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

친구가 제주 함덕에서 하는 페스티벌에 가자며, 숙소는 예약했으니 몸만 오라길래 감. 친구는 페스티벌 끝나고 돌아가고 난 며칠 더 지냄

스쿠터

공항에 내려서 스쿠터를 대여한다. 친구의 제주 일정은 금-일이고 난 그것보단 3일 정도 더 있을 예정이라 혼자 다닐 땐 작은 스쿠터를 타는게 더 싸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렇지 않다,,, 그랜져보다 비싸다,,,

스쿠터는 예전에 조금 타보기도 했지만 똑바로 면허 따고는 처음으로 타본다. 옛날에는 되게 편하게 차 사이로 다녔는데 잃을게 많은 나이가 됐는지 그런 짓 못하겠다. 이게 한번 박으면 끝장난다는 생각에 시속 70 정도로 달리면 온몸이 긴장된다. 처음에 재미있어서 서울에서 타고다닐까 하다가도 주변 차들이 지랄맞게 운전하는 꼴을 보니 생각을 접게된다.

특히,,, 여행 내내 비가 오거나 해가 쨍쨍하거나 둘 중 하나였어서 비올 때는 미끄러질 걱정, 해가 쌜 때는 그냥 온 피부가 따갑고 덥다. 특히 중간에 태풍이 올 때는 아,,, 깝치다가는 죽겠다 생각들더라,,, (사실 태풍 오는거 알면서 한라산 산길을 달렸다,,,)

스쿠터의 장점은 달릴 때 매우 경쾌한 점이다. 원할 때 아무 곳에 스쿠터를 세우고 풍경을 구경하는 재미가 좋다. 또 렌트사 측에서는 달리지말라고 하는 한라산 산길을 스쿠터로 다니면 정말 시원하고 상쾌하다.

스테핑 스톤

함덕에 있었던 축제 이름이 스테핑 스톤이다. 어떤 축제인지도 몰랐으나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먼저 풍경이 멋지다.

공연 라인업이 좋다. 친숙한 밴드부터 잘 모르는 밴드까지 다 편안하게 즐기기 좋았다. 특히 몇몇 나에게는 생소한 일본 아티스트들의 무대가 돋보였다. 나뿐만 아니라 공연장의 대부분 사람들이 처음 보는 아티스트 였을텐데 단 30초 만에 관객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재능이 놀라웠다.

스테핑 스톤은 공연 무대가 하나 뿐이라서 이리저리 돌아다닐 필요 없이 의자에 박혀 술만 즐기면 된다. DMZ에서도 느낀 장점인데 날 더운 날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보단 그냥 자리에 박혀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시는게 제일 기분 좋다. 제주 지역민들도 편하게 의자펴고 술 마시며 노는 단란한 분위기가 좋다. 술 마시다보면 주변에 앉아있는 제주 사람이 ‘귤 먹을래요?’ 하면서 말을 건네준다. 같이 술 마시면 된다.

칸예의 마음을 이해한 순간

요즘 칸예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던데 이해가 가다가도 왜 저럴까 싶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칸예가 마스크를 쓰면서 느낀 자유를 내 멋대로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사진을 찍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찍힌 결과물을 보면 도무지 사진 속에 담긴 사람이 이해가 안 간다. 저 옷차림이며, 자세, 표정들은 다 뭔가 싶다. 심지어는 사진 속에 보이는 접힌 살, 피부 트러블, 주름 같은 건 부담스럽다. 딱히 외모에 집착하지 않기에 거울도 그닥 안 보는 편이고 셀카도 안 찍는 편인데 타인의 사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내 모습은 내가 관심없어 필터링 하는 부분들을 강조해서 보여준다고 느껴진다.

남들도 나처럼 사진에 담긴 자신의 모습이 거북하게 느껴질거라고 믿는다. 그래도 이미지의 시대의 태어난 우리는 끝없이 자신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마음에 드는 건 ‘즐겨찾기’에 넣고 마음에 안 드는 모습이 담겨있지만 회생의 여지가 있다면 보정을 한다. 보정 조차 불가능하면 그냥 삭제하거나 앨범에 쳐박아둔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인스타에 올린 사진을 보면 그 사람이 뭘 강조해서 드러내고 무엇을 숨기려고 하는지 정말 명확하게 보인다. 상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염두하고 상대의 인스타를 한번 훑고 나면 상대가 원하는 사진을 찍어주는 건 정말로 쉽다. 처음에 상대를 담은 사진 몇 장을 찍어본다. 그리고 사진을 살펴보면 상대가 인스타에 올린 사진에는 숨겨진 부분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러면 아! 기다려봐! 외치고 몇 장 찍어주면 상대는 좋아한다. 내 사진도 누가 그렇게 찍어줬으면 좋겠지만 사람들은 보통 사진을 더럽게 못 찍어서 별 기대가 안 된다. 그렇다고 열심히 사진을 찍고 싶지도 않으니 그냥 사진 찍히는거 자체가 불편하다.

마스크를 쓰니 사진을 찍힐 때 마음이 편했다. 표정, 시선, 눈, 입모양, 자세, 빛과 면 같은 건 고민할 필요 없다. 감각도 필요 없고 생각도 필요 없다. 그냥 편안하게 셔터 소리를 즐길 수 있다. 어디서 날 어떻게 찍든 신경 쓰이지 않는다. 사진을 찍히면서 이렇게 편안한 적이 없었다. 아마 칸예도 이런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마스크의 장점이 하나 더 있다. 태양 빛을 가려준다.

