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줘

자바 실습 수업에서 기말 프로젝트로 안드로이드 어플을 만들라고 한다. 그래서 팀원들에게 예전부터 생각했던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가제는 ‘기억해줘’로 나의 휴대폰 생활을 저장한다. ‘기억해줘’는 주기적으로 나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폰으로 무엇을 하고 있니? 그러면 버튼 하나를 누르면 된다. 그러면 지금 내가 보고 있던 휴대폰 화면, 듣고 있던 음악, 보고 있던 장면을 저장해준다. 그리고 나에게 나중에 묻는다. 너는 한달 전 뭐했니? 모르면 모르겠다고 해라. 그러면 ‘기억해줘’가 친절하게 말해줄 것이다. 아무리 기억하고 싶어도 기억나지 않는 지난 일년의 기억들, ‘기억해줘’가 말해줄 것이다.
‘기억해줘’는 하드디스크보다 훨씬 성능이 떨어지는 기억장치인 휴대폰의 save, access 시간을 줄여줄 것이다.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기억해줘’는 여러분의 일부분이다.
다음이 팀원에게 보낸 제안서이다.(참고로 이태원 ‘Roxy’라는 바에서 술 처먹고 쓰는 글이니 좀 이상한 것 같다)

한번 폰의 모든 데이터가 날아간 적이 있으신가요? 그때 기분이 어땠나요? 길 가다가 느꼈던 그 감각의 현현, 그 순간의 기억들을 고정시키기 위해 찍었던 그 사진들을 잃어버린다면 어떠신가요? 헤어진 지는 오래됐지만 여전히 기억에 남던 그 예전에 연인과의 카톡 대화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 어떤 느낌인가요? 여러분들은 그 잃어버린 모든 데이터들을 기억하실 수 있나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은 운동과 같습니다. 우리가 자전거를 타기 위해 오랜 연습을 했고, 몸에 그 기억들이 새겨졌기에 여러분들은 자전거를 탈 수 있습니다. 그 운동 감각은 나의 몸이 기억하니까요. 하지만 휴대폰으로 했던 수많은 활동들을 기억하지 못 하실 겁니다. 왜냐면 여러분들이 기억하지 않아도 휴대폰이 다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써 기억할 필요가 없으면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자전거를 타기 위해 수없는 연습을 해야하는 것처럼 기억은 끝없이 떠올리려고 노력해야만 머릿 속에 남습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은 휴대폰으로 했던 수많은 활동들을 기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휴대폰의 쏟고 있는 시간은 터무니 없이 많습니다. 휴대폰은 우리의 인생 그 자체인데 기억을 못 한다면 그건 문제가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휴대폰 했던 많은 활동들을 기록하고 또 다시 보고 싶습니다. 카톡을 다시 훑는 건 되게 불편한 일이죠. 보고 싶던 그 순간을 찾기 위해 끝없이 위로 스크롤 할 때 손이 너무 아파요. 조금 더 쉽게 저장하고, 또 쉽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기억해줘’(가제)는 여러분들이 폰으로 하는 많은 활동들을 기록합니다. 썸남녀와 했던 카톡들, 고민하고 있던 생각들, 그 순간 듣던 멜론(유튜브)음악, 읽고 있던 네이버 기사, 보고 있는 풍경, 이 모든 것들을 기록하고 또 여러분들에게 상기 시켜줄 겁니다. 왜냐고요? 그 모든 활동들은 여러분의 삶이니까요. ‘기억해줘’는 여러분들에게 주기적으로 물을 것입니다. 혹시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가요? 버튼 한번만 누르세요. 그러면 ‘기억해줘’는 여러분의 삶을 기억해줄 것입니다.
‘기억해줘’는 그냥 기억만 하지 않습니다. 한번씩 여러분에게 질문도 합니다. 1주일 아니 한 달전 당신은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 모르겠어요? ‘기억해줘’에게 물어보세요. 바로바로 알려줄거에요. 잊지 않고 싶은 순간이 있으세요? 그러면 중요하다고 ‘기억해줘’에게 말해주세요. 그러면 나중에 여러분이 그 중요한 순간을 잊어버릴 때 ‘기억해줘’가 말해줄 것입니다. 혹시 그때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기억해주세요. 당신에게 소중한 기억이잖아요?
‘기억해줘’는 그냥 다이어리가 아닙니다. ‘기억해줘’는 여러분의 몸 일부분입니다. 기억하고 싶은 그 순간을 더 이상 잊지 마세요. ‘기억해줘’는 당신의 기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