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이발관 - 가장 보통의 존재)
오늘은 친구 집에서 아침에 눈을 떴는데 도대체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전날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왜??? 침대로 들어가는 나약한 존재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가위에 눌린 듯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40분 동안 친구를 옆에 두고 혼자 고민을 한다. 그냥 아 왜 몸이 안 움직이지? 왜? 왜? 왜? 이런 식으로 혼자 상황을 잘 인식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불현듯 깨닫는다. 아 몸이 힘들어서 안 움직이는거구나! 내가 금토일 에어하우스에서 신나게 춤추고 갈 때 올 때 차 몰고, 일요일에 서울 돌아와서는 또 친구를 만나 레인부츠를 신고 연남 홍대 상수 합정을 방황하다가 술 먹고 또 방황하다가 친구집에서 4시 가까이에서야 잠을 자고 돌아왔구나. 이제 생각하면 당연히 몸이 힘든게 맞는데 오늘 아침에는 그냥 몸이 안 움직인다는 생각만 도돌이표로 반복하고 있던 것이었다. 사실 몸이 힘들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 하고 있었다. 아니 친구가 말한 것처럼 디나이얼이었던 것 같다. 나는 언제나 체력이 주변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기에 당연 몸이 힘들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항상 저런 식으로 자기 몸 학대해놓고 ‘내 몸아 너 왜그럼?’이라고 혼자 생각하는 미친놈은 아니다(주변 사람들은 내가 그럴 거라고 생각할 것 같기도 하다). 분명 아 뭐해서 힘들다 저래서 힘들다는 것을 알기도 하지만 상당 수의 경우 그냥 아 뭔가 좀 이상한데 하고 지나쳤던 것 같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면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주입 받은 정신일도 하사불성의 마인드셋이 육체적, 정신적 나약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어릴 적부터 아빠는 거의 빈틈을 보이지 않으며 업무를 수행해오셨지만 집에서는 그런 티를 절대 내지 않으셨고, 그렇게 힘들게 일하셨으면서도 주말에는 항상 어디 산이건 관광지건 놀러가시고는 했다. 그리고 항상 그런 강한 정신력의 중요성을 강조해오셨다. 그 덕에 나 또한 그런 정신일도 하사불성의 마인드를 나도 모르게 장착하고 있었고, 이게 꼬일대로 꼬여서 내가 힘들다는 사실을 마저도 인지 못하거나 부정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그러니 정병과 불안에 대해서도 그렇게 오랫동안 고통받아 놓고는 이제야 아 내가 힘들었구나, 내가 아프구나 타령하지 않는가?
항상 그런 식이다. 뭐든 기합! 정신력! 근성!만 있으면 되는거고 여기에 집착하다보니 내가 힘들거나 힘들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코로나가 유행할 때 다들 아프니 뭐니 하지만 난 아플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물론 코로나 걸렸을 때 그렇게 아프진 않았다). 밤새 놀고 술 마셔도 난 다음 날 멀쩡하게 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남들이 힘들다고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야! 밤새 놀자? 힘들다고? 아니 힘들어도 가면 꿀잼임! 에너지 터져나갈거임! 아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니까? 이런 식으로 남들을 괴롭히고는 한다. 이게 이런 식이니 남들이 일을 하거나 놀거나 정신적으로 힘든 일들을 하고 휴식을 취할 때 나는 휴식의 필요성 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휴식을 안 하고 뭐 대단하게 일을 하거나 취미를 즐기는 것도 아니다. 그냥 무기력하게 침대에 엎어져 음악만 듣고 앉았다.
잠도 그렇다. 잠을 적게 자려고 하면 적게 잘 수 있기에 4시간, 적게는 2~3시간 만 자면서 일상을 영위한다. 사실 4시간 이상 안 자면 안 되지만 근성만 있으면 일상과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고는 하루 내내 고생하고, 그 고통을 부정하고 다시 밤 늦게 잠을 자면서 피아노를 치고는 한다.
일에 대해서도 그렇다. 항상 나는 어떤 일이건 해낼 수 있는 사람이고 타인에게도 그런 사람이어야했다. 그러니 누가 뭔가 이거 할 수 있을까? 하면 아 당연 가능이죠^^ 이러고는 일을 맡고 고통 받고, 이루어내지 못 했을 때 내 정신력만을 탓한다.
사랑에 대해서도 그렇다. 정말 나약한 인간이지만 마치 영원한 사랑을 할 능력이 있는 사람인 양 행동하고 그렇지 않은 내 모습을 부정하거나 상대방에게 숨긴다. 그러고 나 자신을 내가 표방하는 역할에 맞추어 움직이면서 고통을 받지만 그것을 그냥 부정하고 혼자 고통을 받는다. 상대는 내가 고통 받는다는 사실을 잘 인지 못하고 그냥 나에게서 변한 모습에 실망을 하고는 불만을 표출하거나 대화를 시도하지만 나는 또 그 순간에 내 고통을 숨겨버린다.
친구에 대해서도 그렇다. 상대가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하더라도 그걸 정확하게 인식하지 않고 그냥 상대를 피하고는 한다. 혹은 상대에게 내가 내세우던 이미지가 망가진다 싶으면 나약한 내 자신을 부정하고는 관계를 회피해버린다.
결국 내가 부정하던 고통들은 점점 삶을 살아가면서 축적되기만 하고 쌓인 고통에 대한 이자로 두려움 마저 생겨버린다. 이 지경에 오니 일상을 영위할 때 항상 불안에 가득 차 있고 뭘 하려고 하지도 않고 하더라도 그냥 도망쳐 버린다. 그래놓고는 나 혼자 두려움과 불안에 짓눌려 내가 저질러버린 일들을 최대한 모른 척 하려고 애쓴다. 내가 느끼는 고통은 내가 가장 잘 알 가능성이 높지만 그 고통을 부정하고 괜찮은 척 해대면 내 주변 사람들은 그걸 어찌 알 것인가? 내가 연락을 피해오는 내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내던져버린 내 인생에게 미안하다. 조금 더 나를 편안하고 진실되게 바라보고 싶고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돌고 싶다. 그리고 나를 소중히 생각해주는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