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글 주제는 TGS다. TGS에 대해서는 정말로 할 이야기 많은 것 같기도 하고 딱히 말할 필요가 없는 말 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차피 내가 글을 계획을 가지고 쓴 적은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기에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려고 한다. TGS에 대한 나의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시작됐던 것 같다. 먼저 밝히자면 나는 4살 때부터인가 N64를 사용했고 PS2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인가 한국에 정발되자마자 바로 구매했었다. 그 이후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루리웹에 들어갔었던 것 같다. 뭐 아는 것도 없었지만 비디오 게이머라는 부류에 속하고 싶었기에 루리웹에 거의 매일 같이 꾸준히 들어갔었다. 그 전 글에서도 이야기 했던 바와 같이 내 또래와는 다른 존재가 되고 싶었다. 다들 건즈, 메이플스토리, 카르마, 다크에덴, 바람의 나라 같은 게임을 할 때 나는 전세계 최강 프랜차이즈 게임을 즐긴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던 것 같다. 사실 자부심까지 가질 필요는 없지만 그 당시 했던 메탈기어솔리드 같은 게임은 그 완성도가 대단했다. (사실 나 같은 친구가 별로 없고 사교성이 좋지 못했던 아이는 방 구석에서 솔플하는 것이다…) 어쨌건 루리웹에 매일 같이 들어갔었고 그렇게 루리웹의 길을 연중 내내 걷다보면 무조건 마주칠 수 밖에 없는 큰 이벤트가 있다. 바로 E3와 도쿄 게임쇼이다. 전 세계 최대 규모의 게임쇼. 아직 출시하지 않은 게임들을 시연하는 곳. 새로운 게임 발표의 시작. 모든 게이머의 집합소. 화려한 그 빛들은 정말로 완벽하게 비디오 게이머들을 현혹시킨다. 어릴 적 나는 그 빛에 매료 당했다. 사실 E3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항상 도쿄 게임쇼에 관심이 많았다. 이유를 애써 설명할 필요가 있는가? 도쿄이다. 도쿄에서 일본인이 가득한 게임쇼를 한다. 아릿따운 본인 부스걸들의 살이 반사하는 매혹적인 빛… 멋진 곳이다. 그 행사는 언제나 시작하기 앞서 루리웹 사람들을 설레이게 만들었고 나 또한 그 네트에 내 심장을 연결하고 그 발광하는 트래픽에 심장이 뛰었다.
나에게 도쿄 게임쇼는 사진 속의 공간이다. 처음 접할 때부터 사진 속의 공간이었으며 이번에 게임쇼를 가기 전까지도 사진 속의 공간이었다. 참 재미있는게 사진은 현실을 공간을 담은 것이 거의 분명하지만 한번도 도쿄 게임쇼가 현실에서 일어난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언제까지나 하나의 가상의 이벤트와 같이 느껴졌으며 현실에서 마주할 공간이 아닌 하나의 개념 상의 공간 같았다. 높은 곳에 존재하고 그 존재 만으로 꿈과 환상을 심어주는 공간. 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된 큰 이유는 아마 가보기 어려운 곳이기 때문이다. 정해진 타이밍에 도쿄를 가야하며, 그 비용 또한 마냥 싸다고는 할 수 없다. 갈 일이 없으니 그냥 마음 속의 공간으로 남겨놨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내 마음 속 TGS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하지 못한다. 그 공간은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말하는 스펙타클의 공간이다. 그 공간은 나에게 언제나 수동적으로 관조하게 만드는 공간이며, 꿈과 희망도 찾을 수 없는 이 사회에서 내가 삶을 살아가는(일을 하는) 원동력이다.
