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살던 친구가 간만에 연락와서는 인천으로 이사했는데 심심하니 놀러오라고 한다. 뭐 간만에 얼굴 볼 겸 놀러갔다.
친구는 저어기 인천시청역 근처의 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간만에 복도식 아파트에서 아파트와 주변 전경을 바라보니 예전에 살았던 아파트가 생각난다.
복도에 서서 주변을 구경하는데 옆 건물 옥상에서 무슨 그림자 마임(?) 춤 같은 것을 누군가 추고 있었다. 근데 누군가?라고 말하기가 애매한게 그 움직임이 인간이라기에는 비현실적이다. 팔과 다리가 움직이는 모습은 관절이 없는? 혹은 15개 정도의 관절이 있는 생물의 움직임 같다(Bezier Curve를 그어보자). 그 예전에 많았던 상점 앞 풍선 인형처럼 흐느적거렸는데 사실 풍선인형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그 팔과 다리로 추정되는 무언가의 그림자 두께가 변했는데 이게 현실에서는 보지 못한 모습이다. 추정하기로는 조명의 위치를 좌우전후로 바꿔가면 그림자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하기에도 쉽게 납득은 되지 않는다. 친구는 약간 무서워하며 못 볼 걸 본 거 아니냐는데 나는 그냥 내가 인천와서 웰컴 세레모니 해주나보다 했다.
친구 집에 짐을 던져두고 신포시장으로 출발한다. 어떤 곳인지 잘 몰랐는데 마음에 드는 지역이다. 낮은 건물로 이루어진 상가들에는 이런 저런 가게들이 가득했고 직선형 길도, 곡선형 길도, 방사형 길도 있어서 따라가는 눈과 몸이 즐겁다. 처음에는 그냥 회나 먹으려고 했으나 시장이 흥미로워 바로 술이나 먹기로 한다. 어디를 갈까 걷는 도중에 아주 큰 음량으로 락앤롤이 흘러나오는 술집이 있었기에 바로 거길 향한다.
가게에 들어서니 길에서 들렸던 그 음량이 체감된다. 아주 큰 출력의 스피커에서 락을 쾅쾅 울리고 있었고 나도 모르게 내 입은 귀에 걸린다. 앉아서 맥주랑 아무 안주나 주문하고 신나게 마신다. 당연 음악을 신청할 수 있는 곳! 사장님이 트는 곡을 대략 3곡 듣고 그 분위기에 맞추어 신청한다. 그러니 사장님의 화답성 곡이 온다. 그리고 기다리니 다다음 곡부터는 전개를 바꾸신다. 나도 맞추어 신청한다. 이 일을 계속 반복하고 논다. 그러던 중 인천 출신으로 추정되는 젊은 부부(커플 같지는 않았다)가 가게에 들어왔다. 그 사람들은 이런 음악을 그렇게 좋아할 것 같지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처음 시끄러운 가게에 들어왔을 때 주저한다. 앉을까 말까. 재미있게도 그 사람들은 그 자리에 앉았고 한시간 가량을 음악 신청도 안 하고 술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그 사람들이 자리를 떠날 때 가게 앞에서 부부 중 남자가 우리한테 멋져요! 했는데 그 남자가 잘생겼기에 기분이 좋다.
사장님과 나는 계속 음악으로 서로에게 마음을 전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둘이서 몰래 사랑의 밀회를 나누는 기분이었다. 음악은 락에서 디스코, RnB, 옛 일렉트로닉, 하우스를 아울렀다. 사장님 나이가 50대 후반 정도로 추정되는데 폭넓은 장르를 먼저 제안하셨고 나는 젊은이들의 픽으로 화답하였다.
사장님이 재미있으시게도 곡 중간중간에 마이크를 들고 80년대 식의 DJ 멘트를 날리셨는데 우리에게는 참으로 생소하면서도 멘트가 웃겨서 둘이서 깔깔깔 웃으면서 놀았다. 친구가 되게 짧은 숏컷을 했는데 사장님이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의 여주인공 머리 같네요’ 하고 DJ 멘트를 치셨는데 그때 내가 사장님 말을 못 알아들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니 ‘음악을 잘 아는데 영화는 그렇게 안 좋아했나봐?‘라고 이야기 하신다. 그때서야 아 네 멋대로 해라! 맞네! 생각을 하면서 속이 아파온다. ‘아니 저 그 영화 알아요! 제가 그 영화 왜 몰라요!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런 생각을 속으로 생각하다가 웃음이 터진다. 예술충스러운 지적 허영심 같은건 예전에 내 마음 속 깊이 쳐박아놔서 이제 지적 허영심이 내 마음 전면에 나올 일을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보니 사장님과 음악으로 서로의 음악 취향을 뽐내면서 마음을 나누는 건 영락없는 예술충의 모습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고 웃음이 났다. 예술충 근본은 변하지 않았다. 그냥 좀 덜 후지게 표현하는 요령만 늘어난 게 아닐까 싶다.
