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의 전시

친구 개인전을 도우려 일본까지 갔다왔당. 시작은 집에서 만든 기괴한 엠비언트 음악이었다. 꽤 재미있는 사운드가 나와서 친구들에게 공유했었고 개인전을 같이하게된 친구가 음악을 듣던니 자기 개인전 음악을 하면 좋지 않겠냐고 이야기를 하면서 시작했다. 사실 그 전 게시물의 (마음으로 낳은) 이도현 딸이 그 날 통화에서 나온 아이디어이고 통화 바로 다음날 만들어진 친구이다. 그러고 이리저리 준비해보지만 현생이 바쁜지라 온전히 같이 작업하지는 못 했다.

공동 작업은 크게 보면 친구의 무지막지한 조형, 공간 벽면에 쏘는 프로젝션 맵핑 애니메이션, 그리고 애니메이션과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음악으로 이루어진다. 둘이 이리저리 구상하고 뭐 많이 했지만 나중에 와서 보자면 큰 의미는 없었다. 인터렉티브한 음악을 하기 위해 평생 써보지도 않은 MAX/MSP도 공부하고 갔으나 그것도 별 필요 없는 일이 됐다.

7월 8일 토요일 전시이구 7월 5일부터 7일까지 갤러리에서 음악 설치를 하기로 됐다. 그 전까지 여러 음악과 사운드를 준비하고 MAX/MSP 코드를 여럿 짜고 갔으나 막상 5일날 갤러리에 들어가보니 모든 그 전 작업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공간에 가기 전에 공간 실측 도면과 공간이 담긴 사진들을 보고 갔지만 막상 가보니 머리가 새하얗게 변한다. 분명 화이트 큐브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갔지만 온전한 의미에서 화이트 큐브는 아니었다. 누구 말마따나 중간에 묘하게 황금비율 위치에 있는 거대한 흰 공구리 기둥, 천장 4 모서리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쏟아져 나오는 YAMAHA 빛,,,과 시선과 카메라 앵글에 걸리는 8개의 프로젝트들, 그리고 작은 갤러리 입구와 갤러리를 향해 나있는 계단과 복도의 거친 느낌, 이 모든 것들이 생각했던 것이랑 너무 달랐다. 가장 큰 문제는 4 모서리 천장에 설치된 스피커들이다. 다들 대충 알겠지만 스피커라는게 많으면 많을 수록 좋은게 아니다. 4 모서리에 설치되어있으면 공간감이 좋을 것 같으나 실제로는 소리가 되게 지저분하고 울리고 난리가 난다. 그렇기에 우리가 5.1채널 홈시어터로 영화를 볼 때 돌비 포맷에서 각 스피커 별로 나오는 소리들을 구분하고 재생한다. 심지어 갤러리 대표도 음악과 소리에는 크게 관심 없어서 그 세팅에 대한 어떤 코멘트가 없었고 아마 그 전까지 4개의 스피커 중 2개만 스테레오로 사용한 것 같더라.

오디오 인터페이스를 세팅하고 레퍼런스들을 틀어본다. 사실 친구의 작품을 실제로 본 것도 처음인데 공간과 작품에 만든 사운드와 레퍼런스들을 틀어보니 전혀 쓸 수가 없다. 망했다. 그냥 공간과 작품이랑 전혀 맞지 않는다. 어쩌지. 3일간 어떻게든 만들어내야 하는건가. 일단 레퍼런스들을 더 찾아보면서 계속 감을 잡아간다. MAX/MSP로 미리 만든 코드 여러개를 다 돌려보면서 이리저리 해보다가 깨닫는다. 일단 저 4개의 스피커를 다 써야한다!

