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안정을 위한 글

간만에 술을 진탕 마시고 놀았다. 그것도 이틀 연속!

밤 3시에 집에 바로 잤는데 8시인가 눈이 떠진다. 간단히 요리하고 청소 후에 코딩을 하려했는데 도무지 마음이 진정이 안 된다. 노쇠하고 있는 몸과 정신이 주책 맞게도 더 놀고 싶다고 아우성거린다. 모른 척 코딩을 하려 했으나 도무지 코딩이 되지 않는다.

도파민을 빼려고 클래식을 튼다. 어제 친구랑 산책 나갔다가 길에 설치된 야외 피아노를 만났었는데 난 피아노를 치지 않았고 친구만 피아노를 쳤었다. 친구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나도 뭐 쳐볼까 생각을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곡이다.

아쉽게도 도파민을 빠지지 않는다. 크게 두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이 곡을 들으면서 당연히 쇼팽의 24 프렐류드 다 듣게 되는데 이 프렐류드가 그렇게 도파민을 빼는데 적절하지 않다. 두번째로 더 큰 문제는 이 곡을 연주한 수많은 연주자 중에서 마르타 아르헤리치를 선택해서 들었다는 점이다. 스포티파이에 op.28을 검색하면 마우리치니 폴리니가 연주한 곡이 먼저 뜨고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연주한 곡은 애써서 그녀의 이름을 붙여가며 검색을 해야지만 뜨는데 그 수고를 들어가며 그녀가 연주한 곡을 들었다. 왜 이게 문제냐고? 왜 24 프렐류드의 다른 곡을 듣는 것과 마르타 아르헤리치를 애써 찾아서 듣는게 문제냐고? 아래의 두 연주를 비교해서 들어보면 알게된다.

도파민을 뺄 의지가 없다는 것이 느껴지는가?

이러면 안 된다 싶어서 다른 클래식을 듣으려고 시도해본다. 차분하고 정교한 바흐의 인벤션이 어떨까? 유튜브에 인벤션을 검색해서 제일 먼저 나오는 영상을 틀어본다.

첫 5초 간 마음이 진정되며 아 이거지,,, 이게 평화지라고 생각했는데 마음의 평화는 남은 1분의 연주 동안 다 망가져버리고 만다. 정말 완벽한 연주는 무서울 정도로 아름답다. 아까의 표현처럼 차분한 연주지만 그 연주가 완벽할 정도로 정확하면 아름다움이 폭발해버린다(공대식으로 말하자면,,,, x -> +0 일 떄, 1/x의 극한값이 양의 무한대인 것처럼).

어째 도파민을 빼겠다는 내 의지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 전날 비틀즈 이야기가 잠시 나왔어서 차분한 비틀즈의 곡을 틀어본다.

따뜻하면서 아름다운 곡이다. 문제는 주책맞은 내 마음은 이 곡에서도 흥분되는 요소를 뽑아낸다. 보컬 뒤에서 흘러나오는 코러스의 소리가 너무나도 아름답다. 더 들어야한다.

코드 진행이 정말 기가 찬 곡이다. 비음악인에게 코드 진행을 설명하는 것은 까다롭기 때문에 보컬 뒤에 깔리는 코러스의 악기의 코드 진행을 유심히 들으며 아름다움을 느껴보자.

주의해서 들으면 좋은 부분은 바로 첫 4초에 나오는 B플랫 코드, 9초에서 나오는 1, 2, 3, 4, 1, 2, 3, 4 다이토닉이 반복해서 진행하는 평이한 코드 뒤에 21초 지점에서 나오는 F#m 코드, 그리고 55초에 B플랫로의 키 모듈레이션인데 뭔소리 하는 지 모르겠다면 해당 구간을 유심히 듣기만 해도 느낄 수 있으니 잘 들어보자.

놀라운 정도로 아름다운 코드 진행인데 나 같은 경우 매우 어릴 때부터 비틀즈를 듣고 살다보니 이 코드 진행들이 특별히 대단하다고 느끼지 못 했는데 나이를 먹으며 이런 저런 노래를 많이 듣다보니 이 코드 진행들이 정말 특별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음악에서 오는 생각과 기쁨은 멈추 지 않는다.

