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스튜디오

 3주 전쯤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새벽 4시 반인가 그랬는데 아마 이 시간에 전화를 했을 때는 여느 때처럼 만취일 것이다. 친구는 술 취하면 여느 주쟁뱅이처럼 했던 말 반복하고 사람 말 안 듣고 헛소리하고 툭하면 울기도 하지만 알콜 농도가 짙어지는 어느 순간에 주정뱅이에서 현자가 된다. 현자는 주정뱅이와 다르게 일렁이는 날카로운 눈을 가지고 나를 찌르는 말들을 한다. 아마 알콜을 먹으면 평소에 이미지로 보던 것들이 언어로 번역되나보다. 주정뱅이든 현자든 술 취한 친구랑 새벽에 통화하는건 피곤하지만 그래도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전화를 받는다(항상 인생에서 이럴 때마다 피곤해졌다). 전화 너머 친구는 역시나 술에 취해 이런저런 지랄과 말들을 떠든다. 여러 이야기를 하다보니 2시간이 넘게 흘렀고 친구의 정신에 현자가 강림하고 있는 것이 서서히 느껴진다. 그러다 친구가 뜬금없이 내 인생을 구원할 이야기를 해준다고 한다. 타인이 날 구원해줄 수 없다고 믿기에 심드렁 했지만 무슨 소리를 하는지 들어보자는 마음에 구원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말한다. 현자는 그 마음을 뻔히 알고 ‘어차피 말해도 안 들을거잖아’하고 안 말해준다. 내가 계속 졸랐고 현자는 못 이긴 척 이야기 해준다. ‘넌 세상 모든 걸 “아!”하고 받아들여야 해. “아! 그렇구나” 하지말고’. 그 말에 대가리를 한대 쳐 맞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는데 전화는 끊기고 현자는 사라져버린다.

 전화 통화 때 친구가 자기 학교에 오픈에서 오픈 스튜디오를 하니 놀러오라고 해서 이번 주말에 찾아 갔다. 오랜만에 친구를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친구가 예전에 나를 그린 그림이 보고 싶었다. 한 일년 전 쯤에 그렸던 그림인데 거의 내 키만한 100호짜리 그림이다. 처음 본 순간부터 그 그림이 좋았다. 나를 그렸다는 단순한 자기애적인 이유 좋았는가 싶다가도 다른 이유가 있는 듯 싶어 그 이유를 찾아보고 싶었다. 다른 친구랑 오픈 스튜디오에 찾아가 이것저것 구경한다. 2시간 보다가 나오려고 했는데 꽤 재미있어서 마감시간까지 구경한다. 거기 있던 작품들에 대한 감상은 블로그에 옮길 수는 없다^^. 오픈 스튜디오가 마감되고 셋이서 동태탕을 먹고 바에 간다. 나와, 함께온 친구는 차를 끌고왔기에 커피를 마셨고 작가 본인만 술을 마신다. 바에서 놀다가 함께온 친구는 다른 약속을 갔고 나와 친구는 바가 마감하는 새벽 2시, 내가 놓친 친구 동료의 작품을 봐야한다는 핑계로 학교에 돌아가서 작품들 보고 다시 나와서 드라이브 하다가 아침 7시까지 계속 쉼없이 떠들고 논다.

 같이 나눈 이야기들 중 공유하고 싶은걸 블로그에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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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친구가 그린 내 모습을 보면 새로운 것들을 느낀다. 예전에 그 그림을 볼 때 아름답다고 느끼면서도 묘한 거부감을 느낀다. 부드럽고 여린 이미지는 분명 나와 닮아있다고 느끼면서도 그 아름다움은 내 것이 아니라고 느꼈고 그림을 그린 친구에게 부담감을 느꼈다. 나는 저렇게 아름답지 않은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오른 쪽의 파란 눈이 친숙하다고 느꼈다. 이번 그림을 보니 옛 연인이 나에게 ‘넌 항상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아’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 어떤 때, 어떤 일, 어떤 것이 아니라 대상이 없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다고 한다. 아마 저 눈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혹은 주변 사람들이 말하듯이 ‘넌 솔직하지 못하지만 그걸 숨기지도 못 해’라고 말할 때 저 눈을 말하는걸까? 온전히 마주하지 못하지만 온전히 숨지도 못하는, 말하지 않지만 감추지 못하는 그 솔직함이 저 눈에 그려진걸까? 세상과 만나는 자아는 흐려지고 덧칠되고 다시 흐려지고 덧칠되기를 반복하지만 저 눈은 장장하게 기다린다. 먼 곳을 바라보느라 내 모습을 보지 못 했는데 덧그려진 얼굴에는 수많은 선과 빛들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아무 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뭐 이미지에 언어를 붙이는건 작가와 평론가와 얼뜨기들이 할 일이지 내가 할 일이 아니다. 친구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친구도 그림에 대한 내 감상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친구가 작업하는 과정을 많이 봐와서 그 대답을 알지만 그림을 그릴 때 언어적으로 의도를 생각하면서 그리는 지 물어본다. 아니라고 한다. 그냥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작가들은 정말 신기하다.