4개의 스피커를 쓰는건 생각보다 까다롭다. 스포티파이에서 그냥 음악을 틀면 4개 중 2개 밖에 안 쓰고 에이블튼도 별도의 과정이 없으면 2개의 스피커를 쓰도록 세팅되어있다(마스터 아웃풋을 보면 기본 1/2다). 이리저리 찾아보니 M4L(Max for Live) 플러그인 중에 4 스피커를 서라운드 패닝할 수 있는 툴을 찾았고 그 녀석을 잡고 씨름을 한다. 몇시간의 시행 착오 끝에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일반적인 패닝은 사운드 엔지니어링 측면에서 음 분리 등의 고민을 하지만 지금은 사운드 소스의 위치를 무작위 애니메이션을 줘서 이동시키고 청자 입장에서는 사운드가 부드러운 모션을 가진채로 여러 위치로 이동하면서 재생되는 효과를 느낄 수 있게된다. 이때 모션의 속도와 무작위성을 적당히 조절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이 예상외로 매우 재미있는 사운드를 만든다. 테스트로 간단한 E-Piano 사운드(당연 Rhodes)로 기본 코드 전개를 쳐본다. 78BPM의 편안한 코드 전개는 안정적인 느낌을 주지만 매우 빠른 패닝 애니메이션을 거니(1/4박자에 방 한바퀴) 마치 E피아노 사운드가 진동하듯이(Oscillation)하듯 울린다. 피치 벤딩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그것보다도 신선한 사운드이다. 약간의 레조넌스도 느껴진다. 이걸로 하면 재미있겠다 싶어서 서라운드 패닝을 전면으로 내세우고 작업을 개시한다.

작품은 총 세개의 씬으로 이루어진다. 조형 작품이야 그대로 있지만 프로젝터를 가지고 벽에 쏘는 이미지와 소리가 변한다. 씬은 다음과 같다.

슬프게도 개인전의 이끄는 친구가 설치에 정신이 없고 작업을 하는 와중에 비주얼이 완성되지 않아서 사운드를 만들어내기 어려웠다. 한 예를 들자면 친구의 아주 큰 조형 위에 있는 청동 동상에 스팟 조명이 걸려있는데 그 스팟 조명이 묘하게 표현 의도가 명확하지가 않았다. 그 표현 의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사운드가 표현되지 않았기에 친구랑 계속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여러 조정을 해보면서 다른 표현 방법을 찾아본다. 그러다가 스팟 조명을 빠르게 껐다켰다 해보니 느낌이 아주 분명했고 나와 친구는 동시에 아! 외친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는 음악이 아주 분명하게 떠오른다. 아쉽게도 그 조명을 자동으로 껐다켰다 할 수 있게 하는 자동화를 얼마 안 남은 작업 시간 안에 구현할 수가 없었다. 이처럼 음악은 비주얼과 따로 작업할 수 없었고 친구의 설치가 딜레이 될수록 내 시간도 밀리게 되는 것이다.

어쨌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 쉼 없이 사운드 찾고 설치 도와주고 담배 피고 편의점 삼각김밥 까먹으면서 일하지만 결과가 전시 이틀전까지도 나오지 않았고 가져갈 수 있는 사운드 요소와 테마만 겨우 건진다. 그래도 잠은 자구 또 갤러리로 간다.

준비 마지막 날 여러모로 엉망이다. 일단 3개의 씬 중에 하나도 완성이 안 됐고 설치도 아직 멀었다. 작가 친구의 멋진 친구분이 와서 도와주셔서 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비주얼은 완성되지 못 했다. 계속 사운드를 만들려고 애쓰지만 뭐가 되지 않는다. 총체적 난국이다. 시간은 계속 줄어가는데 결과는 안 나오고,,, 진짜 포기하고 사운드 없이 전시하는게 맞을 지경이었지만 포기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해낸다. 설치를 하는 동시에 계속 나와 사운드 가지고 이야기 하는 친구도 마찬가지이다. 몰릴 대로 몰렸지만 계속 만들어낸다는 의지만 있을 뿐이다. 나는 비주얼 늦어진다고 친구한테 볼멘소리 하지만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기분 나쁘지 않다. 나는 바쁜 친구가 정신 없는 와중에 일 순서를 놓치길래 계속 강조해서 일을 정리해주고 지속적으로 작업 설치에 코멘트를 줘서 친구의 선택을 더 좋은 방향을 이끈다. 친구도 마찬가지이다. 계속해서 사운드를 듣고 코멘트를 남기고 테마, 방향성, 감각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더 나은 사운드를 탐구한다.