대부분의 요즘 사람들은 다들 삶이 피상적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모든 것이 부유하고 의미를 상실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거짓말이며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정말로 이 세상에 남아있지 않는 것 같다. 세상의 많은 일들은 이미 우리의 손을 떠났으며 허위의 말과 이미지만 우리에게 뿌려진다. 스펙타클의 사회의 서문에서는 이런 사회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한다. 자본은 꿈과 희망을 잃은 사람을 어떻게 노동하게 할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해 중고등학교 시절의 내가 대답을 한다면 TGS와 같이 멋진 것들이 가득한 세상을 살기 위해서요!이다. 이 허위의 사회가 제시하는 허위 중에서 인간의 몸을 강렬하게 지배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열망이며 열정이며 욕망이며 꿈이다. 언제나 우린 열망을 가지고 살아야한다. 이 사회에서 열망이 없는 존재는 죽은 존재이다. 그런 존재는 재미없는 존재이며 취직을 못할 인간이며 무의미한 존재이다. 열망의 이미지는 이 같은 명령을 가지고 우리에게 내려지며, 우리는 이 열망의 이미지를 각자의 방식으로 내재화하고 삶의 기쁨을 찾으려고 한다. 나에게 있어서는 게임이었다. 앞서의 이유로 게임에 많은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했으며 내 열망의 이미지로 만들었다.
스펙타클의 이미지는 스펙타클의 의미 그대로 수동적으로 바라봐야하는 이미지이다. 스펙타클은 고도로 축척되어 이미지화 된 자본이다. 그 이미지는 내가 직접 접할 수 있는 실제 세계가 아니다. 그 세계는 더 멋진, 훌륭한 존재들이 가득찼으며, 그 존재들의 손으로 그 아름다움을 지속해서 빛내는 공간이다. 그 공간을 닿기 위한 곳이 아니라 바라봐야하는 곳이다. 광고에서, 티비의 뉴스에서, 혹은 상품으로부터 스펙타클의 이미지를 접할 수 있다. 뒷면에는 아무 것도 없지만 미칠듯이 번쩍이는 영화 스크린, 그리고 그 스크린을 고정된 자리에 앉아서 바라보는 관객의 모습은 전형적인 스펙타클의 구도이다. 우리는 실제라고 믿는 그 스크린에서 빛나는 빛을 믿고 그 빛을 갈망한다. 갈망까지만 하면 된다. 그 이상은 안 된다. 이것이 거대한 자본의 이미지, 혹은 스펙타클이 우리에게 내리는 명령이다.
그 명령에 충실하게 따랐던 것 같다. TGS는 언제나 나에게 있어서 꿈과 환상의 빛이었으며 닿고 싶지만 닿지 않고 갈망하기만 하더라도 나에게 열정을 주는 공간이었다. 정말 애매한 듯한 공간이지만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있는 공간이 아닐까 싶다.
이까지만 해도 글은 마무리지만 그래도 TGS에 간 소감을 말해야하지 않겠는가. 사실 앞서의 말들에서 TGS가 닿을 수 없다는 것은 꼭 못 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매년 TGS에 가는 사람들은 스펙타클이 아닌 실제의 세상에 간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TGS는 한국의 청소년에게는 닿을 수 없는 곳이다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청소년을 너머 20대가 되고나서 TGS는 닿을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그 공간에 처음 들어섰을 때 느꼈던 그 삶의 강렬한 열망은 역시 부정할 수 없다. 너무나 거대했으며 멋있었다. 충족하지 못하는 것을 충족했다는 기쁨은 이루어 말할 수가 없었으며 무한한 삶의 기쁨을 찾은 것만 같았다. 그게 전부이다. 그 공간의 나에게 약속하는건 삶의 기쁨이 아니었다. 끊임없는 쏟아지는 이미지들 속에서 수동적 관조의 자세만을 원하는 그 공간은 멋지지만 좀 어색한 공간이다. 어딘가 모르게 느껴지는 그 허위가 TGS에 있는 내내 느껴졌으며 그냥 조용히 새로 나오는 신작 게임이나 차분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망하는 것이 허위라고 느껴질 때 기분은 별로 좋지는 않다. 그리나 이 같은 이미지들이 사람들을 움직이고 TGS와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을 바라볼 땐 놀랍다.
아 물론 부스걸들은 정말로 최고다. 열심히 공부해서 부스걸처럼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야겠다! 물론 헛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