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만 x 대중 = 돈

오랜만에 동방에 갔다가 후배들이 울프오브월스트릿을 보고 있길래 같이 봤다. 예전에 한번 봤었고, 플레이타임도 매우 길지만 정말 재미있게 봤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영화가 젠더 감수성은 떨어지지만 주구장창 맛탱이가 간 장면들을 쏟아내는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근데 문제는 후배 두분이 여자이다 보니까 두분에게 나의 웃음이 소위 말하는 폭력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걱정된다. 헛소리 하자는게 아니라 그 중 한분이 흔히 말하는 “여성주의”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보니 모든 행동행동 하나가 신경 쓰인다. 앞에 후배도 여후배라고 쓰면 안 될 것 같아서 후배라고 썼다. 이렇게 쓰고 보니까 헛소리 맞다. 헛소리를 계속 하자면 내가 “여성주의”를 볼 때 가장 두려운 것은 대화 불가능성이다. 소통은 정말로 힘든 문제이니 제껴두자. 하지만 대화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 문제이다. 그냥 서로 대화 프로토콜은 지키고 의무교육에서 배운 논리를 따르는 척만 해도 대화는 된다. 이건 맨날 사람들이 말하는 원자적 인간이니 고립이니 하는거랑 관계가 없는 프로토콜의 문제이다. 그냥 주장을 하고 논리적 반박이 오면 반박을 하고, 재반박하던지 인정을 하던지 하면 된다. 인정하기 싫을 수는 있지만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 보다는 쉬운 문제다. “여성주의” 와 소통하겠다는 꿈은 버린 지 오래이다. 그냥 표면적이라도 좋으니 대화의 프로토콜이 지켜졌으면 좋겠다. 서로 인신공격하지 않고, 각자의 주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척 좀 하고, 내가 틀렸으면 인정하고, 타인의 의견에 귀 정도는 기울이고 뭐 그런 것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여성주의를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원한이랄까? 한이랄까? 그런 감정을 느낄 때가 많다. 이해하지는 못 하겠지만 무시할 수 없는 그 상대방의 강한 감정을 느낄 때면 내가 서 있는 지점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남성이고, 확실히 차별적 혜택은 받아왔다. 하지만 확실히 나는 차별적 행위를 하지 않았고 동등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나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기에 그 상대방을 감정을 느낄 때면 난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면 끝없는…. 이런 식의 논쟁은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소통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되지만, 되지도 않을 소통을 위해서 이런 식으로 말싸움을 할 필요는 없다. 결국 대화의 프로토콜을 지켜야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분노는 실제적 행동을 보고 난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후배 앞에서 웃은 것도 그렇다. 내 웃음의 의미는 어쩌면 나만 알 수 있는 문제이다. 더 쓰면 피해망상인 것 같다. 피해망상은 맞는데 딱히 적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다시 말하지만 이건 피해망상이고 그 특정 여후배와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이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감독이든 배우든 다 미친 것 같다. 시종일관 정신 없는 짓들만 행하고 있는데 보는 내내 황당해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만하는 그 웃음에 웃음이 나왔다. 주제는 대충 이런 것 같다. 월스트릿 부자들을 돈의 욕망에 찌든 정신병자들이다? 뭐 그런 것 같다. 좀 더 이야기하면 정상성의 기준인 상류층이 사실 정상이 아니다? 뭐 그런 정도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이 주제 하에서 영화를 어떻게 팔 것인가? 정말 저렴하게 파셨다. 우리가 좋아하는 비싸고 ‘멋진’것들로 가득찬 주인공의 삶을 보여주면서 우리의 마음을 뛰게 하는 동시에 주인공의 웃긴 정신병자짓을 보여주면 된다. 또다른 형태의 원한, 르상티망 그 자체이다. 대중 영화답게 대중을 살만한 영화를 만들어야하고 그 방법은 대중들이 원하는 장면들을 보여주면 된다. 쟤들은 나쁜 방법으로 돈 벌었을꺼야! 부자들은 다 개새끼야! 쟤들은 우리를 착취해! 쟤들은 인성이 나빠! 그래서 친구도 없을꺼야! 우리 모두가 바라는 부자들의 모습이다. 그래야지만 우리의 삶은 부자들의 삶에 비해 훌륭해진다. 감독은 우리의 이런 원한을 자극하고 돈을 번 것이다. 마지막에 잠시 지하철 장면에서 보통의 서민의 모습을 보여주는 척 하는데 이것만큼 기만이 어디있겠는가? 감독 본인이 잘 알 것이다. 우리는 부자들이 병신같은 모습을 보며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지만, 영화를 가득 채우는 그 돈과 물질들에 현혹된다. 이 돈을 시기하고 그 돈을 질투하기에 그들이 나빠야만 한다. 우리가 타자로 구분 짓고 비난했던 그 부자들의 욕망은 우리도 지니고 있는 것이기 우리는 그들을 미워하는 것이다. 감독은 이 모든 것을 분명히 알고 영화를 만들었다. 그래 놓고는 마지막에 불쌍한 우리 서민이라니? 황당하기 그지 없다. 

요즘 접한 대중 문화 상품들의 코드는 기만인 것 같다. 학교 축제에 일리어네어라는 힙합 그룹이 왔길래 구경했는데 가사가 이상했다. Bitch check my profile, i’m perfect but you’re not부터 시작해서 뭐 난 돈 존나 많아 니들 병신 뭐 그런 가사들 밖에 없었다. 일단 앞의 가사는 내가 보기에는 최근 강남역 사건보다 더 무서운 가사인 것 같다… 이런 가사에 열광하고 따라 부르고 돈을 써대는 팬들을 보는 기분이 어떨까? 자기들도 이상하게 느끼는지 공연 도중에 ‘이 다음 노래는 너무 자뻑이 심한 노래인데 ㅋㅋㅋ’하고는 노래를 부른다. 기만이라고 하기에도 웃긴다. 그냥 자발적으로 기만을 당하려고 환장했는데… 또다른 예시는 데드풀이었다. 시종일관 폭력, 섹스 등등의 자극적인 장면을 마구잡이로 보여주며 ‘니들은 이런 거 좋아하자나? 뭐고 자시고 존나게 보여줄게! 깔깔대며 돈이나 내라’라고 끊임없이 외치는 영화였다.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사랑은 짱짱인거 알지라고 외쳐주며 훈훈하게 끝내준다. 이렇게만 보면 사랑으로 끝나는 영화를 비꼬는 건가 싶을 정도지만 영화 내에서는 사랑에 대해 꽤 진지했던 것 같다. 즐겁기 보다는 끔찍했다. 진짜 돼지 새끼가 된 기분이었다. 요즘 아이돌이고 자시고 다 이런 식이다. 존나 우리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눈이랑 귀에 쑤셔넣어 버린다. 푸시 알림으로 바이브레이팅도 해준다.

기만 당하는 건 기분 나쁘다. 나를, 그리고 남을 기만하기 보다는 진지하게 감동시키는 작품이 좋다. 그런 의미로 진지하다고 느낀 음악 넣으며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