낼이 셤인데 정말 공부하기 싫어서 쓰는 곡성에 대한 이야기! 한마디로 말하자면 별로였다. 누구 말마따나 정말 온갖 짬뽕 놀이는 다 할 대로 다 하고 내용은 내용대로 없었다. 길게 이야기할 말도 없으니 짧게 짧게 써야겠다.
처음 영화를 볼 때 그 흐름을 잡아내지 못 했다. 영화 내용 사전 지식이 없었던 건 당연하거니와 이런 오컬트적 영화라고는 생각도 안 했던 것이다. 나의 편협한 상식상 이런 분위기의 영화 속 악은 인간이었기에, 영화의 초중반까지 벌어지는 많은 사건들을 이어나가지 못 했다. 나쁜 독극물(버섯) 때문에 미친 주민들, 그 인간들의 나약함에 버섯을 쑤신 나쁜 악당 뭐 그런 식을 받아들인 것 같다. 물론 플롯은 그 뚱뚱한 경찰관 아저씨가 겪는 현실이지만 현실 같지 않은 마을 사건들에 관한 것인 줄 알았다. 사실 이건 말도 안 되는게 번개 치고 온갖 지랄 다 하는데 이렇게 생각한 내가 문제이긴 하다. 어쨌든 나는 이런 식의 악을 받아들이지 못 한다. 근성 상 초월적 존재, 근거가 부족한 상상, 종교 같은 것들을 믿지 못하기에 영화를 지배하는 그 흉악무도한 영적인 악마 같은 건 보기도 싫다. 뭐 그렇다고 되게 꽉 막힌 취향의 잣대로 강요하자는 건 아니다. 사실 그런 식의 악은 이야기 속에서나 가능한 것이고, 이야기를 현실보다 더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 속 악은 정말로 꼴보기도 싫었다.
영화의 주제를 명확하게 캐치하지는 못 했지만 포스터의 문구처럼 의심하지 말라가 주제와 가까운 것 같다. 영화는 끊임없이 떡밥을 던져대면서 관객을 현혹시키고, 또 가지고 논다. 수많은 정형화된 영화적 수법을 고의적으로 쓰면서 현실이 아닌 이미지만 할 수 있는 유혹을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는 정말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분명 대다수의 관객의 마음을 가지고 놀면서 영화가 줄 수 있는 몰입감을 최대한 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이 영화의 현혹이라는 것이 정말로 영화 속에서만 일어날 일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주인공은 끝없이 저 귀신년이 착한 놈인지, 그 무당놈이 착한 놈인지 갈등한다. 근데 이 선택이라는 것이 정말로 웃긴게 주인공은 아는게 없다. 주인공은 누가 착한 놈이고 누가 나쁜 놈이지 절대 알지 못한다. 그냥 미친 놈들이 주인공 주변에서 미친 짓거리를 계속 해대는 것이다. 그러면서 믿어달라고 하는데 뭐 귀신이면 권능이라도 보여주던지 아무 것도 보여주는 것도 없는데 믿으라고 한다. 그리고 믿지 않으면 벌 받는다고 한다. 믿지 않는 자, 벌 받을 지어다. 킁킁킁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은 뭘 해야하는가? 무슨 선택을 하든 주인공은 잘못한 것이 없다. 이미 주인공은 사는 세계는 주인공이 감당할 수 없는 초월적 세계이기 때문이다. 사람 삶이라는게 원래 제 멋대로 못하는 것이긴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냥 최악이다. 그냥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아무것도 모르는 귀신을 믿으라고 하는 것일까?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러면 무당을 믿으라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자기 자신을 믿으라는 것인가?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주인공이 자신을 믿든 말든 세상은 끔찍할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믿을 수 있을까? 믿을 수 있는 건 없다. 그런 상황에서 무엇에 현혹되고 무엇에 현혹되지 말라는 것인가? 믿을 것이 없는 인간은 끝없이 흔들릴 수 밖에 없다.
확실히 주인공이 영화 내내 흔들리는 모습은 끝없는 정보와 이야기들과 이미지들에 현혹되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 모습과 닮았다. 하지만 확실히 우리가 사는 세계는 주인공이 사는 세계와는 다르다. 주인공과 다르게 우리에게는 선택이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득달같이 달려들 20세기 학자들이 눈에 훤히 보이긴 하지만 분명히 우리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언제나 주어진다. 우리는 살 기회가 있다. 자신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꾸려나갈 기회,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할 기회가 있다. 영화 속 상황처럼 아무리 삶이 힘들어더라도 우리에게는 언제나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아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처음부터 어떤 기회도 없었다. 끝없이 악마에게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 선택의 순간이 기회였을 지도 모르나 그 선택의 순간 아저씨가 믿을 수 있는 건 없었다. 믿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확률에 거는 것은 도박보다도 못한 일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영화의 무기력함을 느꼈다. 영화는 우리에게 흔들리는 끔찍한 인생을 말하지만 사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감정을 가지고 놀기에 바빴던 것이다. 이런 저런 의도적 장치를 쓰며 우리를 가지고 놀뿐이지 결코 관객에게 선택의 기회를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는 끝없이 인간의 무기력함만을 보여줄 뿐이었다. 뭐 영화가 여기서 끝나면 그거대로 좋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요즘 우리 주변에는 이런 이야기로 포화상태이다. 헬조선, N포 세대, 위잉위잉 요즘 주변에는 포기하는 이야기들 뿐이다. 모두 다 무기력해지고 있으며, 모두가 선택의 힘을 믿지 않는다. 모두가 무엇을 믿어야할 지 갈등하며, 믿음을 가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이 같이 무기력한 세상에 살면서 또다른 무기력한 이야기를 보기 싫다. 지겹고 따분하다. 그리고 역겹다. 이런 이야기들은 이제 더이상 보기 싫다. 무기력한 삶에 강한 에너지를 주는 이야기가 좋다. 조금 더 용기를, 조금 더 위안을, 조금 더 힘을 주는 그런 이야기가 좋다.
글에 근거도 부족하고 논리적 비약도 많은 것 같다. 그냥 저냥 쓰는 글이라서 더 쓰지는 못하겠고 이렇게 써놓으면 나중에 사람들이랑 이야기할 때 내 입장은 좀 더 분명히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썼다. 그때가서 비판 받으면 되지 뭐. 그리고 언제나 나에게 힘을 주는 노래나 하나~~
근데 글을 쓰다보니 그렇게 미워할 이유가 없어보이긴 하다. 근데 이렇게 미워하는 이유는 아마 영화가 너무 잔인 아닐까? 잔인한 영화는 일단 싫다…
When I look at you
Oh, I don’t know what’s real
Once in a while
And you make me laugh
And I’ll see you tomorrow
And it won’t be long
Once in a while
Then you take me down
Then you walk away
When you say ‘I do’
Oh, I don’t believe you
I can’t forget it
No
When you sleep tomorrow
And it won’t be long
Once in a while
When you make me smile
When you turn your long blond hair
When I look at you
Oh, I don’t know what’s real
Once in a while
And you make me laugh
And I’ll sleep tomorrow
And it won’t be long
Once in a while
Then you take me down
When you walk a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