다. 하지만 와룡공원에서의 마음은 동방에서의 마음과 많이 달랐다. 먼저 와룡공원에서는 음악을 그렇게 듣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틀기는 했으나 그렇게 내 마음에 영향을 주었던 것 같지 않다. 와룡공원은 열린 공간이었다. 동방과 달리 와룡공원은 트인 공간이었고 모기가 많았다. 와룡공원은 정말 홀로 있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선 한번도 아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으며 만날 것이라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다.
그곳에 갔을 때는 그냥 벤치에 누웠다. 공기를 맛보고 서울을 느꼈다. 와룡공원의 위치가 꽤 높다보니 서울이 한 눈에 보였고 또 서울의 소리가 들렸다. 그냥 그렇게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여러 기분을 가지고 와룡공원을 올랐던 것 같다. 답답한 마음, 즐거운 마음, 공허한 마음… 사실 몇 백번을 갔으니 온갖 마음 상태 아니었겠는가?
운동하러도 자주 갔다. 보통은 새벽 2시 이후였지만, 다양한 시간 대에 tame impala의 apocalypse dream을 들으면서 뛰어 올라갔다. arcade fire 4집이 나온 이후에는 here comes the night time도 자주 들었던 것 같다. 노래가 끝나기전까지 열심히 달렸다. 그리고 오른 후 턱걸이를 하였고, 그러고나서는 벤치에 누워 쉬며 모기에게 피를 상납했다.
기억나는 때가 있다. 1학년 1학기 때 한 새벽 3시즘인가 와룡공원에서 조금 더 들어가 있는 공터에서 riders on the storm을 들었던 때가 있다. 그땐 정말 망가진 기분이었고 노래의 천둥 배경소리가 정말 실제처럼 다가왔다. 짐 모리슨의 목소리가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던 순간이다. 아마 음악을 들을 당시 자주 떠들고 다니던 단어는 dilletante였던 것 같다 하하…
그곳에 있으면 와룡 균형에 이르는 것 같다. 전혀 힘든 기분은 주지 않았다. 차분하지만 마음은 적절한 속도로 흘렀다. 그곳에서 서울의 모습을 보면 정말 사랑을 느꼈다. 사랑해 서울. 많은 빛들을 보며 타인의 존재를 인식했다. 1000만이라는 numeric value는 일상에서 안 느껴진다. 하지만 그곳으로 오는 다양한 빛들을 보면 정말 그 다양성이 실감난다. 서울은 가능성의 장이라고 느꼈다. 요즘은 조금 회의적이긴 하지만…
3. 서울
자연스럽게 서울로 넘어가려 했으나 저번에 쓰기도 했으니 딱히 더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인생은 어쨌건 비가역적인 시간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고 내 주변의 것을 순수히 내 의지로 조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마 다시는 앞서의 공간들과 지금 같은 관계를 맺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공간들은 나의 인생의 어떤 순간들을 특정 짓는 unique identifier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상실의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나의 삶에 대한 애정을 느끼기도 한다. 이제 학부를 마쳤고 이 공간들과는 새로운 관계를 맺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그 공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고 또 한편으로 이 공간들과 새로운 관계를 꿈구고 싶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졸업식날 친구들과 보낸 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기 때문이다. 항상 고맙고 덕분에 정말 즐겁게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정말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