놀다보니 사장님의 친구가 술집에 놀러왔다. 사장님은 가게에서 담배를 피고 싶었는데 친구가 손님이 있는데 그건 안 되지 않냐고 이야기 하셨나보다. 사장님이 우리 테이블에 와서는 가게에서 담배 필까요? 물었고 우린 당연 오케이! 그러면서 사장님이 친구분에게 외친다. ‘봐 당연히 괜찮을거라고 했잖아!‘. 당연하게도 우리 넷은 한 테이블에 앉아 담배를 피며 술을 마시며 음악 이야기를 하며 논다. 이런저런 각자의 이야기를 했는데 여기 옮길 필요는 없을 듯하다. 옆에 앉은 사장님 친구가 ‘당신은 어떤거에 꽂혀 사냐고’ 하길래 ‘술, 여자, 음악이요!’ 라고 대답했던게 생각난다. 난 씹저씨 그 자체다.
후반부는 기억 안 난다. 너무 많이 마셔서 기억을 잃었다. 뭐가 퍽퍽퍽하는데 눈을 뜨니 친구가 차를 빼야한다고 깨운다. 무슨 이사차가 와서 차를 옮겨달라고 전화가 왔다는데 난 뭐가 뭔지 모르고 집에서 나와 차를 옮긴다. 나온 김에 해장을 하러 동네에 소머리국밥 집을 갔는데 되게 맛이 충격적이다. 미친듯이 단맛이 아는데 이게 진짜 뭔가 싶더라. 거의 먹지도 않고 자리를 일어나 놀 궁리를 한다. 내가 제안한다. 인천항에 가서 배를 타자! 친구는 당연 찬성. 차를 끌고 인천항에 티켓 부스를 가서 덕적도 표 주세요! 하니까 당일치기로 덕적도를 오갈 수 있는 배는 없다고 말한다. 아,,, 다시 차를 몰고 강화도 가자!를 외치며 강화도를 간다.
강화도에 들어설 때 쯤 배가 고파서 허름한 토스트집을 향한다. 허름해서 맛있을 것 같았다. 놀랍게도 토스트도 맛 없었다. 토스트가 맛 없을 수 있나,,,
느긋하게 강화도를 쏘다니며 커피 마시고 빙수 마시고 신나게 보낸다. 카페에서는 분재도 기르고 판매하던데 녹색은 언제나 옳다.
카페에서는 도자기도 팔던데 장미 같은 이 도자기가 예뻐서 사려고 했더니 이미 팔렸다고 한다.
카페를 나와 목적지 없이 강화도를 돌다가 오리지널 빨갱이를 보러 평화전망대를 향한다. 전망대 안에는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전하는 공간이 있었는데 웃기게도 공간 바로 앞에는 천안함 북침에 대한 사진들을 잔뜩 붙여놓았다.
전망대에서 북한이 매우 멀지 않게 보였고 눈을 매섭게 뜨고 오리지널 빨갱이를 찾으려고 했으나 보이지 않는다. 안내원이 말씀하시기에 500원 넣으면 작동하는 망원경으로 보면 보인단다. 반신반의하며, 또 오리지널 빨갱이를 본다고 뭐 재미있겠나 생각하며 망원경에 돈을 넣고 북한 쪽을 바라보니 진짜 북한 사람들이 보인다. 논밭 옆을 터덕터덕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무슨 동물원에서 코끼리들이 땅콩을 코로 받아먹는 모습을 보며 흥분하는 것과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 뭔 소리냐고? 무지 재미있었다!
슬슬 돌아가려다가 강화도 짜장면이나 먹자고 강화 시내를 향한다. 근데 짜장면 집은 없기에 아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산책을 한다. 동네가 조용하다. 시내 바로 옆에 낮은 뒷산이 있어서 올라보는데 그 길 주변의 조용한 마을에 반해서 강화도에 살 궁리를 잠시 해본다.
놀 거 다 놀고 인천 친구 집에 돌아오니 자기가 좋아하는 부평 바에 가자고 한다. 피곤하다고 집에가서 쉴거라고 말해도 계속 가자고 한다. 친구를 못 이기고(나를 못 이기고,,,) 부평 바에 향한다.
바에 들어서자마자 사장님이 어 A Tribe Called Quest!! 음악 신청해봐요!라고 해주신다. 아 좋구만! Donald Fagen 노래를 신청했더니 사장님이 Donald Fagen 바이닐과 스틸리 댄의 바이닐을 꺼내면서 고르라고 하신다. 스틸리 댄이요! 좋은 곳이다. 인테리어도 좋고 술도 맛있고(사실 논 알콜 칵테일만 마셨다 ㅠ) 음악도 좋고 사장님도 좋다. 사실 알다시피 대부분의 바는 뭐 하나 나사가 빠져있기 마련이다. 보통 인테리어들은 다 좋으나 술이 맛이 없거나 사장님이 짜치거나 음악이 짜치거나 뭐 하나 짜친다. 근데 여긴 완벽하다! 피자도 팔길래 어떤 오븐을 쓰시냐고 물어보면서 피자에 대한 사장님의 마음가짐을 떠본다. ‘어? 우린 오븐이 없는데요?‘. 어어어??? 마음 속에서는 20개의 스트링들이 상승하는 코드를 전개한다. ‘우린 화덕 써요’. 아 됐다! 사장님의 반죽, 발효 이야기를 하다가 발효종의 이야기를 한다. 나도 신나서 발효종 키우던 이야기를 한다. 사장님은 신나서 발효종 책을 추천해준다. 나도 화답으로 좋아하는 발효종 책 이야기를 한다. 우린 행복하다!
마지막으로 바 사장님이 추천한 앨범을 넣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