그렇게 작업 중 내가 만든 어떤 사운드에 나 혼자 흥얼대고 있었는데 친구가 그 소리를 같이 넣어보는게 어떻냐고 묻는다. 일단 내 목소리를 싫어하기에 녹음하는 것에 거부감도 있었지만 일반 상식으로 이 사운드를 같이 쓰기가 썩 쉽지는 않다. 큰 이슈가 녹음 환경과 톤의 차이인데 뭐 어쨌건 저쨌건 나는 그 의견에 반대했으나 친구의 완고한 의지에 못이겨 내 흥얼거리는 목소리를 녹음하고 함께 재생해본다. 역시 별로다. 근데 왜인지 이 사운드를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목소리의 피치를 바꾸고 재생 속도를 바꾸고 또 역재생도 해본다. 뭔가 나올 것 같기도 하다. 리버브나 딜레이 걸구 레조네이터부터 이것저것 이펙트를 다 걸어본다. 이거 걸고 저거 걸고 그러다가 노브도 계속 만지며 사운드를 변환해가는데 어느 순간 매우 만족스러운 사운드가 나왔고 기쁨 얼굴로 뒤를 돌아보니 같이 설치하던 친구와 친구의 친구 분 모두 같은 표정이다.

그 이후 작업은 일사천리이다. 소리 지르기, 중얼거리기, 웃기 등등의 목소리를 나와 내 친구가 녹음한다. 윗층 갤러리에서 민원이 왔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그것을 계속 변조하고 곡 구성을 하다보니 3개의 씬이 다 나왔다. 끝난게 아니다. 이제 이걸 다시 4채널 스피커에 재생하기 위해서는 두개의 스테레오 음원을 렌더링하고 그걸 다시 터치 디자이너에서 동시에 두 음원을 4개의 스피커에 재생되도록 세팅해야한다. 다행히 터치 디자이너 파트는 갤러리 대표가 맡아서 잘해주었기에 렌더링만 깔끔하게 하고 계속해서 사운드 세밀조정하고 패닝 세밀 조정해서 총 10분이 넘는 사운드 완성!

갤러리 대표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안 했는데 그분이 공간 운영과 동시에 프로젝션 맵핑 부분을 담당해주셨다. 나와 친구가 엉성하게 또 급박하게 작업하는 모습을 갤러리 대표로서 걱정 가득한 마음으로 바라봤겠지만 계속 옆에서 지원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했다.

그렇게 새벽에 겨우 집에 가서 친구 집에서 술 좀 퍼먹고 잔다. 마음이 편하지만 또 불안하다. 음악을 시간에 쫓겨 너무 정신 없이 만들었다보니 내 결과물이 별로이지 않을까 걱정된다. 내 기준 이하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불안하다.

다음날 전시 오픈 직전에 사운드를 다시 들어본다. 왜인지 부끄럽다. 좀 어색한 부분이 많다고 느끼고 더 수정하고 싶어진다. 수정은 못하고 전시가 시작됐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좋아했고 사운드에 관심을 표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즐겁게 설명해준다. 내가 수정하고 싶다고 느낀 부분에 대해서도 좋게 느꼈다는 코멘트를 많이들 남겨주셨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좋은 마음을 가지고 전시를 관람하고 음악을 들으니 만들 때 명시적으로 의식하지 않았지만 나와 친구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이 다 음악에 담겼다는 것을 알게된다.

참으로 재미있는 과정이었다. 시간에 쫓겼고 불안에 쫓겼지만 친구랑 함께 작업할 수 있어서 정말로 행복했다. 서로 불안하고 정신 없었지만 둘 다 그 속에서 온전히 작업에 집중했고, 서로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감각을 공유할 수 있었다. 갈등이 생길 것도 없다. 같은 목적, 공유하는 감각에서는 그저 표현에만 집중하면 된다. 그러다보니 나도 단지 음악으로만 참여한게 아니라 설치 막노동부터 비주얼까지 모든 부분에 참여하였고 모든 과정이 정말 멋졌다. 음악 결과물도 그렇다. 서로 급하게 쫓겨서 이거 좋다 안 좋다 이런 이야기만 하면서 진행된 것 같은데 사실은 그 전과 설치 과정에서 나눈 수많은 작품에 대한 느낌과 의견들이 고스란히 반영됐던거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사운드에 관심을 가져줘서 기뻤지만, 친구가 나랑 같이 작업할 수 있어서 좋았고 앞으로도 같이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해주었을 때 제일 기뻤다.

첫 전시 완전 성공!

아래는 작업과정 사진 몇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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