참고로 저 상태로 앞이 잘 보인다.

게스트하우스

같이 온 친구가 떠나고 혼자 게스트하우스에 갔다. 돈도 아끼고 사람들과 이런저런 대화도 할 겸 갔는데 게하 파티니 이런건 상상만 해도 끔찍해서 적당히 조용한 곳을 찾아갔다. 찾아간 곳이 시끌벅적한 파티를 벌이는 곳은 아니었으나 아쉽게도 사장이 ‘여자 손님만 여러 명 계시고 남자가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오셔서 잘 됐어요’라고 하기에,,, 아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구나 하고 피로감을 느낀다. 불멍을 언제 하니 그 전에 돌아오라는데 그닥 참여하고 싶지 않아 스쿠터를 타고 밤 길을 쏘다녔으나 온 천지에서 천둥이 치는 바람에 무서워서 복귀한다.

게스트하우스의 파티 아닌 파티는 나름 괜찮았다. 사람도 6명 정도 밖에 없고 사장 빼고 모든 투숙객들이 말이 없어서 좋다. 대답이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서로 의례상 질문하는 모습을 보며 술을 홀짝이는게 편했다. 그러던 중 매우 유쾌한 남녀 둘이 뒤늦게 술자리에 합류했고 공기가 완전 달라졌다. 일단 내가 달라졌다. 그들이 오기 전까진 의례상 대답하고 하하 웃으면서 자리를 지키며 술 마시기 바빴지만 그 친구들이 오자마자 깔깔깔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우린 새벽까지 술을 마셨고 정신을 차려보니 3일을 계속 붙어다니며 여행을 하게 됐다.

언제나 여행은 내가 원하는 형태로 해야했다. 다른 글들을 보면 알다시피 보통은 산! 바다! 별! 드라이브! 술!이다. 그렇지 않은 여행은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고 그렇기에 다른 친구랑 같이 여행을 다닐 땐 나랑 취향이 맞는 친구하고만 다녔다. 그래도 가끔은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곳을 친구가 가자고 할 때가 있는데 당연 티 안 내고 맞춰주려고 노력하지만 속으로는 재미없다를 되뇌이고 있다. 이번에는 달랐다. 같이 다닌 나를 포함한 6명은 내가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 맛집, 카페 투어와 물놀이를 하고 평소에 듣지 않는 음악들을 틀었지만 다 좋았다. 함께 떠들고 즐기고 돌아다니는게 즐거웠다.

예전에는 내 이야기에 집착하고, 집착하는 걸 알기에 그걸 숨기려고 구석에 쳐박혔다. 혹시라도 내가 관심 있는 일을 타인에게 떠들다가 타인에 얼굴에서 ‘아 지루해’를 읽는게 너무나 무서웠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나타나 내가 좋아하는 주제를 먼저 말하길 기다려왔었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내 여행 방식을 남들이 지루해할거라고 생각하니 남들이랑 여행하는 것을 피했고 그러면서도 내 여행 방식에 집착했다.

내가 많이 변했다. 요리조리 인생에 걸쳐 피해 다녔던 인생의 문제와 마주하고나니 남 앞에 서는게 무섭지 않다. 더이상 타인이 내 눈에 서려있는 죄책감과 불안을 읽을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편안하게 타인을 대하게 되니 편안하게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두려움에 몸을 움츠리고 나를 지킬 필요가 없다. 그 덕에 상대와의 대화를 온전히 경청하고 즐길 수 있었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에서 기쁨과 아름다움이 넘쳐흐른다.

게스트하우스의 조용했던 술자리 초반조차도 난 즐거웠다.

밤바다 수영

즐거웠던 순간 중 하나는 밤바다 수영이다. 난 원래 바다 물놀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가 햇빛이 싫어서다. 혹자는 달을 보면 미칠 것 같다는데 나는 해를 보면 미칠 것 같다. 위에 마스크를 두를 이유도 햇빛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런고로 대낮 해변의 미칠듯한 햇살이 싫다. 그래서 보통 밤바다 해변에 의자를 펴고 파도 소리를 듣는 걸 좋아한다.

그럼 밤바다 수영은? 내가 수영을 못 해서 엄두도 못 냈다. 남들 눈에 위험한 짓 골라서 하는 편이지만 난 사실 누울 자리는 보고 눕는다. 밤바다 수영은 진짜 감당 가능성이 없었다. 행복하게도 함께 다닌 게스트하우스 친구들 중에 수영을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물살이 없는 깊은 바다를 접근할 수 있는 방파제가 있었다. 아 그리고 사람도 없다!

밤바다 수영은 정말 최고였다. 밝은 보름달 밑에서 둥둥둥. 발이 닿지 않지만 둥둥둥. 시원하게 둥둥둥. 편안하게 둥둥둥.

블루투스 스피커를 안 챙겼는데 다음에는 꼭 챙겨서 브라이언 이노의 Weightless를 들어야지. 아니면 윌리엄 바신스키?

수영도 좀 연습해야지

다른 것들

술 마시면서 많은 사람들이랑 떠들었는데 기억이 안 나는 것도 많다. 다음날 눈 뜨면 모르는 사람 번호가 저장되어 있곤 했는데 뭐 어떤가.

아래는 몇몇 사진들. 별도 보고 바다도 보고 숲도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