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하다는 말은 정말로 많이 쓰이는데 도무지 알기 쉽지 않은 말이다. 퇴근 후 꽃을 사들고 집으로 와서 애인에게 ‘이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싶어서’가 로맨틱하다고 하기도 하고, 별이 빛나는 밤을 가득 담은 호수 옆에 앉아 그 아름다운 별의 호수를 담은 눈을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로맨틱하다고 하기도 한다. 이거 말고도 정말 무한히 많은 방식의 로맨틱한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또 각자가 로맨틱하다고 여기는 것이 서로 다를 것이다. 이쯤되니 다른 사람들에게 로맨틱한 순간이 어떤 거냐고 물어보고 다녀야하지 않을까 싶다. 진심으로 궁금하다.
오늘 친구랑 하루키의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대한 이야기를 했다. 대략 22살 쯤에 읽었던 단편인데, 그 당시 정말 짧은 그 글을 읽고 인생에서 처음으로 ‘로맨틱하다’라는 생각을 해본 것 같다(29살로서 예전 기억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지는 않으니 유의해주세요).
글이 짧은 만큼 내용도 많지 않다. 그저 한 남자가 길을 가다 마주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본 여성에게 반하게 된다. 그녀는 그다지 아름답다고 생각 들지는 않았고, 크게 주인공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있지도 않았다. 그저 끌렸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100%의 그녀와의 함께할 순간들을 상상한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그녀는 이미 주인공 바로 앞까지 와있었고 주인공은 어떻게 100%의 그녀에게 적합한 말을 건넬 지 고민한다. 점점 그녀는 다가오고 주인공의 머릿 속에는 시덥잖은 말들만이 떠오른다. 그러다 그녀가 주인공 바로 앞까지 오고, 그리고 주인공 뒤로 지나가버린고 만다. 주인공이 고개를 돌렸을 때는 그녀를 더이상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게 100%의 그녀의 놓치고 주인공은 시간이 꽤나 지나고서도 그녀를 생각하고 그녀에게 어떤 말을 했어야 할 지 생각하고 그 말은 찾아낸다. 대사는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고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끝난다. 옛날 옛적에 평범한 소녀와 평범한 소년이 언젠가 100% 누군가를 만나기를 꿈꾸며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날 그 둘은 마주쳤고 서로가 서로의 100% 상대방임을 확인한다. 그 기적 같은 순간에 그들은 기적에 진짜 의구심을 품고, 서로가 정말로 기적에 가까운 조우를 했는지 확인 싶어한다. 그들은 서로 정말 100%의 상대방이라면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고 그때 다시 만나면 어떤 순간이든 함께하기로 한다. 슬프게도 그들이 헤어진 후, 소녀 소년 둘 다 기억을 잃게 되고 그들은 더 이상 100%의 상대방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잃어버린 기억에 대한 희미한 기억만 남긴 채,,, 주인공은 이런 대사를 했어야한다고 말하며 단편은 끝난다.
사람은 생의 대부분은 단조롭고, 따분하고, 피곤하고, 불편하고, 무의미한 순간만이 가득하다. 그 속에서 사람은 권태로움을 느끼고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어 그 어떠한 가능성도 꿈꾸지도 믿지도 않게 되어버린다. 그저 어디인지 모를 곳에 서서 머리 위로 태양이 지나가고 달이 지나가고 별이 지나가고 비행기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본다. 옆으로는 자동차가 지나가고 사람이 스치며 무언가를 손으로 쥐었다 다시 놓기를 반복한다. 그 모든 것들이 주위를 맴돌 때 우린 그저 눈 감고 있을 뿐이다. 단편 속 주인공은 삶을 스치는 모든 것을 어떻게 대해왔을 지 궁금하다. 대다수의 사람들과 같이 주변의 맴도는 일상에 갇혀 눈을 감고 살던 사람일까? 순간에서 아름다움과 영원을 찾던 사람일까? 전자라면 100% 소녀가 그에게 생기가 가득한 순간을 만들 것이고, 후자라면 그는 100%를 찾기 위해 삶의 매 순간 불타오르는 사람일 것이다. 전자이건 후자이건 그는 그 순간을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놓친 순간을 흘러가게 하지 않는다. 자신을 가두고 옥죄며 시간을 소멸시키는 일상에서 해방되어 아름다웠던, 그의 인생에 영원히 남을 순간을 생각한다. 그리고 온 에너지를 다해 그 순간에 몰두하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 모습이 정말 로맨틱하다.
삶은 그저 지속되는 시간 속에서 존재해왔던 순간의 총합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 시간은 그저 소멸될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삶은 영원히 남을 강렬한 순간들의 총합이다. 주인공처럼 일상 속에 스쳐지난 가는 많은 것들 속에서 아름다운 것을 포착하고 그것의 무한한 가능성을 생각하고 상상하고, 주인공은 하지 못 했지만 그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만이 영원히 남을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삶의 자세, 그 결과가 로맨틱하다.
꽤나 오래전부터 해오던 생각이고, 가끔 일상이 내 목줄을 채울 때 이 단편을 읽으며 로맨틱하게 살아가려고 다짐했다. 그런데 이 단편을 읽은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어느새 로맨틱이라는 단어가 머릿 속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친구 덕에 다시 단편을 읽었고, 이렇게 글을 쓰며 다시 로맨틱한 삶을 살기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