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edium is the message

일주일 전에 대구에서 수원 올라가는 기차에서 든 생각이다. 대구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를 뵈러 갔다가 돌아오는 무궁화 기차였다. 그날 할머니 할아버지는 밭에 일하러 나가셨고 나도 따라가고 싶었으나 월요일까지 끝내야하는 일이 있어서 먼저 올라가게 되었다. 점심 조금 전 주말 열차다 보니 사람은 적당히 있었다. 옆 사람은 내가 타기 전부터 타고 있었고 처음보는 레노버 태블릿으로 미드 같은 것을 보고 있었다. 강제 디지털 디톡스 이후로 노트북을 연구실 이외의 공간에서 잘 안 만지게 되었고, 휴대폰 또한 저 만디를 건너셨는지라 그냥 조용히 스위치로 젤다를 하고 있었다. 훌륭한 게임을 열중하며 즐기던 도중 갑자기 무언가 친숙하고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내 시선 옆 기차 밖 풍경이 마치 대형 디스플레이 속에서 명멸하는 영상처럼 느껴졌다. 기차의 창문들이 그때 내가 시선을 집중하고 있던 스위치의 디스플레이 같았다. 순간 내 주변의 모든 창들이 다 가상의 세계를 빛내고 있다고 느껴졌고 잠시 동안 이상한 우주선에 탄 듯 당황스러웠다. 물론 시선을 창 밖으로 돌렸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간 이후이다. 그때 왜 그런 기분을 느꼈을까? 가장 먼저 생각나는건 그때의 빛이 보통의 주광 보다도 훨씬 밝았다. 그 색이 마치 형광등에서 나오는 빛 같았다. 또 그때 내가 헤드폰을 끼고 있었다. 헤드폰으로 젤다의 소리를 듣고 있다보니 왜 내 옆에 공간들이 그렇게 빠르게 스쳐지나갈 수 있는지 이해를 못 한 것 같았다. 평소에도 기차 창 밖의 공간의 소리는 들을 수 없기는 하지만 기차의 소리는 들을 수 있었고, 그 기차 소리는 창 밖의 빛들이 그렇게 빠르게 지나갈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내가 젤다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요즘 젤다의 세계 속에 진짜 빠진 듯이 있었고 평소에도 길을 걷다가 건물 위를 올라타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고 살다보니 충분히 현실과 가상을 혼동할 수 있는 것 같다. 어쨌건 그런 느낌을 받았고 순간 당황했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돌리니 열차 통로로 난 문의 창에 비친 창 밖의 풍경이 보였다. 간단히 말해 거울처럼 창밖의 풍경을 반사해서 내 눈을 비추고 있었다. 별 일이 아니었지만 당황스러웠고, 내 눈 사방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빛들이 어떤 것들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이퍼 리얼리티니 시뮬라크르니 그런 개념들이 잠시 떠오르긴 했지만 별로 그런 개념들과 연관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내머릿속에떠올랐던건열차타기전날대구시내의빛들이었다. 사촌 태훈이랑 같이 북성로의 연탄 불고기 집에 갔었다. 북성로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었는데 걷는 길에 매우 신기한 공간들을 많이 보았다. 북성로를 가는 직선길 양 옆으로 70~80년대 지은 건물들이 여전히 있었고,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근데 역시 나의 힙스터 근성은 틀리지 않았는지 가는 길 중간중간에 리얼 힙한 카페, 바, 편집샵 등이 나타났다. 각 상점들의 규모도 꽤 컸으며, 그 외견이나 내부 인테리어는 흠잡을 부분이 없이 힙했다. 시간대가 안 맞았는지 힙스터들을 길목에서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정말 힙 그 자체이다. 특징적인 부분은 서울의 힙한 지역들이 보통 군집을 이루고 일대를 장악하는 것과 달리 조금 듬성듬성 힙한 상점들이 있고 그 사이에는 그 일대를 예전부터 지키던 여러 공장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사실 서울의 대부분 힙한 공간은 대부분 돈으로 치환되는 공간이고, 돈이 모이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일대를 힙하게 장악하고, 인스타의 도움으로 사람들의 눈알에 빛을 쑤셔 넣고 끌여들여 돈을 버는 공간이라고 느껴왔다. 하지만 여긴 딱히 돈 벌기 위해 있다는 느낌을 좀 덜 받았다. 마치 조금 돈 있는 힙스터가 취미로 연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이 공간이 좀 더 진실해서 마음에 든다느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 공간들은 마치 서울의 빛을 그대로 옮겨오려고 애쓴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에 대해 조금 더 차차 적어나갈 것이다. 어쨌건 그 골목을 지나 북성로에 도착했고 나는 두번 놀라게 되었다. 북성로는 분명 시내에서 25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고 되게 낡고 후미진 고기집들만 있었지만 그 안에는 20대들이 정말 바글바글하였다. 그냥 20대도 아니었다. 아마 그 골목에 있는 150 여명의 손님들의 평균 나이가 25가 안 될 것이다. 아 역시 나는 힙한 인간이었던 것인가…. 