 친구에게 ‘아!’ 이야기를 해준다. 역시나 친구는 그 말을 한 기억이 없는지 그 말에 무척 놀란다. 서로 그 말에 대한 어떤 설명도 하지 않는다. 그냥 ‘아!’

 오래 떠들다보니 친구에게 괌에서 있던 일을 말해줬다. 되게 개인적인 경험이라 재미없어 할 줄 알았는데 무치 좋아하길래 블로그에도 공유한다. 부모님과 나 셋이서 괌을 갔다. 부모님은 3박 4일 간의 일정 중 2일을 골프를 치러 나가셨고 나는 아침 8시부터 12시반까지 혼자 놀아야했다. 내가 언제나 그렇듯 어디 숲을 찾아간다. 첫 날은 어디 고원과 들판을 쏘다니다 숲과 폭포를 만났고, 이야기 할 둘째날에는 산을 오른다. 첫날 물도 먹을 것도 없이 몇 시간을 걸으면서 가파른 길에서 미끄러지고 넘어지면 다친지라 좀 쉬운 길을 미리 인터넷에 검색했고 괌에서 제일 높은 람람이라는 산을 향했다. 처음에는 조금 길이 미끄럽고 톱날풀(톱날 모양의 풀인데 베이면 깊게 상처가 난다. 전날 베여서 안다…)이 거슬렸지만 길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한국식 등산로는 아니지만 인간 발길에 풀들이 죽어있고 중간 중간 트레일을 표시해주는 핑크 리본 덕에 길을 따라가기 어렵지 않다. 조금 오르다 고원에 이르렀고 조금 더 걸어 갈대 숲을 지나다보니 숲이 나온다. 숲이 정말 아름다웠고 난 숲에 매료되어 계속 숲 안의 길을 따라 걸었다. 숲의 초입에는 핑크리본이 보였으나 숲 속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핑크리본을 찾기 어려워졌고 어느 새 리본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이 다닌 듯한 길이 보이길래 게속 걷는다. 그렇게 계속 걷다보니 길을 거미줄들이 막아선다. 이리저리 피해 길을 걷다가보니 어느 새 모든 길이 빽빽한 거미줄에 막혀있다. 최대한 길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탐색하는데 이끼가 가득 낀 큰 돌을 밟으니 움직이고, 땅 위로 드러나 내 몸통보다 두꺼운 이끼낀 뿌리들이 발걸음에 부서진다. 그때서야 내가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에 들어선 걸 알게된다. 가장 최근에 핑크 리본을 본 게 30분 전이니 꽤나 크게 길을 잃었다. 폰을 꺼내니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 잠시 길을 돌아갈까 고민했지만 이야기를 듣던 친구가 ‘니가 그럴리 없지’라고 말한 것처럼  돌아가는 건 재미가 없다. 그래서 정상이 있을 법한 방향으로 향한다. 거미 줄을 헤치고(거미를 무지 무서워한다) 톱날풀을 손으로 부순다. 키보다 높은 빽빽한 갈대 숲을 헤짚고 나간다. 온 몸에 상처가 생기고 넘어지는데 목적지 향하는지도 불분명한데 갈대들을 온 힘으로 때려눕히고 있다보니 이게 맞나 싶다. 하지만 어쩌겠나 가야하는데. 이미 머릿 속은 미친듯이 앞으로 나간다는 생각 뿐이고 눈은 완전 미쳐있다. 그렇게 수없이 베이고 넘어지다보니 주머니에 있던 물이 없어졌고 잠시 아찔했지만 이내 정상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향으로 미친듯이 길을 개척한다. 무서워도, 두려워도, 의심이 되도 어쩔 수 없다. 이젠 정말 돌아갈 수 없다. 그렇게 한시간 가량을 헤맨 끝에서야 정상이 눈에 보였고 핑크리본도 보인다. 리본을 봤을 때 그 안도감이란. 정상에 올라보니 크게 대단한 것은 없었지만 그냥 큰 만족감을 느낀다. 정상의 햇빛이 눈 부셔 가져온 선글라스를 찾지만 수십번 넘어지며 어딘가에 떨어뜨려 버린 것을 깨닫는다. 아깝다…

내려가는 길은 수월했다. 내가 왜 이걸 못 봤지 싶을 정도로 핑크리본이 촘촘히 나뭇가지에 걸려있다. 그렇게 핑크리본을 따라가다 내가 길을 잃기 시작한 곳에 이르렀고 그 곳에 서서 내가 걸었던 방향을 보니 여전히 그 방향이 길로 보였다. 밝은 녹색과 청색의 빛이 빛나는 나무들 사이에는 분명 길이 보인다. 나는 남들이 걷지 않는 길을 걸으려고 한 게 아니다. 그냥 내 눈에 길로 보이는 곳을 향해 걸을 뿐이다.

내가 보는 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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