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티비를 보니 전국 노래자랑이 방영 중이었다. 무언가 딱 봐도 관악산이다 싶은 산이 배경으로 나왔고 눈 여겨 방송을 보니 과천이 맞았다. 내가 이런 것을 살피는 중에 옆에 있던 엄마가 한마디 했다. ‘저거 다 쓰레기인데, 어휴, 요새는 저런 것만 보면 다 쓰레기로 보여’. 엄마는 노래자랑 행사장에 배부된 그 공기 불어서 만드는 막대봉이랑 부채 등등을 보고 하시는 말씀이었다. 그 말이 맞는게 그 막대봉은 과천 전국 노래자랑이라고 분명히 프린팅까지 되어있었으니 딱히 재사용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순간 저 쓰레기들은 만드는데 영향을 미친 수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티비, 광고, 방송사, 이미지, 안일함, 리듬, 무관심 등등…
그러고 오후에 대구에 조부모님을 뵈러 갔고 같이 식사 후 코스트코에 가게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코스트코를 가게 되었고, 주말인지라 역시 코스트코는 사람이 가득 차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그 공간은 언제나처럼 사람을 답답하게 한다. 무한히 펼쳐진 무한한 선택지. 생산, 연구, 제조, 운송, 보관, 분배, 광고 등등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과 돈이 개입되어 만들어진 작지만 거대한 세계. 코스트코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소우주 같다. 어떤 사람들은 이 같은 소우주에 반하여 마트에 오는 것을 즐긴다고 하던데 나에게 마트는 영원히 정지된 곳 같다.
코스트코의 통로들을 차분히 걷다보면서 내 앞에 펼쳐진 이 물건들의 운명을 상상해보게 된다. 뭐 그렇게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기억하고 묘사하는 방식이 그렇게 구체적이지는 않은 것과 비슷한 이유인 듯 하다. 그저 물건은 흐름을 타고 흘러간다. 손길이 닿고 햇빛이 닿고, 어둠이 닿는다. 시간이 물건을 스쳐지나가고 일상이 물건의 삶을 채운다. 그 고요함. 그 순환의 시간. 그렇게 흘러가다보면 물건은 그 형체를 잃어간다. 어떤 때는 순식간에 그 형체가 망가질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시간이 물건 위로 퇴적되고 또 퇴적된다. 그러다 물건은 사라진다. 그게 다이다. 물건 흐르고 흘러서 도달하는 종점은 쓰레기다. 모든 물건은 그렇게 쓰레기가 되어버리고 마트에서 우리에게 선사하는 그 무한한 가능성은 결국 쓰레기로 향하고 만다. 마트가 무한한 쓰레기 공장 같다.
나의 구미 집 방에는 내가 정말 어릴 적부터 함께 지내오던 인형들이 있다. 어릴 적 그 인형들을 정말로 좋아했었다. 매일 밤마다 말을 걸고, 내가 혼자 공상하던 상상의 세계에 그 인형들을 끌어들였다. 틈 날 때마다 안았고, 또 바라보았다. 하지만 인형들을 바라볼 때 항상 슬픈 사실이 내 마음 속 깊은 곳을 찌른다. 언젠가 이 인형들은 쓰레기가 될 것이다. 그 인형들이 나의 세계에서 사라지는 순간 인형은 쓰레기일 뿐이다. 그 사실이 가슴 속에서 삐죽하게 솟아나올 때마다 크나큰 아픔을 느꼈으며, 이 아픔은 또다른 끔찍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나 또한 이 사회에 쓰레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