술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는 더더욱 놀라웠다. 시내를 관통해가면서 이런 저런 골목들을 관찰했었는데 클럽 골목이야 그냥 저냥 클럽이었지만 다른 하우스 맥주 집이라던지, 카페, 바들은 정말 서울의 빛 그 자체였다. 진짜 너무 정확하게 서울에서 보던 그 빛을 보았다. 처음에는 조금 웃겼다. 왜 이런거지? 왜 그러는거지? 하지만 이내 놀라고 말았다. 분명 대구의 시내는 서울의 빛을 반사하고 있었지만 이 빛의 근원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대구에서발견했던빛의전파양태는고전적인전파양태와는전혀달랐다. 과거에 어떤 음식점이 맛있다는 명성이 생기고 사람들이 모이는 일에는 꽤 시간이 들고 다양한 전파 경로가 존재하였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 4차 산업의 시대! 정보의 홍수 시대! 아니겠는가…. 모든 것이 빠르게 전파되고 순식간에 반응한다. 정보는 정말 order of magnitude 단위로 증가하고 있고 정말 눈 앞에 별천지가 펼쳐져있다. 그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반응은 꽤나 즉각적이다. 가장 빛나는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빛을 반사하며 자신 또한 빛나간다. 그렇게 빛은 반사되고 또 반사되고 무한히 반사된다. 그렇게 빛이 무한히 반사되다보면 빛은 정말 여기저기 흘러넘쳐나게 된다. 그리고 모두가 쉽게 빛날 수 있게 된다.(쉽다에 부정적 의미를 담지 않는다) 

지금 내가 바라보는 세계는 이런 모습이다. 정말 94년도에 금성무가 통조림 유통기한 타령하고, 양조위가 샐러드 바꾸는 타령하던 시대와도 확연히 달라졌다. 빛은 이제 정말로 무한히 사람들의 눈 앞에서 명멸하고 있다. 근데 유심히 바라보고 싶은 부분은 이 빛의 궤적이 전혀 랜덤하지 않다는 것이다. 빛은 티비, 신문, sns, 유튜브, 인터넷 커뮤티티를 통해 퍼져나간다. 거대한 그 경로들. 사실 지금 저기서 말한 매체들은 이제 모두 인터넷을 통해서 전파된다. 다시 생각해보면 저 빛의 궤적을 확인하려면 한국의 백본망을 보면 된다. 각 도시의 백본망이 초당 몇비트를 송수신 하는지 확인해보고, 각 도시 간 백본망이 어떻게 이어져있는지 보면 빛이 어떻게 반사되어가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조금 나아가서는 국외 광케이블을 확인해보면 전 지구적으로 어떻게 빛이 전파되는지 훤히 보인다. 

The medium is the message. 이 빛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생각해보면 조금 무서울 때가 있다. 지속해서 이 빛을 받다보면 감각은 이 빛을 학습한다. 그리고 매번 받는 그 거대한 빛에만 반응하고 다른 빛을 받아들이지 못 한다. 이 빛은 절대 단조롭지 않다. a, a’, a’’, a’’’,,,,, 이런 식으로 변주를 해가며 그 무한한 크기로 계속해서 쏟어져나온다. 너무 크고 빛나고 또 아름답지만 그 빛을 받다보면 이제 그 빛에 대해서만 조건 반사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반전 영화는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약속된 방식으로 주어지는 복선을 찾아내고 반전에 반응하게 된다. 요즘 유행하는 한국 영화처럼 르상티망이 가득한 상태로 악한 기득권이 처단될 때를 기다리고 이에 희열을 느낀다. 전체 맥락이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저 익숙하게 학습한 자극에 반응하게 된다. 

어릴 적 학교에서 소풍을 갈 때 다른 친구들의 김밥을 맛보는게 정말로 즐거웠었다. 모두가 비슷한 재료를 써서 비슷한 방법으로 김밥을 만드지만 각 집마다 그 맛을 정말로 달랐고 매번 먹을 때마다 다른 그 맛을 느낄 때 정말 맛있다고 생각했다.

(아 그리고 놀랐던게 갑자기 제트 블랙이 생각나서 검색했는데 카우보이 비밥은 안 나오고 아이폰 7 신 색상만 뜬다… 정말 빠르게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