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추천으로 곤 사토시 감독의 파프리카를 보게되었다. 그냥 색깔 예쁜 애니메이션이길래 별 고민 없이 바로 봤다. 큰 기대없이 봤지만 처음부터 완전 마음에 든다. 꿈이라니, 아니 그것보다 SF이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심지어 이 영화는 공각기동대와 무척이나 닮아있다. 전뇌화도 그렇지만, 말하고 싶어하는 내용 또한 그러하다. 영화는 DC미니라는 꿈을 관찰할 수 있는 기계가 개발되고, 개발사는 이 기계를 테스트 하는 도중 기계를 도난 당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도난 이후 DC미니에 접속했던 테스터들의 꿈이 외부인에게 침투 당하기 시작한다. 이 테스터들은 악몽을 꾸게 되고, 현실과 꿈을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이로 인해 현실 세계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개발사는 계속해서 도난당한 DC미니를 찾지만,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제는 과거 DC미니를 이용해본 사용자 뿐만 아니라 뇌파 관련 의료기기를 사용한 환자들, 더 나아가 일반인들에게까지 그 문제가 확대된 것. DC미니를 악용하는 존재는 악몽을 사람들에게 주입시키고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무너진 사람들은 위험에 빠지게 된다.
뭐 언제나 그렇듯 내용을 샅샅이 분석하지는 못하니 하던 대로 재미있던 부분을 써보려고 한다. 역시나 꿈의 이야기이니 그 꿈을 보자. 영화 속 인물들의 꿈 속의 모습은 각자의 현실의 모습과 다르다. 주인공 여성은 파프리카라는 발랄하고 활기찬 소녀로, 형사는 마초 폭발 옛 영화의 남성으로, 천재 개발자는 장난감 로봇으로 꿈 속에서 존재한다. 모두가 현실에 표출되지 않는 자신이 있는 것이다. 천재 개발자의 경우 유아적 속성을 지녔기에 꿈의 모습과 큰 차이가 없지만 형사나 여주인공의 경우 현실적 직무나 책임에 짓눌려 자신의 에너지를 표출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이들은 건강한 편이다. 문제는 사건을 일으킨 존재들이다. 악몽을 만든 세력의 구성원들은 죽음 회피, 질투, 성욕이라는 욕망에 짓눌려 현실을 끊임없이 부정하고 거부한다. 하지만 결코 그 욕망을 현실에 표출하지 못했고 곪아가는 그 욕망은 꿈에서 왜곡된 형태로 나타난다. 강간, 폭력, 살인 등의 형태로 꿈 속에서 악행을 저질른다. 뭐 교훈은 자신을 잘 돌아보자 정도려나?
뭐 이런 얘기도 재미있지만 더 관심이 갔던 것은 DC미니라는 설정이다. 꿈 속을 탐험할 수 있다는 설정의 기계이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며 모두의 꿈을 통합시키는 매개체로 작용하게 된다. 사건 초기에만 해도 타인의 꿈 속의 침투하는 형태로 머물렀으나 더 나아가 현실과 꿈의 경계를 무너트리고 모두의 현실을 통합된 꿈의 세계로 대체해버렸다. 여기서 질문하고 싶은 건 다음과 같다. 과연 영화 속 꿈의 세계는 진짜 꿈을 의미했던 것일까? 내가 보기에는 욕망 공간이다. 모든 인간들은 각자의 욕망을 가지고 있다. 욕망은 어떤 모습으로는 현실로 드러나지만 어떤 욕망들은 결코 현실에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 그렇기에 이 욕망은 각자의 빗장 속에 가두어진다. 하지만 DC미니에 의해 서로의 욕망이 드나들 듯 볼 수 있게 되었고, 결국 욕망이 현실로 범람하게 되었다. 인스타그램을 떠올려보면 이 모습들을 너무나 친숙하다. 우리는 내적 욕망을 SNS 형태로 끊임없이 표출하는 세상 속에 있다. 쭉방 가슴녀들의 사진에 하트를 보내고 ‘존예’ 이런 식으로 댓글을 단다. 럭셔리 차 사진을 올리며 하트를 갈망한다. 음란한 자신의 모습을 공유하며 자신의 성욕을 표출하고 타인이 보내는 하트를 욕망한다. 그 야한 사진을 방구석에 누워 성기를 만지면서 본다. 그리고 더 야한 사진을 갈구한다. 모두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장소에서 찍은 사진을 올려 자신이 욕망의 한가운데 존재함을 확인한다. 이는 인스타그램에 한정되지 않는다. 90년대 사이버펑크 선언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육체의 한계를 벗어난 사이버 공간에서 더 이상 현실의 나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육체와 제약이 없기에 욕망을 터져나오고 흘러 넘친다. 그리고 결국 그 욕망이 현실을 무너트리는 순간이 오기까지 한다. 이까지 얘기했으면 뻔한 논의로 넘어오니 더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감독이 이 같은 생각을 감각있게 잘 표현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인터페이스적 측면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점점 기계와 우리의 거리는 좁아지고 있다.(넓어지고 있기도 하지만) 마우스와 키보드에서 터치로, 고정된 PC에서 언제나 온라인인 단말기로 그리고 VR에 이르기까지 우리와 컴퓨터의 관계는 점점 현실과 닮아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 같이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인터넷 공간에서 우리의 욕망의 분출은 어떻게 나타날까? 지금의 모습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현재 인터넷 게시글의 상당 수는 구조화, 부호화가 필요한 언어로 나타나고 있기에 그 욕망의 직설적 표출과 거리가 멀다. 이미지와 영상의 시대에 이르면서 그 욕망이 더 솔직해지고 있긴하다. 기술이 더 발전할 경우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것이다. 파프리카 속 폭발하는 꿈 이미지와 같이 기괴하고 다양한 형태로 욕망이 표출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이때 우리는 진정으로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무너진 혼란의 순간을 맞이할 지도 모른다.
퍼펙트 블루는 나중에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