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전하는데 바로 뒤에 따라오는 마이바흐를 보며 생각이 든다. 마이바흐는 안 예쁘다. 메르세데스의 가장 최상위 럭셔리 카이지만,,, S클라스와 같은 외형과 차대를 공유하고 있는게 영 별로다. 당연 메르세데스가 마이바흐의 차별화를 두기 위해 수직의 크롬 그릴을 강하게 쓰지만 이게 더 매력을 떨어트린다. 일단 S 클라스 자체가 디자인 완성도가 높은 차이다보니 강한 크롬 그릴 오히려 거추장스럽게 보인다. 그리고 디자인적으로 내세울게 없을 때 쓰는 헤리티지 전략이 영 탐탁치 않다.
무슨 소리냐하면 원래 크롬이라는게 1920년대 상업적으로 생산되었을 때만해도 꽤나 비싼 소재였기에 오직 럭셔리 자동차만이 쓸 수 있는 소재였다. 아직 크롬 기술의 성숙도가 높지 않았고 대량 생산 설비도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데 이 크롬이라는게 멋지기도 뒤지게 멋지다. 기존에 니켈 도색에 훨씬 색이 쨍하고 번쩍번쩍 하면서도 변색, 부식이 적어 광택이 오래갔다. 한번 그 시절에 다들 누리끼리하고 변색이 된 니켈 도금을 쓸 때 아래와 같이 번쩍이는 크롬 도금의 자동차를 눈으로 본다고 상상해보라. 심장이 떨리지 않는가?

이후 크롬 도금의 생산 단가는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졌지만 크롬의 도금은 1960년대까지 럭셔리의 상징이었으며 그 헤리티지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문제는 공학 발전의 최전선을 달리고 있는 자동차 산업에서 헤리티지는 진부해지기 쉽다. 아까 말했듯 크롬이 비싸고 희소했을 때는 크롬 소재의 화려하고 차별화된 외관만 봐도 차에 비싼 첨단 기술이 들어갔다는 것을 공학을 몰라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크롬 생산 단가가 싸지면서 럭셔리 뿐만 아니라 대중차에까지 크롬이 흔히 쓰이기 시작하면서 더이상 크롬은 차별화된 인상을 주지 못했고 그 전에 가졌던 럭셔리한 이미지도 많이 퇴색되었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이거다. 산업 디자인은 순수 미술/디자인, 패션 디자인처럼 단순히 조형적, 미적 아름다움만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 단가, 기술력 등 다양한 공학적 측면이 강조된다. 최신의, 첨단의 제품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기술력이나 비용적으로 과하지만 차별화된 모습을 외적으로 드러내야한다는거다.
예를들어 가장 최근에 공개한 제네시스 GV90의 코치도어를 보라.

양쪽으로 열리는 코치도어는 롤스로이스 등의 고급차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중간에 B필러(기둥)가 없는 차는 인생에서 본 적이 없을 것이다. B필러 없이 양쪽으로 도어가 활짝 열리니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시원한 개방감이 한눈에 봐도 매력적이고 특징적이다.
왜 그 전에는 이런게 없었을까? 안 만든걸까? 아니 못 만든거다. 차체 측면의 B필러의 차의 강성 및 안전에 필수적이다. 가장 단순하게 말하자면 옆에서 차가 박았을 때 저 B필러가 없으면 차가 쉽게 찌그러져 탑승자를 보호할 수 없다. 말고도 여러 이유들 때문에 B필러가 필수적이기에 모두들 B필러 없는 차를 상상만 했지 만들지는 못 했다.
(i3, rx-8 등 몇몇 B필러가 없는 차량있었지만 GV90과 같은 독립 개폐형은 아니다)
GV90은 그러면 안전(차체 강성)은 포기했는걸까? 아니다. GV90은 일단 전기차이기에 차체 하부에 강성이 좋은 배터리팩이 B필러의 담당하던 강성의 일부를 맡는다. 그리고 B필러의 구조를 도어 안쪽에 옮기고 천장 밑 하부에 초고강도의 철판을 덧대어 강성을 보강했다. 그리고 (1.8GPa의) 초고강도 철판은 2022년에 현대제철에서 세계최초로 양산에 성공한 기술이다. 이 같은 기술 덕에 차체 강성은 B필러가 없을 때에 비해 올라갔으며 프레임의 무게 또한 기존 철팔 대비 가벼워졌다.
어째 느껴지지 않는가? 정확히는 몰라도 B필러가 없는게 무지막지한 기술력의 과시라는 것이?
나도 이쪽은 잘 모르는 편이라 온전히 모르는 내용이 많은 편이지만 GV90의 B필러가 없는 코치도어는,,, 현대차의 기술력에 경외감을 느끼게한다. 그리고 공학도가 아닌 사람들도 은연 중에 GV90의 기술력이 경쟁사에 비해 매우 앞서있다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이게 바로 산업 디자인의 묘미다. 자동차 디자인은 단지 형태가 예쁜게 아니라 외형에서 차별화된 첨단의 기술이 느껴질 때 그 제품의 디자인 완성도가 올라간다.
다시 마이바흐로 돌아와보자. 그들의 거대한 크롬 그릴이 초라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그저 S 클라스와 차별화하기 위해 크롬의 헤리티지를 이용하는 모습은 그저 뱃지만 바꾼 차라는 숨기기 위한 발버둥처럼 보일 뿐이다.

특히 전기 마이바흐(Maybach EQS SUV)는 내연기관차처럼 전면에 그릴이 필요하지 않은데도 거대한 크롬 그릴을 내세우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일 지경이다. 사라진 기능에 형태만 남은 장식이다.
마이바흐가 S 클라스에 크롬만 더 덧대고 뱃지만 바꾼 차인 것만은 아니다. 마이바흐의 에어매틱 서스펜션의 우월한 승차감, 뒷좌석의 고급 리클라이닝 시트, 소음 방음 대책 등은 분명 S 클라스에 비해 월등한 지점들이지만,,,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S 클라스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은 럭셔리카의 외형 디자인으로서는 디자인 실패다.
산업 디자인이라는건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한 모방 불가능성이 중요하다. 전세계 수많은 회사들이 셀 수 없 이 많은 제품을 만들고 경쟁사의 디자인을 따라하는 이 시대에 모방 불가능한 디자인의 제품은 그 자체로 독보적이며 소비자들도 그 형태에서 직관적으로 제품의 기술력을 느낄 수 있다. 마이바흐의 외형은 메르세데스 S450을 사고 뱃지와 그릴을 바꾸면 모방할 수 있지만 GV90의 B필러 없는 코치도어는 모방이 불가능하다. 이 모방 불가능한 디자인이 차별성을 만들고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다.
논외로 BMW가 Alpina를 인수하고 새롭게 발표한 Alpina 럭셔리 라인이 훨씬 더 경쟁력 있는 디자인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인이 내 취향은 아니지만,,,