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에 쓰인 SF 소설이다. 저자가 페미니스트에 진보, 환경, 반체제 등등 온갖 뭐시기를 다 주장하는 운동가이며 소설도 자신이 꿈꾸는 진보 사회를 그려내기 바쁜 책이다. 그 덕에 플롯은 많이 지루하나 시인이기도 한 저자의 문장 하나하나의 감탄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다. 아 한글 번역이 영 엉망이라서 한글 문장을 영어로 재해석해내고 봐야지 문장의 부드러운 이미지가 잘 느껴진다.
플롯에 대해 설명할 게 있을 지 모르겠다. 주인공은 뉴욕에 거주하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여성으로 낙태, 자궁 적출, 정신 병원 입원, 교도소에서 연인 사망 등등 사회 가장 밑바닥의 삶을 살아왔다. 그녀의 어린 딸은 술의 취한 주인공이 아동학대를 저지른 후 다른 가정에 입양 됐으며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임신한 주인공을 버렸고, 이후 만난 남성들은 사회 혼란, 공권력에 의해 사망했다. 그런 그녀에게 유일하게 믿고 교류하는 가족은 뉴욕에서 성매매로 삶을 유지하는 어린 조카 뿐이다.
어느 날 그녀의 집에 조카가 급하게 찾아오고 곧이어 조카의 연인이자 포주인 남성이 조카를 쫓아와서는 주인공의 집에서 강제로 낙태를 하려고 한다. 조카는 저항하지만 포주의 완력에 제압 당하자 분노한 주인공은 둔기로 포주를 내려친다. 포주는 크게 다쳤지만 그의 친구가 주인공을 공격하고 주인공은 기절한다. 눈을 뜬 주인공은 그 악당들이 거짓말로 자신에게 누명을 씌워 주인공을 미치광이로 만들어 정신병원에 수용시켜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정신병원 관리자들에게 이런 사실을 밝혔으나 모두 미치광이의 말은 전혀 들어주지 않는다. 그녀의 조카 또한 포주의 달콤한 거짓말에 속아 주인공에게 불리한 진술을 해버렸다. 그녀는 또다시 정신병원 신세가 되어버렸다.
자신이 불합리하게 정신병원에 갇혔다는 주인공은 우습게도 어떤 환상을 보고 있었다. 어떤 미래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꿈인지 현실인지 불확실한 공간에서 그녀와 대화를 시도하고, 주인공은 미래인에게 두려움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종종 그 미래인과 접촉을 유지하던 주인공은 어느 날 시간 이동을 하여 미래인의 마을에 가게 된다. 이 시대 모든 현대인의 기대와는 다르게 미래 사회는 고층 빌딩이 아니라 정말 시골 중에 시골 마을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특별한 기술력은 눈의 띄지 않고 농사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마을 사람들만이 보인다. 하지만 이 시대의 시골과는 완전히 달랐다. 최대의 이윤 추구를 위해 무한한 생산을 목표로 하는 이 시대와는 달리 미래 사회는 재생산, 친환경을 중시하며 생산량은 마을의 필요량에 따라 철저히 계획된다. 농사 뿐만 아니라 예술, 과학, 정치 등 모든 활동은 공동체의 행복 증진를 목표로 하고 이를 위해 공동체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는 활동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토론과 합의에 의해 수행 여부를 결정한다. 많은 활동들은 기술적 특이성을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기술이 퇴보한 것은 아니다. 최신의 유전 공학과 약학, 의학들은 이 시대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예시로 유전자 공장이 있다. 미래 사회는 진정한 남녀 평등을 위해 여성은 출산을 하지 않고 유전자 공장에서 인공 자궁을 통해 태아를 생산한다. 자연히 생물학적 부모는 존재하지 않고 공동체 구성원 중 3명이 아이가 14세가 될 때까지 어머니 역할을 한다. 물론 이때 어머니는 성별에 구애 받지 않는다. 상호 독점(종속)적인 관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냥 섹스만 하는 친구, 사랑을 하는 친구 등 자유로운 관계를 가질 수 있으며 본인이 원할 경우 자신이 속하고 싶은 공동체 또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기술은 또 창의적이고 반복적인 일들에도 쓰인다. 미래인은 자유롭고 유익한 생산활동을 갈망하기에 설거지와 같은 재미없는 일은 다 기계가 수행하다.
