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 첫 학기는 정말로 공허했다. 파란색이 아닌 초록색으로 물든 교정 속 내 모습은 고교 시절 상상도 하지 못 했던 생활이었고, 불편한 나의 모습이었다. 외롭기 싫어 어울리려고 노력했지만, 마음 한구석, 파란색이 아니라, 그냥 결여된 나의 모습이 몸을 무겁게했다. 그렇지만 무언가를 더 꿈꾸지도 않았다. 카우보이 비밥이나 보면서 life is just the dream을 외치며 나의 조그마한 하숙방에서 쉬었다. 혹은 걸었다.
나의 1학년 생활은 공허와 도피였다. 끝없이 쏟아지는 대학 생활의 자극들은 나의 몸에서 그 힘을 가지지 못했다. 영화를 보아도, 음악을 들어도, 책을 읽어도 그 공허를 채울 수 없었다. 더 이상 보려고 하지 않았기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 외롭게 있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과 달리 그렇게 혼자 있지도 못하는 사람인지라 몸의 밖은 수축하면서도 그 안쪽은 팽창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걸었다. 밤에 나 자신이 사라질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걸었다. 당연히 목적지는 없었다. 운 좋게도 싫어하는 나의 학교는 서울 한복판에 있었기에 조금만 걸어도 수많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낙산, 창신동, 성북동, 한성대, 성신여대, 청계천, 정릉, 미아삼거리, 쌍문, 도봉, 군자, 강변 뭐 적기도 귀찮다. 그냥 다 걸었다. 1주일에 3일 이상은 그냥 나갔던 것 같다. 크게 생각을 많이 했는 것 같지는 않다. 생각을 많이 했을 지도 모르지만, 걸을 때의 생각은 발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만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거리를, 가정집의 불이 꺼져있는 골목을, 낮에는 붐비던 큰 길을 걸었다. 하고 싶었던 것은 없었다. 답답했던 것 같다. 작아져가는 나의 세계가 너무 무서웠던 것 같다. 점점 내가 살아야 할 세계는 커져만 가는데 나는 그것을 똑바로 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앞으로 이런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싫었고, 더 고민하기도 싫었다. 그래서 그냥 걸었다.
그렇게 많이 걷다보니 내가 다녀본 곳은 정말로 많았고,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코스도 몇 곳 있다. 오늘 쓰고 싶은 곳은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공간이기도 한 금화시범아파트이다. 처음 이곳을 온 것은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보는 기간이었다. 고향의 고등학교 친구가 시험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놀러 왔고, 다음날 시험이었던, 셤 공부는 안 했지만 술도 마시지 않고 나는 새벽 3시까지 그냥 같이 떠들다가 같이 자고 다음날 12시에 시험을 치러갔다. 시험이 언제 끝날 지 모르니 친구한테 먼저 놀고 있으면 그곳으로 가겠다고 했고, 친구도 그냥 혼자 돌아다니는 곳을 좋았했었는지 별 목적없이 혼자 서울을 걸어다녔었다. 시험을 끝나고 연락하니 서울역사문화박물관에 있다고 했고, 그리로 찾아갔다. 도착 후 다시 연락하니 아직 관람 중이라고 했고, 나도 왔는 김에 빨리 둘러보고 가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박물관 속 많은 자료들은 내가 그전에 걸어가봤던 곳들의 과거를 보여주고 있었고, 내가 가진 서울에 과거의 시간을 더하는 일은 정말로 즐거웠었다. 결국 빨리 가기는 커녕 친구가 전시 도중 어디냐고 전화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박물관에 더 있고 싶었기에 친구를 보내버렸다. 그 이후로 서울역사문화박물관은 한번 더 가본 것이 다이지만 언제나 생각만해도 즐거운 공간이다. 박물관에서 나온 후 서울시립미술관을 갔었고, 그리고 독립문이 있는 큰 길로 향했다. 이틀 후에 시험이 더 있었지만, 시험은 크게 관심이 없었고, 그냥 다시 걸었다. 지금은 없어진 고가도로 옆을 걸으면서 아까 박물관에서 배운 역사를 복습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현을 지나가게 되었고, 그냥 언덕을 오르고 싶었기에 북아현 언덕을 걸어올라갔다. 이곳은 정말 내가 상상해오던 옛 서울 모습 그대로였다. 고등학생 때 허세로 읽은 칼 폴라니의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덕에 지역 공동체에 대한 환상이 가득했고, 문학 속, 기사 속, 사진 속에 담긴 그 옛 골목 커뮤니티에 대한 동경이 가득했었다. 그렇기에 아현을 올라가는 길은 정말 짜릿했다. 계획없이 되는대로 만든 구불구불한 소방도로들, 질서없이 마구잡이로 지어진 집들의 형태나 높낮이나 방향들, 다양한 시대의 건축 재료들은 관념 속에 있었던 생기 넘치는 서울 그 자체였다. 시간이 아직 5시가 조금 넘었던 지라, 골목에는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휙휙 지나가고 있었고, 구멍가게들이 여전히 골목에 존재하고 있었다. 저녁 재료를 사들고 언덕을 오르는 아주머니들, 한가하게 정자에서 수다를 떠시는 어르신들, 런닝 차림으로 담배를 피며 전화를 하는 아저씨들을 보면서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즐겁게 걸어올라가다 보니 벌써 언덕 끝에 이르렀고, 그곳에는 아까 박물관에서 봤던 금화시범아파트가 서있었다. 참으로 신기했던 순간이었다. 언덕을 오르면서 시간을 거스르고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 종착점이 정말 역사가 되어버린 공간으로 이르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당연 박물관에서 본 역사이다. 고대의 유적을 발견했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흥분한 마음을 추스릴 수 없었고 그 누구든 좋으니 이 감정을 나누고 싶었다. 때마침 아파트 앞으로 어르신 두분이 걸어오고 계셨고, 나는 대뜸 “안녕하세요, 혹시 저 아파트가 그 김현옥 시장이 만든 시범아파트에요?’라고 말하며 아는 채 했다. 역시 아저씨는 옛 이야기에 관심 많은 학생을 좋아하셨고, 아저씨는 나에게 오천원을 쥐어주시며 저 앞 슈퍼에서 맥주를 사오라고 하셨다. 그렇게 맥주를 사들고 시범 아파트 단지 내의 정자에서 술을 마셨다. 이른 시간부터 막차 시간까지 마셨으니 꽤나 오랜 시간 술을 마셨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 한 분의 따님은 우리 학교 교수라고 하셨는데 뭐 중요한 건 아니고 긴 시간 꽤나 재미있게 이야기했다. 한번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생각만 해도 몸 한 가운데를 찌르는 기억이다.
이후 근처를 지나다보면 한번씩 시범 아파트를 들렀고 작년 3월이 아마 마지막으로 시범아파트에 들렀던 때이다. 작년 3월에는 이미 공간은 폐쇄되어 있었고, 언제 철거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철거된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이번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범아파트를 들렀다. 역시나 시범아파트는 철거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피를 했던 순간들이지만, 마음 속에서 언제나 빛나던 순간들이다. 내껀데 사랑해줘야지. 과거를 바라보며 살 수는 없지만 나의 밖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은 언제나 두렵다.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할 것이고, 아마 내가 세상에 나갔을 때는 더 이상 과거의 인간성을 가지고 살 수 없을 것이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간성을 벗어던지고 끊임없이 새로운 존재가 되는 그 어지러운 과정에서 나의 세계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그런데 나의 세계 속 존재했던 그 공간들이 이렇게 사라진다면 나는 무엇을 가지고 살아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