갑자기 의문이 든다. 분명 비틀즈는 대중 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밴드인데 왜 이 곡 혹은 비틀즈의 다른 곡들과 유사한 곡들이 떠오르지 않지? 이상한 일이다.

Sun King 같은 곡을 들어보자. 곡이 평이 하다가 말을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유심히 들으면 전혀 평이하지 않다. 첫 풀벌레 소리도 인상적이지만 40초에 나오는 기타톤의 공간감과 색깔은 차분한 진행에 기묘함을 불어넣고 뒤에 코러스 성부의 역할이 바뀔 때 오는 고양감은 그 자체로 극적이면서 비틀즈 마지막 앨범다운 완성도를 보여준다. 더 재미있는건 분명 어딘가 들어봤을까 싶은 소리들이지만 이 곡과 유사한 곡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I Am the Walrus를 들어보라. 처음 나오는 전자피아노(Hohner Pianet이라는 전자피아노다)의 괴상한 불협화음부터 곡이 제정신으로 진행되지 않을 거라고 강하게 선언한 다음에 나오는 괴상한 코드 전개, 그리고 온갖 괴상한 이펙트를 건 존 레논의 보컬(아마 플랜저, 새츄레이션, 디스토션, 하이패스 필터 쯤 걸린 듯하다), 거기에 계속해서 진행되는 괴상한 코드 진행과 전조, 그리고 소리 샘플들, 말도 안 되는 가사, 2분에 울리는 자명종 소리와 라디오 소리, 그리고 더 점점 더 추가되는 괴상한 소리 샘플들, 코드 전개와 전조, 글리산도와 수많은 소리들에서 오는 불협화음,,, 마지막에는 올라가는 바이올린과 내려가는 첼로 소리, 터져나오는 보컬 샘플들,,, 이게 도대체 뭔가 싶다.

이 노래의 괴상한 코드 진행에 대해서 소개할 엄두도 안 나기에 Brad Mehldau가 소개해주는 영상을 대신 첨부한다. 코드 진행에 관심 없어도 3분 18초부터 시작되는 Brad Melhdau의 연주를 들어보자. 장난없다.

어릴 때 이 곡이 정말 싫었었다. 그래서 Love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에 좀 더 가볍게 정제된 버전을 듣고는 했다. 근데 언제부턴가는 Magical Mystery Tour 앨범에 원래 곡을 듣게 됐다. 이 노래를 들을 때는 얼굴이 자동으로 찌푸려지는데 듣기 짜증나서가 아니라 터무니 없이 말도 안 되는 천재성에 짓눌리는 느낌을 받다보니 온몸이 경직되면서 얼굴도 찌푸려진다.

이쯤오니 비틀즈 관련 연재 글을 써볼까 하다가 세상에 그런 글들이 많기도 하고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 것 같아서 하지 않기로 한다.

마음을 진정시키겠다는 원래 목적을 어느새 망가하고 말았다. 이제 어쩌지,,,,

노래를 바꿔본다. 최근 Steve Spacek가 낸 앨범을 듣는다.

처음 시작 4초까지만 해도 무슨 또 괴상한 전자음악인가 싶지만 괴상한 소리들이 비트가 되더니 어떤 비트든 소리든 리듬이든 휘어잡아버리는 Q-Tip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매우 참신하면서 새련된 음악이 되어버린다.

같은 싱글에 포한된 다른 곡에 참여한 음악가들을 보라. 이제 나이가 좀 있는 대단한 뮤지션들의 총집합이다. 나이든 뮤지션들은 전성기 그 시절의 사운드를 지키는 소리 보존가들이라는 생각을 은연 중에 했었는데 그 생각이 산산조각 났다. 소리가 말도 안 되게 새끈하다!

이 곡 이후로도 음악 여정이 끝없이 있었는데 도무지 견디기 어려워서 이렇게 글을 써서 도파민을 흘려보낸다. 이런 류의 글 별로 쓰고 싶지는 않았는데,,, 어쩔 수 없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