이런 망상 같은 세상을 접한 주인공은 처음에는 거부, 혐오감을 느끼지만 지속적인 방문을 통해 미래 사회의 공동체에 애정을 느끼게 된다. 안타깝게도 시간 이동은 물리적 신체의 이동이 아니라 정신이 잠시 미래 사회에 현현하게 되는 것이라 주인공은 계속 정신병원에 갇혀 끔찍한 대우를 받으며 병들어간다.
어느 날 어떤 교수가 찾아와 그녀를 포함한 정신병자 일부를 선발해 특수 실험에 실험쥐로 활용한다. 그 실험은 뇌에 전자기기를 부착하여 뇌파를 조절해 폭력성 및 이상 증세를 조절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주인공은 공포에 떨며 상황을 탈출하려고 한다.
이후 이야기는 좀 재미없다. 뭐 이리 저리 갈등을 겪으며 주인공은 탈출은 시도하고 미래인은 여러 지혜와 용기를 주며 주인공을 돕는다. 이 와중에 미래도 위협을 겪고 이리 저리 하다가 주인공이 실험 책임자를 간신히 손에 넣은 농약으로 죽이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진짜 플롯이 별로 재미없어 줄거리로 쓸 수 없다.
플롯이 그렇게 재미없다면서 왜 이렇게 독후감을 쓰고 있는지 궁금할텐데 그 이유는 너무 망상과 정치적 목적이 가득한 그 미래 사회가 너무 노골적이라서 오히려 흥미롭게 다가왔다. 미래를 상상해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주를 찌르는 마천루, 하늘을 나는 자동차, 우주 시대, 인공 지능과 로봇 등을 말한다. 미래가 그런 기술이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사회일 이유는 없지만 모두 당연하게 그렇게 생각한다. 왜 그럴까? 왜 그래야할까? 이런 질문을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을 잘 없을 것이다. 나 또한 대답하기 어려웠으며 무한히 솟아오르길 원하는 시대의 욕망을 그대로 답습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책에서 그리는 미래는 소박하지만 행복한 공동체 중심의 사회가 시간을 역행하는 과거가 아니라 정방향의 미래로 제시되었을 때 당혹스러우면서도 큰 흥미를 느꼈다.
책에서 또 크게 인상적이었던 건 약과 부작용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래인은 현 시대 사람들이 사람의 몸과 약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 없으면서 화학 약을 지나치게 활용하는데 부족한 이해 때문에 자신들이 원하는 효과 이외의 약효는 다 부작용을 취급하는 오만함을 비판한다. 사실 의도한 약효건 부작용이건 모두 약효이고 약의 작용인 것이다. 사용하는 용어를 바꿔치기 함으로서 아둔한 내 머리를 깨우치게 되었다. 정말 말 그대로이다. 모든 효과는 다 그 약의 효과인거다. 차를 타면 발생하는 환경 오염은 부작용이 아니라 차의 효과이다. 입학사정제로 발생하는 스펙 열풍은 부작용이 아니라 작용이다. 우리는 목표로 하는 효과 이외의 것들을 다 부(Side)작용으로 치부하며 인식에서 지워버리지만 이는 정말 말 그대로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원하지 않는 작용을 줄이고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지 부작용으로 치부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해야하는 건 책에서 계속해서 드러나는 공동체와 자유에 대한 애정이다. 사회가 워낙 팍팍하다고 믿는 구성원으로 가득한 세상에 살다보니 책에서 보여주는 그런 사랑을 느끼기도 상상하기도 어렵다. 함께 웃고 즐기는 세상을 공유해준 저자에게 큰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